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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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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아니라 선수임을 밝혀라

등록 2007-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중립의 탈을 쓰고 편파보도를 일삼는 고질적인 관행, 차라리 지지 후보 밝혀야

▣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

언론의 선거보도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은 다른 점이 많다. 세 가지만 꼽아보자.

첫째, 미국 언론은 치사할 정도로 집요하고 꼼꼼하게 후보자를 검증한다. 첫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 오바마 상원의원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 직전인 지난 1월 말, 19년 가까이 미납한 주차 위반 범칙금과 과태료 등 493달러를 납부했다. 가 오바마 의원의 학창 시절 법률 위반 기록을 추적함에 따라 취한 조치였다.

미 언론은 유력 주자 일수록 엄격하게 검증

이에 비해 우리나라 언론은 후보자 검증에 인색하다. 단적인 경우가 현재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에 언론이 소심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부동산 투기를 비롯해 1996년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 관련 위증 교사 및 증인 도피 의혹을 받고 있다. 오바마 의원의 범칙금 미납보다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관대한’ 언론 덕분에 사실관계는 오리무중이다.

둘째, 미국 언론의 후보자 검증은 ‘유력한’ 주자일수록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검증 여부와 강도가 결정되는 우리나라 언론과 대비된다. 는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활동할 때 자신의 후원자들이 관여한 조류인플루엔자(AI) 치료제 개발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고 그 이후 AI 치료제 개발을 지원하는 법안을 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는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한 신문이다. 이처럼 미국 언론은 후보자를 검증할 때 정당이나 당파를 따지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선거보도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편드는 정파적인 행태로 특징지어진다. 불공정 편파보도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가리지 않으며 방송보다 신문이 훨씬 더 심하다. 그중에서도 ‘조·중·동’으로 대별되는 보수신문들이 1992년에 김영삼 후보를, 1997년과 2002년에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는 올해 신년사설에서 “대한민국은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 공통의 선진화 화살표를 거슬러 혼자서 거꾸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는 같은 내용을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2007년은 1987년 체제의 ‘잃어버린 후반 10년’을 만회하는 부활의 정초(定礎)여야 한다.” 한나라당 당보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문구가 종합일간지 신년사설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셋째, 미국 신문은 통상 선거일 1~2주 전에 사설을 통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1980년 이래로 항상 더 많은 신문사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들 부시는 2000년과 2004년 그 전통을 연달아 깨고 대통령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신문사가 공표하는 특정 후보 지지의 변이 언제나 ‘거룩한’ 것도 아니다.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고어가 맞붙은 2000년 당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도시인 디트로이트의 유력 일간지는 부시 지지를 선언했다. 이유인즉 부시가 반환경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개선되기 보다 관행으로 제도화되는 양상

우리나라 언론은 삼척동자도 아는 자신들의 정파적 편향성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15대 대선 이틀 전에 는 신문의 얼굴이라는 1면에 ‘대선 양자구도 압축’이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뽑았다. 보수 진영의 표가 분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를 드러낸 대목이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쪽은 격렬하게 항의했고, 중앙선관위는 경고 조치를 내렸다. 16대 대선 당일에는 가 사설을 통해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며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판으로 자처한다. 매번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에 열중하면서도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시치미 떼는 데 이골이 났다.

결국 미국 언론은 후보자 검증에 철저하되 이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띠지 않는다. 사설을 통해 누구를 어떤 이유에서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힐 뿐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그 정반대다. 특정 후보에 대한 편파보도가 확연하건만, 그래서 후보자 검증이라고 해봤자 ‘정적’을 ‘표적’ 삼아 진행하기 일쑤지만, 지지 후보를 공개하기는커녕 자신들은 불편부당, 엄정중립이라고 강변한다. 즉, 우리나라 언론의 불공정 편파보도는 겉으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적인 ‘이중성’을 특징으로 한다. 문제는 이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우에 유권자에게 끼치는 폐해가 훨씬 더 파괴적이라는 데 있다. 특정 팀 선수가 심판임을 가장하고 경기를 진행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해보라.

사실 이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관행으로 제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불공정 편파보도를 부추기는 권언유착, 즉 정치권력과 언론사의 유착관계가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 언론은 권력집단과 밀월관계를 향유하면서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그 반대급부로 사세 확장을 위한 갖가지 이권과 사주의 이익을 챙기며 성장했다. 언론인들 스스로가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언론과 권력집단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언론을 향해 중립적인 심판의 자리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올바를 수 있지만 공염불에 그치기 십상이다. 이 지난해 말 실시한 조사에서도 15개 언론사 보도책임자 중 9명이 이번 대선보도에서 중립성을 지키기 어렵다고, 2명만이 지킬 수 있다고 응답했다. 언론에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자신들이 심판이 아니라 선수임을 밝히는 것이다.

지지후보 밝히면 권언유착 더 심해진다?

물론 이에 따른 문제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언론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는 보도를 금지하는 현행 공직선거법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 조항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기에 의지만 있다면 개정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의 지지 후보 표명이 허용될 경우 정치권력과 언론 사이의 담합이나 흥정, 매수 등 뒷거래가 기승을 부리면서 가뜩이나 만연한 권언유착이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리는 있지만 단정할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언론의 정치적 입장 표명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우리나라 언론은 음성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해 왔다. 이를 공개적으로 양성화한다고 해서 특별히 권언유착이 심해지리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특정 후보 지지 표명에 따른 부담과 책임감으로 인해 언론은 선거보도의 공정성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 미국이 그러하다.

언론의 공개적인 특정 후보 지지. 분명 낯설다. 이것이 불공정 편파보도에 찌든 우리나라 언론계를 일신하는 계기가 될지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얼마나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보도가 난무했으면 차라리 솔직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선거판에 임하라는 주문이 언론에 쏟아지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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