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편향성을 피하기 위해선 신문사들이 나서서 적절한 선거 보도 준칙을 만들어야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답은 문제에 있다.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공동으로 다섯 개 신문사의 석 달치 대선 보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몇 가지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책 보도보다 동정 보도가 훨씬 많았고, 보도 비중은 잘나가는 후보에 치우쳐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지 않았는데도 정치적 편향성이 은근히 나타나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 지침 마련까진 나가지 못해
이대로 가다간 2002년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 “편파 보도가 극심했던 족벌 언론일수록 선거 보도의 핵심인 정책 검증은 아예 안 하거나 본질을 벗어난 흥미 위주의 보도, 피상적 보도에 머물러 정책 대결 유도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소홀했다.” 2003년 1월16일 열린 ‘2002 대선보도 평가 토론회’에서 김은주 대선미디어국민연대 선거보도감시위원회 신문팀장이 내놓은 평가의 일부다. 벌써부터 5년 전의 문제가 되풀이될 것 같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성과가 날지 알 수 없지만, 신문들의 노력도 있다. 는 3월6일 1면에 “17대 대선을 건전한 정책 경쟁으로 적극 유도하면서 공정하고 심층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10명으로 구성된 대선보도 자문교수단을 구성했다고 알렸다. 는 참여연대와 함께 ‘유권자 정책검증 운동’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유권자위원회’란 것을 꾸려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대선 공약을 검증하고,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각 분야 10명의 전문가들로 대선보도자문단을 꾸렸다. 다른 신문사들도 곧 뒤따를 전망이다. 2002년에도 자문단은 유행이었다.
그렇지만 신문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선거 보도의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데로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들 가운데는 선거 보도 준칙을 마련한 곳도 있다. 굳이 보도 준칙까지 만들 필요가 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지면의 편향보다 더 큰 문제는 신문사의 무원칙”이라는 심상정 의원의 지적은 이런 반론에 좋은 대답이 될 수 있다.
실제 대선 후보들을 보도하는 횟수와 기사량의 비중엔 어떤 합리적 기준도 없다. 아예 기준이 없다. 현장에 있는 기자들의 ‘감각’에 맡겨져 있을 뿐이다. 직감은 ‘잘나가는 후보’와 ‘의석수가 많은 정당’ 등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짙다. 기사라는 게 쉽게 계량화할 수 없으므로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방송은 신문에 좋은 힌트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국회의원 5인 이상 소속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직전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언론기관이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지지율이 평균 100분의 5 이상인 후보자 등 세 조건 중 하나에 해당할 경우 후보자를 불러다 대담이나 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룰’ 자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에게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신문에 정해진 법칙에 따라 기사의 기계적 균형이나 배열을 요구할 순 없다. 지면은 한정돼 있고, 독자의 관심이라는 것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심상정 의원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국민들의 관심을 고려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과거나 현재의 여론이 대통령 후보의 유력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지지율 → 보도 → 지지율의 순환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은 “언론의 관심과 노출이 다시 지지도에 영향을 미친다. 언론에 쉽게 노출되지 못하는 신진 정치세력은 대중에게 지지를 받거나,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약받게 된다”고 말했다.
어쨌든 나름의 원칙을 정해야만, ‘특정 후보 편들기’란 질곡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이 2002년 신문·방송 기자 3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5.6%)에서 대선 보도의 가장 큰 문제로 응답자의 무려 61.9%가 특정 후보 편들기를 꼽았다.
필요성을 느껴 선거 보도 준칙을 마련한다면 ‘2004 총선 미디어 국민연대 선거보도 감시준칙’을 활용해볼 만하다. 언론단체가 감시 대상으로 꼽고 있는 것은 보도 원칙을 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보도하거나 반대로 보도를 자제해야 할 부분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시 준칙은 언론이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촉진하는지 감시 △정치적 냉소와 혐오를 확산시키는지 감시 △지역주의 감시 △선정적인 경마식 보도 감시 △후보의 자질과 공약에 대한 평가 및 정책 의제 중심의 선거 보도를 지향하는지 감시 등 8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언론사들이 명시적으로 공정 보도를 하겠다, 특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스스로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민들한테 의정보고를 하고, 기업이 주주들에게 회계보고를 하듯, 언론도 선거 보도를 하면서 독자들에게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설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대선 보도 준칙과 같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선거를 지배한다.” 선거학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공정하게 보도하도록 미디어를 내·외부에서 견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는 너무 덜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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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보도를 하는 방송에 대한 규제와 감시는 촘촘한 편이다. 나라 밖이나 나라 안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이 전파라는 공공재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적 소유구조를 지닌 방송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문도 사적 소유가 대부분이지만 방송과 마찬가지로 언론으로서 ‘사회적 공기’라는 특성을 함께 지닌다. 하지만 신문의 선거 보도에 대한 감시는 비교적 허술한 편이다. 물론 그 효용성은 둘째 치고 신문 자체적으로 내부 감시의 작동 원리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방송의 선거 보도 감시 준칙은 이런 면에서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국내의 한국방송·문화방송·SBS 등 방송 3사는 모두 선거방송 준칙을 갖고 있다.
문화방송의 경우를 보자. 문화방송은 2002년 4월부터 ‘선거방송 프로그램 준칙’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준칙을 위반했을 때엔, 과실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항까지 두고 있다. 준칙은 크게 △보도 방송 △토론 방송 △시사 및 일반 방송 △개표 방송 △시행과 책임으로 구성돼 있다. 그 아래 구체적인 보도 세칙을 규정해놨다. 예를 들어 보도 순서는 이렇다. 공식 후보로 선정되기 전에는 여당 → 제1야당 → 제2야당 → 군소정당 → 무소속의 순서를 유지하며, 후보가 된 뒤에는 기호별 순서를 따른다. 선거 관련 일반 보도에서는 여야의 순서보다 기사의 비중이 우선하며, 이때 기사의 비중은 정치부가 판단하고 편집회의는 이 판단을 존중해 편집한다. 기사 비중의 판단은 언론의 양식과 보편적 상식에 따른다. 시간 배분에서는 여야 후보의 아이템 수와 시간을 균등하게 배분함을 원칙으로 한다. 또 군소 정당과 무소속 후보자에 대해서도 시간과 아이템 배정에 공평성을 기해야 한다.
토론 방송은 모든 후보자에게 공평하게 토론 방송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국회 원내 교섭단체 보유 정당의 후보자가 3개 이상 중앙일간지와 2개 이상 지상파 중앙방송사가 조사해 보도한 토론 개최일 이전 30일간 여론조사 결과에서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를 대상으로 토론 기회를 부여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후보자에 대해서는 유권자의 알 권리 충족과 뉴스 가치 판단에 의해 별도의 토론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준칙 마련이 끝은 아니다. 실제 준칙에 따라 제대로 보도했는지 안팎의 감시가 따라야 한다. 시청자나 유권자들은 언론의 보도에 따른 책임을 묻고 설명을 요구하는 데 이런 준칙을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은 책임을 물을 이런 근거조차 마련해놓은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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