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어떤 미래를 빚어낼 것인가…관세 인하를 위해 법·제도·관행을 송두리째 포기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4월2일 오후 ‘괴물’이 탄생했다. 협상단은 같은 이름의 영화로 치자면 진실을 은폐하는 한국 정부 역이 딱 맞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마치 괴물과 맞서 싸운 송강호 가족인 양 스타가 됐다. 한숨만 쉬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왕 영화처럼 흘러가고 있으니 이제는 괴물을 죽일 차례다. 송강호 가족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국민,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족마저 파괴될 수 있는 바로 우리 서민들이다.
쇠고기·약값, 우리 건강을 팔아먹나
괴물의 탄생이 미국 탓이라 해도 영화에서는 어디까지나 우연이다. 그러나 현실의 괴물은 정확히 미국 의도의 산물이었다.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미 의회조사국 리포트 2006년 5월). 관세 장벽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겠다는 것, 결국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바로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다.
협상단이 자화자찬하는 성공은 ‘관세 인하’이다. 예컨대 3천cc 이하 자동차의 관세를 즉시 철폐했다는 것이다. 그 대가는 참혹하다. 우리나라 자동차 세제 개편 등 온갖 비관세 장벽, 즉 우리의 법과 제도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요구대로 바꿔야 했다. 미국 차를 한 대라도 더 팔게 해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 대형차의 소비는 진작되고 가뜩이나 문제 많은 우리의 대기는 더욱 오염될 것이다.
섬유의 관세 인하를 얻어내기 위해선 엉뚱하게도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 대한 수입규제를 완화하는 계획을 제출했다(정부는 부정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돈 몇 푼 벌자고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 목숨까지 내맡기려 한 것이다. 또 5월에 수입하기로 약속한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위해 우리의 위생검역제도는 허수아비가 되어야 한다. 광우병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쇠고기, 그리고 다이옥신 검출로 상징되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수입은 한-미 FTA라는 괴물이 앞으로 가져올 ‘위험 사회’를 미리 보여준다.
미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예컨대 의약품 분야의 결과를 보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야심차게 ‘약값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나는 “잘하고 있다”고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단서를 붙였다. 만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미국과 FTA를 맺으면서 미국이 요구한 여러 제도, 즉 의약품 특허기간 20년을 사실상 3~5년 연장하는 제도, 재심위원회를 설치해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가 약값 결정에 관여하는 제도를 만들면 이 정책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로 끝날 것이라고, 즉 사실상 사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과는 꼭 그렇게 됐다. 유 장관 스스로 밝혔듯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 5년간 6천억원에서 1조원(의료단체의 주장으로는 약 10조원)의 추가 약값 지출이 불가피하다. 4월4일 보건복지부는 피해액을 연간 1천억원으로 대폭 축소해 발표하며 이는 최저 약가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라고 하지만 실은 제약회사의 피해만 계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오스트레일리아의 경험에 비춰볼 때 대체로 연간 5천억~1조원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는 충분히 자료를 공개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사안이다).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환자들이다. 특히 불치병 환자의 가족에게는 치명적이다. 대부분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하는 우리 제약회사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복제약을 시장에 내놓는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국민 모두가 보험료를 더 내지 않으면 건강보험이 붕괴하는 건 시간 문제다.
미국 비관세 장벽은 바라만 볼 뿐
미국 FTA의 목표, 오로지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법과 제도의 변경은 이렇게 실현된다. 별로 저작권이 많지도 않고 더구나 수출은 더욱 어려운 여건인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간다고’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늘렸다. 미국 문화산업계는 앉아서 20년 동안 저작권료를 더 챙기게 됐다.
지적재산권, 자동차 세제 변경 등 우리 법을 100개 이상 고쳐야 하는 경우가 모두 똑같은 사정이다. 반면 미국은 주(州)법을 포괄적으로 유보했기 때문에 법 개정은 물론 할 필요가 없고 한국 기업이 한-미 FTA를 들이대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요약하자면 이번 협상의 특징은 관세 인하를 위해서 우리 법과 제도의 변화를 맞바꿨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수출의 증가를 위해, 또 “이런 쾌거를 이뤘다”고 국민에게 선전하기 위해 훨씬 장기적으로,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게 국민의 삶을 뒤흔들 제도 변화, 특히 건강과 관련된 제도의 변화를 주저 없이 선택한 것이다. 혹여 차기 정부가 이런 흐름을 뒤바꾸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가 기다리고 있다. 초국적 기업은 국민국가의 법, 나아가 헌법마저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 우리는 미국의 비관세 장벽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예컨대 미국의 대표적 비관세 장벽인 무역구제제도를 보자. 수출업계가 제로잉 등 몰상식적인 이 제도로 인해 입는 손해가 매년 15억달러라고 하니 이 분야가 우리 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16개 독소 조항을 다 바꾸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한 정부는 결국 미국 법을 고칠 수 없다는 이유로 빈손으로 돌아왔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위원회 설치가 유일하게 얻은 것이라니 그야말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다.
그 다음으로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꼽는 것이 얀포워드(미국의 독특한 섬유의류무역 원산지 기준)이다. 정부는 85개 품목을 얀포워드 기준에서 제외시키겠노라고 호기롭게 발표했다. 그러나 협상 결과, 5개 품목으로 확정됐다. 대부분의 수출 의류가 중국제로 취급당할 테니 관세를 10% 이상 내린다 한들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자동차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서비스 분야의 전문직 상호 인증은 비자 쿼터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 해운 강국 한국의 배가 미국 연안을 다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역시 물거품으로 판명났다. 북핵 문제와 연계해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논의하는 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니 가상하기는 하다. 하지만 역외가공단지라는 추상적 이름이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싱가포르와의 FTA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 전역을 역외가공단지로 인정했다. 이번 협상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북-미 관계, 북핵 문제의 해결이 독립 변수이다. 또한 환경과 노동 문제가 따라붙었으니 어느 세월에 개성공단의 한국 원산지 인정은 가능할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첨단 부문 미국 특화, 범용 부문 한국 특화
우선 산업구조의 변화부터 살펴보자.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수준에서는 미국 서비스업 특화, 한국 제조업 특화가 일어난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첨단 부문의 미국 특화, 범용 부문의 한국 특화가 일어난다. 특히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일반기계나 석유화학 산업에서 그런 현상은 정확히 나타날 것이다.
이 결과는 한국 정부가 내세웠던 목표와 정반대다. 제조업에서 중국이 쫓아오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고, 우리 내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 쇼크까지 필요하다는 것이 저간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나라가 범용 제조업으로 특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바로 코밑까지 쫓아온 분야이다.
결국 우리 경제의 숙원인 동시에 중국을 결정적으로 따돌릴 수 있는 분야인 기계 및 부품소재 산업은 한-미 FTA로 오히려 구조조정 당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미국이나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로 공장, 연구소를 이전시키는 데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가 그런 결과를 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저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 제소권을 포함시키면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세계은행의 2005년 연례 보고서는 이런 주장을 간단하게 기각한다.
서비스 분야는 서민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서비스 분야가 별로 개방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정부 발표로 보면 교육·의료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 그리고 철도·수도·전기·가스 등 네트워크 산업은 ‘포괄적으로’ 유보했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현재의 제도하에서 미국 기업이 이익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흥미를 보이지 않았을 것라는 점, 둘째는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미진한 부분은 우리 스스로 개방하겠다”) 한국 정부가 ‘자발적 개방’(unilateral opening), 즉 민영화 및 규제 완화를 시행할 것이므로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예컨대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미국의 병원이나 대학교는 들어오지 않는다. 미국에 앉아서도 돈 잘 버는데 힘들여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해서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법인화, 이윤 송금, 한국 환자 진료, 건강보험 환자 제외 등 각종 특혜를 제시했다. 이 시범 사업은 언젠가 전국으로 확대할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므로 인천은 곧 한국의 미래이다. 결국 한-미 FTA는 한국 재정경제부의 계획을 시행할 훌륭한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될 것이다. 마치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요구 이상으로 민영화, 규제 완화를 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서비스 분야의 양극화이며, 불행하게도 서민들은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에서도 배제될 것이다.
쑥쑥 자라 세계 최강이 될 FTA
물론 정부는 이런 유추를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의 성격 자체가 이미 ‘실현된 미래’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한-미 FTA는 서비스 시장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방하고 있으며 서비스의 ‘현재 유보’에는 래칫(역진 방지) 원리가 적용된다. 여기에 한-미 FTA 특유의 ‘미래의 최혜국대우(MFN)’까지 추가됐다. 이 세 가지가 어울리면 FTA는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현재 정의할 수조차 없는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되고(네거티브 방식), 언젠가는 모든 서비스가 개방될 수밖에 없으며(래칫 원리), 미래에 한-미 FTA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나라에 개방을 할 경우 그 조항은 한-미 FTA에 소급 적용된다(미래의 MFN).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갖췄으니 한-미 FTA는 가히 세계 최강의 FTA이다.
지금 우리는 괴물을 낳았다. 괴물은 곧 쑥쑥 성장할 것이다.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직 새끼일 때는 충분히 기회가 있다. 우리 법으로는 앞으로 6월의 정식 체결(4월2일에 한 것은 가(假)조인이다)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규정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수십 개의 자문위원회가 협정문을 검토해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우리 국회도 이 기간 동안 국정조사를 하거나 다른 특단의 수단을 동원해 미국과 마찬가지로 협상 결과와 영향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안에 관한 국민투표가 아니라 한-미 FTA를 체결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국민투표이다. 국회는 한-미 FTA의 영향 평가를 근거로 대통령에게 국민투표를 요구해야 한다. 이런 당연한 의무마저 방치한다면 국회는 더 이상 민의의 전당이 아니다.
물론 고집 센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달려가 정식 서명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바로 국회가 비준에 동의할 수는 없다. 또 한 번 미국 법이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정부는 체결된 협정을 기초로 FTA 이행 법안을 9월 말까지 의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9월이면 한국은 이미 대선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빠져든 상태이다. 예언컨대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는 FTA를 대놓고 지지할 간 큰 대선 후보는 없다.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니 국회의원들 역시 스스로 비준 동의를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기나긴’ 기간 동안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가 충족되어야 한다. 국민이 알고, 또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야말로 한-미 FTA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을 잡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혹여 미리 체념하거나 우리가 할 일을 게을리한다면 한국의 사회경제는 바야흐로 ‘한-미 FTA 시대’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짧게 보면 문민정부의 자본시장 개방, 국민의 정부의 ‘IMF 개혁’으로 이어진 본격 개방의 역사가 ‘참여정부’의 한-미 FTA로 완성됨으로써 이 시대는 열린다.
무제한 경쟁으로 가는 길
조금 더 길게 보면 한-미 FTA 시대는 ‘87년 체제’의 종언이다. 87년 체제는 열려 있는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간이었다. 첫째는 국민이 참여하는 자발적 동원과 공동체적 협력의 사회경제 체제이고(아마도 북구형 모델이 여기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둘째는 시장의 강제동원과 개인 간 무제한 경쟁의 사회경제 체제이다(아마도 앵글로색슨형 모델이 여기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한-미 FTA는 둘 중 후자를 역전 불가능할 정도의 반영구적 제도로 굳히는 역사적 사건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라는 올바른 이름을 더럽히면서 이제 시장국가, 시장에 의한 강제동원, 부의 세습 사회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가장 길게 보면 ‘참여정부’는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발전국가’의 마지막 정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시대의 막내’라는 그의 실토는 옳다. 또한 그는 개방과 시장의 이름으로 박정희 시대를 새롭게 연다는 의미에서 한나라당 ‘비밀당원’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단코 한-미 FTA를 막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미래를 물려줄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몸으로 이행한 허세욱씨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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