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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다”

등록 2006-12-21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정부 지원 믿을 수 없고 일할 곳도 마땅치 않은 대추리 이주민들의 불안…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 사이에 감정의 골 생기며 공동체도 붕괴돼</font>

▣평택=글·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임창렬(52)씨는 다리를 절며 읍사무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요즘 살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임씨는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평택 대추리에서 올해 2월 이사 나왔다. “정부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어야지.” 임씨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왼쪽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는 지체장애를 앓는 3급 장애인이다.

통장에서 곶감 빼먹는 생활

임씨는 쓰레기를 주우며 읍사무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오후 3시부터 4시30분까지 한 시간 반. 그는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벽보를 떼어낸 대가로 읍사무소에서 하루 3만3천원을 받는다.

그 일은 미군기지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게 국가가 제공한 최초의 일자리다. 12월13일 오후 3시,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평택 대추리·도두리에서 밀려난 주민들이 모여사는 우미아파트 110동 앞으로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든 노인들이 모여들었다.그들은 “그나마 이런 일거리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거리에 떨어진 종잇조각, 아이스크림 막대기, 과자 봉지를 주웠고, 생활정보지 뭉치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정섭 평택시 한미협력과 주임은 “보통 공공근로의 하루 일당은 2만8천원이지만, 미군기지 이주민들에게는 특별히 5천원 많은 3만3천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의 부친 임경빈(76) 노인은 “하루하루 사는 게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추리에서 땅 3천 평을 일궈 매년 70가마쯤 소출을 거뒀다. 그는 그 땅을 평당 15만원에 정부에 넘기고 마을을 떠났다. 그게 올해 2월이다. “뭔가 벌이가 있어야 할 것 아니요!” 한쪽 팔을 못 쓰는 아들을 받아주는 직장은 없었고,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으로 통장 잔고는 꼬박꼬박 줄고 있다. 32평짜리 집의 전세가는 7500만원. 그나마 5천만원은 2년 뒤 정부에서 회수해가는 빚이다. 노인은 자신의 삶을 ‘곶감 빼먹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주민들을 위해 충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왔지만, 갑작스런 생활 환경의 변화를 겪은 농민들을 달래주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게 정부의 무성의인지, 미국의 일정에 휘둘린 탓인지 구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가 준비한 대책은 크게 △이주정착특별지원금(가구당 1500만원) △생활안정특별지원금(가구당 최대 1천만원) △이주자 택지 △상업 용지 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장 현금으로 지원되는 것을 빼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 대책→후 이주’가 아닌 ‘선 이주→후 대책’으로 일이 처리돼 계획 자체가 불확실하고 농민들에게 끼치는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다. 정부는 직업을 잃은 농부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평택시 취업정보센터에서 일하는 김현순 주임은 “이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이어서 취업 알선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 원하시는 일이 경비일이거든요. 구직 업체도 많지 않고, 벌이가 적다 보니 너무 먼 곳은 갈 수 없고요. 솔직히 쉽지 않네요.”

2013년 완공 예정인 고덕 국제화계획지구(539만 평) 안에서 분양해주겠다고 말한 상가용지 5~8평도 마찬가지다. “그게 계획이지,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도두리에 아직 살고 있는 이상현씨가 말했다. 땅이 주어진다 해도 사업 경험이 없는 농민들이 그 땅을 직접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마도 정부인 듯했다. 그들은 농민들에게 나눠준 ‘이주민 지원·보상 대책’ 자료에서 “상가용지 분양권 매각시 분양가의 50%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적었다. 땅을 적당히 되팔아 프리미엄이나 챙기라는 뜻이다. 평택 두릉지구·지산지구·남산지구 등 3곳에 2006년 12월 완공 목표로 이주단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곳에 집을 지어 살려면 땅값과 건축비를 합쳐 2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대추리에 남은 17가구는 보상금이 1억원에 채 미치지 못하는 극빈자들이다.

보상금은 대부분 자식들이 가로채

갑작스런 충격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우미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난 봉원천(87)씨는 대추리 토박이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동네 노인회장 직을 맡아왔다. 그가 마을을 떠난 것은 올해 2월이다. 그는 어릴 때 이웃 마을 포승면에서 “땅을 개척하기 위해 대추리로 흘러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이주 시점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아들 봉진근(55)씨는 “정부가 마련해준 서산에서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12월13일 서산 땅을 평당 3만8500원에 매수했다. “이웃 신대리 사람들이 올해 농사를 지었는데 쌀이 잘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정부가 제공한 땅은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서산 농지 A지구 150만 평이다.

신대리 쪽 사람들이 80여만 평을 사고, 대추리에서는 16명이 43만 평쯤을 사들였다. 지난해에는 땅값이 한 평에 3만7500원이었지만, 한 해가 가는 사이 1천원이 올랐다. 그는 3만8500원에 땅을 사들였다. 그는 “평택에 머무르면서 서산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옥중에 있는 김지태 이장과 이종사촌 사이다. “농사는 봄에 고랑을 팔 때와 모내기할 때만 신경써주면 되거든요.” 서산의 땅은 평택의 기름진 땅과 달리 소금기가 남아 있고 자갈 등이 많아 척박해 많은 사람들이 농사짓기를 포기했다. “처음엔 그렇게 힘들겠지만, 4~5년 정도 고생하면 나아지겠죠.” 봉씨의 말이다.

조태신(67) 노인은 도두2리 전 이장이다. 그는 도두리로 이사온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노인들의 보상금은 대부분 자식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의 보상금은 대부분 자식들의 손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아들이 서울에서 집을 샀다는데, 이번주 토요일에 내려온다고 했거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뭘 어떡해, 달라면 줘야지. 자식 이기는 부모 봤는가.”

최정운(67)씨는 조씨와 동갑내기 친구다. 그는 용인에 있는 미군부대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일을 하니까 다행이지 뭐.” 그는 2007년 9월에 퇴직한다. 적잖은 보상금을 받았지만, 이미 재산 대부분을 4남매에게 나눠주고, 남은 돈은 통장에 넣고 산다.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ㅁ(72)씨는 자식들이 통장에 든 보상금 1억3천만원을 모두 빼가고 말았다. “아들이 일 보게 도장과 통장을 좀 달라고 했거든.” 돌아온 통장에는 달랑 5만원이 남아 있었다.

대추리에서 10년 동안 이장을 지낸 임정석(66)씨는 평택 상공회의소 앞에 자리한 양평해장국집에서 소일하고 있었다. 그의 세쨋며느리가 가게 주인이다. 그에게도 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하겠냐”는 전화가 왔지만, 거부했다. 그는 땅 7천여 평과 건물을 정부에 넘기고 14억3700만원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그는 평택에서 3대째 살아온 토박이다. 그는 2004년 12월20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쌀 개방 반대”를 외치며 서울 성수대교·한남대교·성산대교 등을 점거 투쟁했을 때 성산대교 위에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지금도 마을 생각을 하면 너무 아쉬워. 국가에서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가.” 그는 가끔 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우리 모두 희생자 아니겠소?”

수십 년 동안 유지된 주민들의 안온한 공동체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나간 주민들은 남은 주민들을 “빨갱이”라고 불렀고, 남은 주민들은 나간 주민들을 “배신자”라고 불렀다. 불만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는 아니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오랜 투쟁으로 같은 시기에 미군기지 확장 지역에 포함된 서탄면·신장동 쪽(오산 공군비행장 주변) 사람들에 견줘 적잖은 손해를 봤다. 서탄 쪽의 집터는 평당 120만원, 논은 18만원으로 보상가가 책정됐지만, 대추리·도두리가 포함된 팽성 지역은 집터 60만~70만원, 논 15만원 선에서 보상가가 책정됐다. “그렇지만 방법이 있나? 우리는 어차피 안 될 싸움이라고 판단한 거고, 그 사람들은 끝까지 해보겠다고 한 거고.” 양평해장국집에 모인 노인들은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고 일어났다. 고향은 사라졌고, 머잖아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 무성의한 정부 정책의 희생자 아니겠소? 답답하니까 그만 얘기합시다.” 임정석씨가 말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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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협의 매수에 응한 주민들 대표 박종혁씨]</font>

<font size="4" color="#216B9C">챙길 건 제대로 챙겼어야지…</font>

<font color="darkblue">남은 사람들 잘못은 없어…김지태 이장만 생각하면 가슴 아파</font>
박종혁(51)씨는 스스로를 ‘매수자 협의회’ 회장이라고 불렀다. 미군기지 확장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평택 대추리에서 국방부와 협의 매수에 응하고 나온 사람들의 대표라는 뜻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어차피 정부 정책에 맞설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투쟁은 투쟁대로 진행하더라도 최대한 정부로부터 빼낼 것을 빼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font color="#216B9C">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가?</font>
=마을에 있을 때보다 더 좋겠는가. 당장 직업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다. 대부분 나이 드신 노인들이라 일자리 찾기가 만만치 않다. 대추리에 있을 때는 아파트 관리비나 부식비 등이 들지 않는데, 밖으로 나오면 다 돈이다. 그래서 정부 쪽에 건의해 공공근로 일자리라도 달라고 했다. 땅이 많아 보상금이 많은 사람들이야 상관없지만, 집 한 채 가지고 혼자 사는 할머니들은 대책이 없다. 안에서 투쟁하는 사람들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싸움이 빨리 끝난다. 일부 사람들은 서산 쪽으로 농사를 지으러 갔다. 대추리 땅에 견주면 형편없지만, 자식과 땅은 공들인 만큼 좋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듯 척박한 땅을 다시 옥토로 바꿔야 한다.
<font color="#216B9C">보상은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하나.</font>
=그게 문제다. 우리는 투쟁하느라 감정평가 과정에서 우리 쪽 감정평가사를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미군기지 터로 수용된 서탄 쪽 사람들보다 보상가가 낮게 책정됐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정부에서 빼낼 것은 확실히 빼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했다. 남은 사람들 그렇게 고생해 투쟁해서 얻은 게 뭔가. 어차피 해도 안 되는 싸움, 챙길 것이라도 제대로 챙겨 나가야 하지 않겠나. 남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도 결국 그거다.
<font color="#216B9C">평화롭던 마을이 둘로 쪼개진 것 같다.</font>
=결국 모든 문제의 잘못은 정부에 있다. 남은 사람들은 “고향 지켜보겠다”고 남은 것이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나온 것이다. 주민들은 잘못이 없다. 정부는 우리를 성의 있게 설득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빼내나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는 와중에 마을이 둘로 갈가리 찢어졌다. 지태(김지태 대추리 이장)가 감옥에 있는데, 솔직히 지태가 무슨 잘못이냐.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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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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