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절대권력, 도로를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재편성되는 도시문화…쇼핑몰이 시민들의 삶에 ‘성소’로 자리잡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약화시켜
▣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유명한 사회·건축비평가인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공간이 자동차의 영향으로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을 한 편의 기록영화를 보듯이 흥미롭게 묘사한 바 있다.
“자동차로 인한 도시의 망실은 너무나 낯익은 과정을 밟는 것이어서 이것을 묘사할 필요성도 거의 없다. 도시가 파괴되는 과정은 처음에는 조금씩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마침내 무섭게 집어삼키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거리 하나가 이쪽에서 넓어지고, 또 다른 거리 하나가 저쪽으로 직선화된다.

넓은 길이 일방통행로로 바뀌고, 기존의 가교가 수용능력의 한계에 다다름에 따라 이층화되고, 저 너머를 통해서 고속도로가 뚫리고, 그리고 마침내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망이 뚫린다. 점점 더 증가하는 자동차들의 정차를 위해서 점점 더 많은 땅이 주차장으로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단계도 그 자체로는 결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단계 하나는 전체적 변화에 그 나름으로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가속화한다. 이것은 마치 습관성 중독에 걸린 것과 같다.”
가로등과 난간까지 하나의 기준으로
이처럼 자동차라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불도저가 대다수 도시의 산허리를 자르고, 농경지를 훼손하고, 하천을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터의 위치와 모양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 한마디로 도시공간 전체가 자동차 의존형 도시문화의 거센 물결에 밀려 자동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렌초 피아노와 함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도시 디자이너인 리처드 로저스는 도시 자체가 자동차라는 잣대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거나 획일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동차 통행이 도시계획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 되면서, 가로의 모서리 부분과 공공 공간의 형태와 재질은 모두 자동차를 위한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결국 전체 모습, 건물 배치, 도로 바닥 재료, 가로등, 난간에 이르기까지 전 도시가 이 하나의 기준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제 서구 사회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는 모든 도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대지주이자 건축주로서 명실상부하게 천하를 손아귀에 거머쥐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가 절대 권력을 지닌 군주처럼 되면서 도시의 꼴은 도로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성되고, 거리나 건축물 역시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얼굴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양식도 자동차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태로 끊임없이 바뀌어가고 있다. 적당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도심과 인구 밀집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대형 할인점과 패밀리 레스토랑, 멀티플렉스 등과, 교외에 입지한 전원형 식당가와 자동차 쇼핑몰 등이다. 이들은 수도권은 물론 지방의 대도시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다.
불필요하게 커진 표지판과 간판
이라는 책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문화사가 모리스 버만은 평균적인 미국 사람들의 삶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은 바로 쇼핑몰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에게는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기 의식은 없고, 그 대신 철저하게 소비자와 고객으로서의 의식만이 있어 오늘날 쇼핑몰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공간, 즉 ‘성소’(聖所)라고 버만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한국인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이마트, 홈에버,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와 CGV나 롯데시네마 등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 등을 가장 주요한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태도만 보더라도 말이다.
자동차 의존형 도시공간의 창출은 전통적인 블록의 패턴을 와해시키고 도시의 기능이나 공동체의 결속력 약화를 필연적으로 유발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살아 숨쉬는 느낌도 사람 사는 맛도 나지 않는 황폐한 도시를 양산하게 된다. 그것은 자동차가 도시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사람 간의 교류를 차단 또는 단절시키는가를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1970년대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돈 애플야드가 수행한 연구를 보면, 자동차 교통량 증가가 ‘마을 내에서는 물론 도시 전체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람들의 고립을 부추기는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행량이 적은 한산한 가로에서는 ‘가정의 세력권’이 길 양편으로 광범위하게 미치지만, 통행량이 많은 복잡한 도로에서는 길 건너편의 블록과 사회적 교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세력권이 자신의 집에 국한할 정도로 급격히 축소되어 고립이 한층 더 강화된다.
자동차가 인접 지역에 사는 사람들 간의 교류만을 이렇게 막고 고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속도 또한 도시의 외관이나 가로 시설물을 왜곡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주변을 순간적으로 보고 지나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건물과 표지판, 간판, 신호등 등이 불필요하게 크고 현란하고, 그리고 거칠게 만들어져 시민들의 심성 또한 불안정하고 포악하게 만들고 있다.
자기중심적 인간을 양산하다
‘개인 자동차’의 폐해는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는 사람들의 생활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다른 어떤 기계보다 더욱 크게 공헌했고, 한국인의 삶과 도시 환경, 나아가서는 지구 생태계에도 막대한 손상을 입히고 있다. 개인 자동차는 절대로 우리의 삶과 공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없다. 특히 석유정점(peak oil)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자동차 의존형 도시사회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신속하게 만들어 자동차에 의존하는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만 한다.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문명의 이기이자 위대한 발명품처럼 떠받들어온 자동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든 우리 삶의 개인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걷고 싶고 자전거 타기에 편한 도시를 만들고, 대중교통 지향형 도시를 만드는 데 우리의 모든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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