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외세가 권력투쟁론을 조장”

등록 2006-06-15 00:00 수정 2020-05-03 04:24

시위대의 고함과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에 둘러싸인 마리 알카티리 총리… 나와 샤나나는 전혀 문제 없었고 정체불명 안팎 세력들이 쿠데타 충동질

▣ 딜리=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여기도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 판이다. 정부청사 경비를 중무장한 외국 군인이 대신하는 것도 눈꼴사납지만, 그들이 한 나라 총리실 들머리부터 문지방까지 넘나들며 설쳐대는 꼴이란…. 뭐, 달리 할 말도 없고, 이런 정부의 총리를 잡겠다고 난리친 자신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마리 총리의 얼굴도 전보다 더 어두웠다. 이 판에 밝았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그이에게 아직도 말할 기운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 처지에서 오히려 ‘이런 판에 그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못내 염려스러웠다.

사퇴할 계획은 전혀 없다

(악수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뭘 묻는다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 판에 인터뷰를 받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총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교묘히 조작한 게 뒤섞였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나라 안팎 세력들이 개입한 건 확실하다.

외국 개입을 말하는데, 누군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 (대답 없이 빙그레 웃다가) 그건 내게 물을 게 아니라 기자인 당신이 파헤쳐야 할 일인데.

그래서 지금 파고 있는 거다. 펜을 놓을까(off the record),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 총리는 그런 말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리다.

외국군이 문지방을 드나드는데, 기분이 괜찮은가?

= 음, (뜸 들이다가) 파병 요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회·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고 있다.

지난주 당신은 이번 사태를 “누군가의 쿠데타 획책”이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나?

= 독립 뒤부터 계속된 일이다. 지난해 90일간 시위도 그랬고…. 안팎 세력이 결탁한 시도다.

당신이 심증을 두는 ‘누군가’가 대체 누군가?

= 외세와 동티모르 그룹.

이거, 너무 헷갈리게 만든다. 총리는 ‘누군가’란 말만 하고, 외무장관 라모스 오르타는 ‘제3세력’이란 말만 하는데, 왜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는가?

= 우린 그걸 밝혀낼 만한 정보력이 없다.

(창밖의 시위대를 가리키며) 당신의 사퇴를 요구하는 저 소리들을 듣고 있나?

= 이게 민주주의다. 만약 내가 저들의 말처럼 독재자라면 그냥 쓸어버렸지 않겠나. (폭소)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2002년, 2003년, 2005년, 똑같은 그룹들 소리다.

저들이 누군가?

= 기자 감각이라면 알 것 아닌가. 나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문제는 소리 없는 나라 밖 세력들이겠지만. 우린 작은 정부라 외세 개입 증거를 밝혀낼 만한 힘이 없다. 심증은 가지만….

어쨌든 반대쪽에서는 현 사태의 본질을 당신의 축출에 맞추고 있다. 문제의 뿌리도 해결책도 모두. 이 사태를 풀기 위해 사퇴할 계획이 있나?

= (정색하며) 없다. 전혀 없다! 적어도 60% 넘는 시민이 우릴(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지지해왔다. 그건 당만이 결정할 수 있고, 만약 당이 물러나라면 바로 이 순간에도 나는 떠난다.

그러면 다음 선거(2007년) 때까지 간다는 뜻인가?

= 그렇다. 이게 헌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볼 때, 유일한 길이다.

어떤 총리가 미세 경영까지 챙기나

어제 산으로 가서 알프레도(반란군 지도자)를 만났다. 그이는 당신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없고, 따라서 어떤 해결책도 없다고 하던데?

= 작은 그룹들이 저마다 그렇게 정부를 협박하고, 그때마다 총리가 물러나면 민주주의는 끝이다.

현실적으로 그이는 작은 그룹이 아니다. 정부군 병력 1400명 가운데 600명을 몰고 나갔다.

= 무슨 말을! 동티모르 인구가 100만 명이다. 군대는 국가 조직의 일부고, 그들은 그중 몇몇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 사태를 어떻게 풀겠다는 건가?

= 이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의회와 정부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모든 조직이 힘을 합쳐 먼저 국가의 안정을 확보하고, 그 다음에 군대의 위기를 풀어가야 한다.

그걸 위해 대통령 샤나나와는 상시적 채널이 열려 있나?

= 물론이다. 우린 헌법기구로서 회의체가 있다. 개인적인 전화 같은 건 쉬운 일이고.

돌아보면, 이 사태는 제헌의회 시절부터 대통령제를 원했던 샤나나 쪽과 내각제를 원했던 당신 쪽이 충돌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따라서 이건 권력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아니다. 이 제도는 선거로 선출된 제헌의회가 결정했고, 우린 민주주의 헌법을 따라왔다.

내 뜻은 권력 분점에 실패했다는 거다. 제도를 따지는 게 아니다. 대중적·국제적 유명세를 지닌 샤나나가 상징성만 있는 대통령을 하면서부터 정부를 장악한 당신과 충돌할 수밖에.

= (말을 자르며) 동의한다. 독립하고 처음 2년 정도까지는 그랬다. 그 뒤론 샤나나가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 국가 지도자로서 ‘조화’를 이루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근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 외세가 나와 샤나나 사이의 ‘권력투쟁론’을 조장해왔다. 그들이 사회 혼란을 부추겼다.

문제는 당신이 그 핵심에 있다는 거다. 사람들은 총리의 실정과 부정부패, 차별을 탓해왔다.

= (소리를 높이며) 뭐가 실정이고 차별인가? 어떤 총리가 미세 경영까지 직접 챙길 수 있는가? 그런 게 총리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총리를 본 적이 있나? 차별이라고? 어떤 차별?”

반대쪽에서는 ‘동서 차별’을 주장해왔잖은가? 정책 등의 거시적 측면만 따지고 싶겠지만, 미세적인 부분에서도 결과는 총리 몫이다. 그럼 정부는 누가 책임지나?

= 독립 전인 1999년을 보면 동부 출신이 주류인 게 맞다. 그래서 균형을 잡고자 애썼고, 그 결과 동티모르군(FDTL) 1400명 가운데 800명을 서부 출신으로 짰다. 그중 600명이 동서 차별을 외치며 이탈했다. 지금 남아 있는 800명 가운데도 200명은 서부 출신자다. 자, 현실은 정반대다. 차별을 외치려면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동서 출신 군인들 간 임금과 승진 차별을 말하기도 하던데?

= 어떻게 한 병영 안에서 군인들에게 다른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겠나? 승진 문제도 마찬가지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이 있는데.

그러면 축출한 군인 600명을 다시 받아들일 계획이 있는가. 사태 해결을 위해서?

= 대통령, 정부, 의회라는 헌법기관이 법률적 절차를 거쳐 고위급 위원회를 결성해 심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그들 600명이 다짜고짜 차별을 외치며 병영을 이탈했던 거다. 그래서 정부는 불법 행동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사회주의자? 철 지난 이야기들

이탈자들의 뒤를 받치는 게 누군가?

= 모른다. 용서해라. 우리 정부는 그런 걸 캘 만한 정보력이 없다.

알려진 바로는 이탈자가 600명인데, 실제로는 수가 얼마나 되는가?

= 한 300명쯤 된다. 최초 이탈자 600명 가운데 반쯤 되돌아왔고, 나머지는 알프레도를 따라 아이레우 지역에 머물고 있다.

만약 그들이 당신의 퇴진을 외치며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면?

= 난 우리가 대화를 통해 그들을 되돌아오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가?

= 처음부터 그랬다. 정부가 합법적인 방법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거부했다. 그래서 오늘 외국군이 들어오는 사태로까지 발전해버린 거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반대자들이 당신 개인에 대해 공격해온 부분들을 정리해주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당신이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들 하던데?

= 정치적 신념은 개인의 권리다. (겸연쩍게 웃으며) 요즘 세상에 사회주의 국가가 어디 있나? 어떤 사회주의 국가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같은 자본주의 도구들을 받아들이더냐?

사실 독립 전에는 샤나나 대통령도 라모스 오르타 외무장관도 당신도 모두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했다. 근데 그런 철 지난 이야기들이 왜 지금 다시 공격용 무기가 된다고 보는가?

= 그런 논쟁은 동티모르의 전통이다. 1975년 무렵을 봐라. 모두가 사회주의 혁명을 독립투쟁의 무기로 내세웠다. 그러더니 지금은 그걸 서로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 있다. 독립투쟁 시절 당신이 외국에 나가 있었다는 건데?

= 맞다. 난 아프리카에 있었다. 뭐가 문젠가? 나라 안팎에서 모두 독립투쟁에 헌신했는데.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었던 라모스 오르타를 나무라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왜 나만 문제가 되는가?

“총리가 정신없이 바빠서 15분밖에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강조했던 비서의 눈길이 점점 예사롭지 않게 변해갔다. 애초 5분도 좋으니 부디 시간을 내달라고 사정했던 기자가 40분 가까이 총리를 잡고 있으니 그럴 법도.

총리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든 게 정상이고 여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편안한 딜리였다.

적어도 다시 정부청사를 나와 50여 명 시위대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정체불명의 아이들이 도심 한쪽에서 불을 지르는 풍경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