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의 쓰나미가 다가오는 가운데 대비책 마련에 고심 중인 청와대… 찬반 양론 엇갈리지만 탈당 흐름이 우세, 개헌론을 끌고가긴 힘든 상황
▣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방선거는 끔찍한 악몽이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서는 밥 다 지어놓고 코를 빠뜨렸다. 실망감에 정치를 그만두려고도 했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참패는 대통령 후보 지위마저 흔들었다. ‘후보단일화협의회’는 등 뒤에서 칼을 꽂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지지도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6·13 지방선거에서 부산·울산·경남 세 곳에서 전패할 경우 대통령 후보직을 내놓고 재신임을 받겠다”던 그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지방선거와의 모진 악연이여
그 뒤 4년, 똑같은 비극이 코앞에 닥쳐오고 있다. 선거 초반만 해도 청와대는 비교적 느긋했다. “어차피 선거 막판이 되면 지지층은 다시 모인다. 설사 16개 시도지사를 모두 내주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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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들여다보면 45% 대 55%의 승부다. 그 결집된 힘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힘있게 국정을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희망사항이었다. 또 올해 들어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46%까지 치솟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희망의 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한나라당의 반토막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4년 전에는 노 대통령이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정치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거기에 몸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더 궁색하다.
다급해진 청와대는 요즘 이병완 비서실장과 소문상 기획조정 비서관이 중심이 돼 선거 이후 펼쳐질 다양한 시나리오를 짚어보며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관심사는 노 대통령의 탈당 여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연정을 제안할 당시 탈당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1월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한 만찬 간담회에서 “대연정 제안 이후 당에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서 당시 당 지도부에 탈당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며 “그러나 당시 반대가 심해서 못했고, 그걸로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상생·협력과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무당적을 생각해보았으나, 열린우리당에 끼칠 혼선과 책임정치의 정신에 어긋나는 점 등 때문에 뜻을 접었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었다.
지난해 여름의 탈당은 노 대통령이 나서서 선택한 것이었다면, 올여름에 닥칠 탈당 상황은 등을 떠밀려서 맞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 참모는 “지방선거 이후 정계 개편은 불가피할 것 같다.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지고 있지만, 그 중심축은 민주당과의 통합이 될 것이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노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만큼,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통합에 적극적인 호남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같은 목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직 노 대통령에게 보고서가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탈당을 놓고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탈당이라면 먼저 정치적 중립지대로 옮겨감으로써,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2대 국정 과제를 추진하는 데 초당적 협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찬성론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임기 말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가려면 최소한의 국회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당을 포기할 경우 고립무원에 빠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지역주의 탈피’라는 철학과 충돌
하지만 아무래도 탈당 쪽 흐름이 조금이나마 더 우세해 보인다.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이 노 대통령을 비켜갈 것 같지 않고, 열린우리당이라는 틀이 깨질 경우 ‘국회 기반’이라는 탈당 불가론의 근거마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의 해체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한나라당마저 ‘변신’이 이뤄진다면, 노 대통령으로서는 탈당의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예상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노 대통령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의 변화가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이 됐든,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민주당·국민중심당을 함께 묶어내는 ‘서부벨트 연대론’이 됐든, 여기에 진보적인 사회세력까지 묶어내는 ‘반한나라당 대연합론’이 됐든 모두 지역 구도로의 복귀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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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근 “민주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또 하나의 지역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지난 1월25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갖고 있는 소신과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은 어느 지역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영남·호남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통합론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참모는 “통합론은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노 대통령의 소신과 어긋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를 통제하거나 자기 흐름으로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무적인 영역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당정 분리 정신인데다, 대권 창출이라는 더 큰 명분이 압도적인 힘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노 대통령의 개인 소회를 표명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정계 개편의 쓰나미에 휩쓸려가고 마는 것일까.
노 대통령이 정국을 이끌어갈 유력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개헌론이다. 파괴력 있는 개헌론을 제기하고 현실적인 힘으로 추동하는 데는 현직 대통령의 위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노 대통령은 “내 일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최근 당내 의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개헌을 많이들 생각하지만 그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유리한 상황에서 경기 규칙을 바꾸려들지 않을 것이고, 열린우리당은 당의 진로를 놓고 서로 동상이몽들을 하고 있어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9월 정기국회의 ‘정책 행위’가 중요하다
그래도 노 대통령이 무기력하게 끌려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된 얘기다. 선거가 끝나면 세금 등 양극화 해소 대책을 본격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대논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9월 정기국회 때는 양극화 해소책이 반영된 내년도 예산안과 중기재정계획을 놓고 정치권에서 이념과 지향점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노 대통령의 ‘정책 행위’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변수이고, 민주개혁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깃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참모들의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정계 개편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여전히 위력적인 중요변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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