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독일인이 본 월드컵…독일의 스위스 월드컵 우승과 비슷한 2002년 4강 신화… 2006년 여름 한국인에게 다시 기적이 오길 바라지만,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다
▣ 한네스 B. 모슬러(강미노) 주한 독일인·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1954년 독일 축구대표팀은 스위스 베른에서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면서 전쟁 패배와 나치 범죄로 완전히 꺾였던 독일인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특히 독일축구단은 약팀으로 평가됐지만, 결승까지 진출해서 우승 후보인 헝가리와의 전반전에 골 2개나 허용한 상황에서도 결국 3 대 2로 이겼다. 그래서 이 시합을 ‘베른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적’은 1954년 7월4일에 일어났다. 당시 독일인은 희망을 조금이라도 되찾음으로써 몇십 년 뒤 또 다른 ‘기적’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박정희가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저서에서 그렇게 찬양하는 ‘라인강의 기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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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되고 조작된 열기
한국과 독일의 인연(?)은 이미 1954년 스위스에서 시작했다. 당시 한국대표팀은 아시아 대륙에서는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여했다. 물론 독일과 붙지도 않았고, 헝가리에 0 대 9, 터키에 0 대 7로 패배했지만 참가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6월20일치에 실린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축구단에 대한 보도는 같은 면에 실린 연고전 보도보다 겨우 몇 줄 더 길었을 뿐이지만, 한국 축구의 역사에서 월드컵 첫 출전은 무시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당시 정전(停戰)된 지 15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국가대표단을 성공적으로 세계대회에 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비교가 된다.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치러진 월드컵의 열기 말이다. 1954년에 뜨거웠던 독일인들, 그리고 2002년 뜨거웠던 한국인들, 그들이 무엇인가를 공유한 것만 같다.
2002년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보여준 ‘열광’도 대단했다. 월드컵은 해외 동포들에게도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대중의 단순한 열기와 쾌락주의 말고는 이런 엄청난 덩어리의 등장은 공포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위험한 순진함이랄까? 왜냐하면 그 열정을 눈치 빠른 산업은 상업화하고 정치계는 정치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시민과 기업들이 자연스러운 열기와 기획으로 반응했지만, 2006년은 선전되고 기획되고 조작된 열기의 성격이 짙다.
스스로에 대한 견제와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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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월드컵을 묘사한 영화 <베른의 기적>의 감독 보르트만은 “세계대회 우승은 당시 독일인에게 새로운 활기와 일체감을 주고, 나치시대와는 다른 의미의 집단적 행복감을 줬다”고 말한다. 역사학자 중에서도 “세계대회 우승은, 당시 독일 사회가 전쟁 뒤에 짓눌려왔던 모든 것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주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서독연방공화국의 시작이었다”는 평가까지 내린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2002년 월드컵 때의 업적이 기적에 가까웠다. 2006년의 꿈까지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순수한 행복의 축제가 될지, 아니면 상업주의자들의 잔치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오히려 좋지 않은 예감이 강하다. 이번 월드컵의 열기가 스포츠의 악몽이 되지 않도록 가장 먼저 아드보카트호가 책임질 일이겠지만, 한국인이 자신의 사회에서 나아가 세계 시민사회에 빨간 신호의 기억을 남기지 않도록 스스로에 대한 견제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종의 자기 계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1954년 독일의 기적과 1936년 손기정의 기적을 생각하며, 2006년 여름 한국인에게 다시 한 번 ‘베를린의 기적’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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