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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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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태극마크 없는 한국 대표

등록 2006-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유일한 한국인 심판이 본 월드컵…자부심과 의무감은 선수들 못지 않아… 강화되는 규칙 급제공 해드리니, 공격은 과감하게 수비는 세심하게

▣ 김대영 2006 독일월드컵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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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날아온 이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15년 동안의 심판 생활이 뇌리를 스쳤다. 초등학교 경기를 통해 심판 데뷔전을 치르면서 어떻게 경기를 진행하고 언제 종료 휘슬을 불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던 일, ‘주심야노’로 낮에는 심판 보고 저녁에는 피곤한 몸으로 힘들었던 시절, 영하 13도인지도 모르고 새벽운동을 했던 경험, 지난달 독일에서 받았던 월드컵 심판 테스트까지…. 마침내 월드컵 심판이라는 훈장을 달았지만, 기쁨보다 중압감이 어깨를 누른다.

일본인 심판들과 트리오 시스템

2006년 독일월드컵 무대에 서는 69명의 심판 중에 아시아 심판은 단 6명(주심 2명, 부심 4명)에 불과하다. 나도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심판으로 독일 경기장을 밟게 된다. 대한민국, 나아가 아시아의 명예를 생각하면 남은 기간 동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어디 한국인뿐이랴. 우리 국민들이 밤잠을 설치며 월드컵 경기를 보듯이, 세계 시민이 자기 나라를 응원하면서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 것이다. 그래서 더욱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심판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작은 실수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밤잠을 설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심판 시스템과 판정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심판이 3명으로 늘어난 트리오 시스템이다. 나와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삼인조의 파트너들은 일본 주심 기미가와 도오루, 부심 히로시마 요시가즈. 이미 우리 삼인조는 스코틀랜드와 불가리아의 A매치, J리그 1경기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예행했다. 삼인조의 찰떡궁합은 필수고, 삼인조는 한 몸과 같다. 만약 1명이라도 독일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치르는 체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3명 모두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실제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서 한 사람 때문에 돌아간 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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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의 선전을 바라는 마음에 이번 월드컵에서 강화되는 규칙을 급제공(?)한다. 어느 방향이든 상대 선수의 안전을 위협하는 태클, 팔꿈치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행위는 가차 없이 레드카드를 받는다. 반칙을 범한 뒤 공을 들고 가거나 차는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돼 즉시 옐로카드를 받게 된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위해 오프사이드 규정은 완화된다. 공격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어도 그 선수가 플레이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온사이드에 있는 선수가 플레이를 하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지 않고 경기가 그대로 지속된다. 나 같은 부심은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다음 상황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태극전사들이 바뀐 판정을 몸으로 익혀서 공격 때는 과감하게, 수비 때는 세심하게 경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6, 진검승부의 그라운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심판 연락관으로 일했다. 우리의 힘으로 일궈낸 4강 신화는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가 개최국의 이점을 누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독일월드컵은 우리에게 진검승부의 그라운드다. 오직 실력만으로 한국이 진정한 축구 강국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태극전사들이 2002년 월드컵의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각오로 2006년 독일월드컵의 그라운드에 도전하기를 기원한다. 비록 태극마크는 달지 않지만, 한국 대표심판의 자부심과 의무감으로 그 길에 함께하겠다. 5월26일 독일행을 앞두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독일의 그라운드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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