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자가 본 월드컵…왜 여자가 땀을 흘리며 공을 차는 모습은 없는가…‘12번째 선수’라는 타이틀은 언제든 운동장을 누빌 수 있는 남자들의 것
▣ 이김나연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주의자
광고
2002년 6월 한 달 동안 월드컵을 나름대로 즐기고 친구들 앞에 나타나자 친구들은 나에게 대뜸 “대체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며 잠수를 탔냐?”고 물어봤다. 친구들은 내가 궁금했나 본데, 나는 사실 그녀들이 무얼 했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에서 내가 보낸 2002년 6월의 ‘공통적 일상’을 그들은 왜 함께하지 않았는지 궁금한 동시에,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로 하나 된 ‘공통적 일상’을 함께하기 싫어한 내 친구들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월드컵은 국제 축구대회 이상이기 때문이다.
공 한번 차려면 준비 할 게 너무 많아
많은 언론에선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도 축구를 즐긴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며 호들갑이었다. 여자들은 원래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었는데 이제 드디어 남자들과 ‘함께’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02 월드컵 때 거리 응원에 나섰던 사람의 절반 혹은 3분의 2가 여성들이었다고 침을 튀겨댔다. 그런데 이 응원이란 말, 참 낯설지가 않다. 원래 응원은 여자들의 몫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피부가 까맣게 탄 남학생들이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 하얀 얼굴로 운동장 밖 응원석에서 응원 수술을 흔들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여학생들은 운동장을 장악하는 게 아니라, 운동장 외부에서 응원하는 역할을 맡은 존재들이다. 여자들이 모여 있는 응원석은 운동장 밖에 있고, 운동장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이다. 워낙에 옛날부터 여자들은 운동장 밖에서 응원을 했던 집단이다.
2002 월드컵은 분명 축구에 대한 ‘경계 없는’ 열정을 표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옆집 아저씨가 새로 조기축구회에 가입해서 반짝이는 새 유니폼을 입고 동네를 활보하고, 초등학교 다니는 남자 조카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심지어 월드컵 직후 고액 축구과외까지 생겨났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웬일인지 ‘언니’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저 온라인 게시판을 맴돈다. “축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요?” “여자 축구, 어디서 하나요?” “축구에 관심 있는 여자분 또 없나요?” 여성들의 게시판을 맴도는 릴레이 물음들은 여성과 스포츠의 현주소를 대변해준다. 땀냄새와 자신을 보는 시선에 대한 걱정은 차치하고라도 공을 한 번 차려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남자들은 공만 들고 동네 공터에 나가면 ‘친구’들이 널려 있는 것에 비해 여성들은 축구를 하려면 함께할 멤버를 진짜 열심히 찾아야만 한다. 또 ‘진짜 축구’를 하기 위해 들이닥친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에게 쫓겨날 것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여성들의 ‘축구하기’는 집 앞 공터에서의 일상적 뜀박질이 될 수 없고, 집단적으로 잔머리를 열심히 굴린 뒤에야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이다.
광고
게다가 이렇게 공들여서 축구하기를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여성은 결코 ‘베컴’이 될 수 없다. 여자는 공을 차더라도 ‘여자답게’ 공을 차고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힘있게, 약간의 기술이라도 선보이며 공을 차는 여자들에게 ‘남자 같다’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 여성의 ‘정체’에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언젠가 방송 프로그램 <진실게임>에서 참가자들의 외모나 말투로 ‘진짜 남자를 찾는’ 진실게임을 벌였다. 누가 진짜 남자인지를 난감해하던 판정단은 출연진들에게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시연해보기를 요청하곤, 누가 남자인지를 확신하기도 했다. 이처럼 축구하는 모습은 여성·남성을 구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데, 열두 번째 선수 ‘붉은 악마 되기’는 여·남 구분이 없는 것으로 가정된다. 어떤 회사가 주최한 이벤트에 당첨돼 “친구야, 나 독일 가!”라며 텔레비전 광고에서 자랑하던 한 여성의 모습은 ‘우리’ 모두 열두 번째 선수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여전히 운동장은 익숙치 않다
‘열두 번째 선수’라는 타이틀은 정말이지 감격적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첫째는 선수 전용 운동장의 개념이 응원석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응원이란 역할에 붙어 있던 기존의 성별적 구분을 해체했다는 점이다. 단, ‘응원’이란 단어는 좀 간지러우니 ‘서포터스’(supporters)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감격에 취해 있다 보니 열두 번째 선수라는 좌표에서 여자인 나는 왠지 방향감각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광고
숭고한 애국심에 예외가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평등한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월드컵 마케팅을 위해, 월드컵엔 여자들이 필요하다. ‘태극전사’라는 타이틀 아래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여성의 이미지, 미스 태극전사 선발대회가 그것을 증명한다. 애초에 열두 번째 선수라는 타이틀은 열한 명의 선수들과 동등한 경기 참가자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를 할 수 있는 존재인 남성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또한 축구와 월드컵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같은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데, 여성인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여성과 땀냄새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취급했던 역사, 여성이 운동장을 점령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역사, 그래서 운동장 주변부에서 고무줄놀이만을 허용했던 역사는 여성이 월드컵에 열두 번째 선수로 참여하는 것이 결국 불가능한 프로젝트임을 증명해준다.
2002년 월드컵을 보내며, 2006년 월드컵을 기다리며 나는 이렇게 여성이 운동장 주변에 머물렀던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 나는 이미 다른 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매스컴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나한테 그저 ‘우리’라는 이름하에 ‘붉은 악마’가 되라고 한다. 2002년 ‘6월의 일상’과 같이 2006년 ‘6월의 일상’도 맞이하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꿈꿀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잔치였던 2002 월드컵은 여성들의 가슴에 무엇을 남겼고 또 2006 월드컵을 기다리며 무엇을 꿈꾸게 했는가? 많은 여자들이 <슈팅 라이크 베컴>을 보고 나서 파민더 나그라나 키이라 나이틀리처럼 땀을 흘리고, 공을 차면서, 머리를 흩날리며,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싶어했다. 심지어 내 친구는 그 영화를 보고 “내 다리가 달리기 위해 있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 우리는 운동장의 개념이 응원석·관중석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여성들은 운동장이 익숙하지 않다. 2002년에 여성을 월드컵에 결부시키며 쏟아냈던 스포트라이트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새삼스레 마치 새로운 것인 것처럼 쏟아지고 있다.
슈팅 라이크 베컴!
나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Reds go together’라고 쓰여 있는 빨간 티셔츠보다 축구공 하나를 준비하려고 한다. 그리고 축구를 잘하진 못하지만 ‘잘’하고 싶어하는 ‘언니’들을 불러모아야겠다. 그 ‘언니’들과 함께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응원하며, 자신만의 ‘베컴’처럼 축구공을 뻥뻥 차볼 것이다. 공을 차는 우리의 몸짓이 어색하지 않은 때, 운동장에 있는 우릴 보는 시선이 어색하지 않을 때 내 친구들도 나도 함께 신나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오세훈 부인 강의실 들어갔다가 기소…‘더탐사’ 전 대표 무죄 확정
지진에 끊어지는 52층 다리 점프한 한국인…“아내·딸 생각뿐”
[단독] 이진숙 ‘4억 예금’ 재산신고 또 누락…“도덕성 문제”
세상의 적대에도 우아한 68살 배우 “트랜스젠더인 내가 좋다”
계엄군, 케이블타이로 민간인 묶으려 했다…‘윤석열 거짓말’ 증거
[사설] 헌재 ‘윤석열 파면’ 지연이 환율·신용위험 올린다
‘용산’ 출신, 대통령기록관장 지원…야당 “내란 은폐 시도”
‘65살’ 노인 연령 기준, 44년 만에 손보나…논의 본격화
산불에 할머니 업고 뛴 외국인, 법무부 “장기거주 자격 검토”
탄핵소추 111일 만에…4일 11시 ‘윤석열 심판’ 선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