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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짝짝짝 FTA반대!

등록 2006-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던 3월16일, 한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격파하고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지상파 방송의 9시 뉴스는 모두 한-일전 승리 소식들로 채워졌다. 이 경기를 생중계했던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정확히 37분을 할애해 승전보를 보도했다. 9시 뉴스 시간이 통상 45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의 <뉴스데스크>는 WBC를 위한, WBC에 의한, WBC에 대한 방송이었다고 할 만하다.

2002년보다 보수화된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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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이날은 지난 4년7개월 동안 법정 싸움을 벌였던 새만금 공사 매립면허 무효소송이 기각당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한국형 개발주의와 왜곡된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도 드문 개펄 생태보존 지역을 지도에서 삭제해버린 비극의 날이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새만금 사건은 WBC의 과잉된 승전보 소식에 압도당해 제대로 시청자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월드컵 이벤트는 야구의 정치적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1962년 칠레 정권은 격렬한 파업을 무마하는 데 월드컵을 이용했고, 1966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월드컵 우승을 틈타 임금을 동결했다. 1976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정권은 잔혹한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이용했고, 페루 선수단을 매수해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했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해 본선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6~7월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점이다. 주지하듯이 한-미 FTA는 단지 무역 개방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지형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이고, 향후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줄 정치적 사안이다. 지난 WBC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스포츠 애국주의의 열기가 지속돼 배타적 내셔널리즘이 기승을 부린다거나, 현실정치 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정치적 ‘잠수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쉽게 속단할 수는 없지만 단선적으로만 생각해보면 ‘2006 독일월드컵’은 한-미 FTA 반대, 혹은 평택 미군기지 확정 이전반대 운동 정세에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선 탈락이 사회운동에 유리할까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2006년 독일월드컵은 2002년처럼 개최국가로서의 문화적 프리미엄이 없는데다 경기 시간대와 경기 참여 방식이 현장 중심으로 이뤄질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월드컵 담론은 기업과 미디어에 의해 주도될 것이 분명하다. 즉, 몸으로 부딪치고 참여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보다는 대부분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 채널을 통해, 상품광고 형식을 통해 월드컵의 열기를 간접 체험하는 방식이 두드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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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미 올 초부터 사회적 공분을 야기했던 특정 기업들의 지나친 월드컵 상품 전략들이 문화적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고, 급기야 공공 광장의 사용을 사기업화하는 현상이 초래됐다.

다른 한편으로 2006년 한국 사회 정세는 2002년과는 달리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다. 이는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시민들의 국익우선론이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사례나 동아시아 내 한류에 대한 시민들의 우월의식, 그리고 지난 3월 WBC 정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과열된 내셔널리즘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국익을 기반으로 한 신우익주의의 등장이 월드컵의 열기를 오히려 보수적 애국주의로 무장해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2002년 시민들의 참여 열정으로 탄생한 참여정부가 한-미 FTA 협상카드를 정권의 정체성 전략으로 내세우는 마당이고, 스크린쿼터제가 국익을 위해 축소될 수 있다거나 한-미 FTA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협상이라는 대중의 정서들이 예상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2002년과는 다르게 한국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월드컵은 한-미 FTA 운동 정세와 무관하거나 관련이 있다 해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는 없을까? 차라리 한국 선수단의 예선 탈락과 월드컵 국면의 조기 마감이 사회운동 진영의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월드컵 기간에 월드컵 응원현장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FTA 대미 협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의 실상을 알릴 수 있다면, 단순히 월드컵 자체를 보이콧하는 운동보다 긍정적인 정치 효과를 낳을 것이다. 한-미 FTA가 스크린쿼터 축소나 전면 폐지를 전제로 한 것이고, 스크린쿼터 폐지는 곧 미국의 다국적 자본의 방송 개방을 전제로 한 것인바, 이번 기회에 한-미 FTA가 문화적 주권의 상실은 물론 한국 문화 기반의 총체적 몰락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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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94년 미국월드컵을 기점으로 월드컵의 경제학은 이미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와 글로벌 문화자본의 중심에 있다. 월드컵의 모든 광고와 이벤트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만일 한-미 FTA가 시장의 완전한 개방으로 이어져 공공부문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시민들의 스포츠 채널권이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에 봉쇄돼 돈을 내지 않으면 중계를 볼 수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응원할 수 있는 광장마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먼저 거리의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컵의 시민적 열기로 시작된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돌이켜보면 시민들의 자발적 열정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정치적 대의권력들이 철저하게 이 열정을 묵살하거나 왜곡해왔음을 알 수 있다. 몇몇 글로벌 대기업에 막대한 부만 안겨주고, 민생의 곳곳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공공성의 파괴와 이로 인한 서민 경제의 파탄을 예고하는 한-미 FTA야말로 현재의 참여정부가 2002년 시민적 열정을 가장 극적으로 배반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NO FTA” 골 세리머니를 기대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국가, 자본, 미디어의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흡수 공세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없던 일상을 반전시킨 장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국면은 시민들의 따분한 일상의 신경계를 건드렸고, 국가의 장기 폭력과 자본의 독점, 정치의 치졸한 매수로 오랫동안 감옥의 그늘에 살았던 많은 시민들의 ‘화려한 외출’을 자극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의 국면이 2002년보다 보수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하고 자생적인 사건 속에서 현재의 한-미 FTA로 대변되는 한반도 정세의 위기를 반전시킬 계기가 마련될지 모르겠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이어질 시민들의 응원 열기의 감수성 안에 잠재돼 있는 자율성의 에너지가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는 한-미 FTA에 제동을 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한국 선수 누군가가 월드컵 경기에서 골 세리머니로 “NO FTA”가 새겨진 러닝셔츠를 들어올리는 사건의 반전을 꿈꾸면서 현장에서 사건들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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