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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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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거짓말 베스트 10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말로 “우리가 이전 요구했으니 어디든 땅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일 뿐인 용산 기지 이전을 축소·과장·왜곡하다

▣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jjepark@pspd.org

주한미군이 이전한다면 평택이든 어디든 주둔할 땅을 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우리가 먼저 이전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보는 일반 시민들의 생각인 것 같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도 평택 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과거 용산기지 이전을 주장했다는 점을 들어 ‘이율배반적’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리고 주한미군 기지 이전사업이 한-미 간의 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연 그런가? 그럼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평택 지역 강제집행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모두 ‘반미주의자’여서, 미군 철수를 노리고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걸까?

문제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지난 2003년에 시작된 주한미군 기지이전 협상에서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한-미 동맹의 중대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지난 3년간의 협상 결과 용산기지와 미 2사단 등을 평택으로 확장 이전하는 것은 단순한 미군기지의 이전이 아니게 됐다. 공간 이동의 의미를 넘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전략적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용산기지 이전사업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평화와 국민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엄청난 국민적 재정 부담이 뒤따르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만 되풀이하며 미국 쪽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경우에 따라선 협상 결과에 대한 자의적 평가와 막연한 기대를 협상의 성과로 부풀리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축소·왜곡하기도 했다. 정부의 ‘거짓말과 말 바꾸기’는 다음 10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용산기지 이전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계없다?

정작 미국은 용산기지 이전을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본다. 미국의 해외 주둔군 기지 재배치에 관한 보고서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기지 이전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실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미 2사단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관련 기지 이전 협상과 동시에 진행됐고, 현재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미 2사단 등 미군기지 이전이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서둘러 합의해주었으나, 같은 시기 같은 곳으로 옮겨가는 용산기지 이전을 연계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2. 용산기지 이전은 한국 쪽 요구에 의한 것이니 비용은 전액 우리가 부담한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기지 이전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이 GPR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한국 쪽이 이전 비용을 전액 부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단 한 차례도 비용 분담 요구를 하지 않은 채 미국의 비용 전액 부담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런 협상 결과를 두고 2004년 미 국무부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협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미국 쪽이 용산기지에 계속 주둔하기를 고집했다면, 이런 평가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3. 주한미군 기지 이전은 ‘신속기동군화’ 등 역할 변화와 관계없다?

미국은 해외 주둔군 기지를 통폐합·이전하고 미군의 군사 변환과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미 2003년 주한미군 기지이전 협상 당시 미국 쪽이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미 2사단은 미군기지 이전협상이 진행 중이던 2004년 하반기부터 세계 최초의 ‘신속기동군’으로 탈바꿈했다. 미군기지의 평택 확장·이전은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토대인 것이다.

4. 기지 이전에 대한 추가 비용 부담은 절대로 없다?

추가 비용 부담은 절대로 없다던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현재까지 정부 쪽 발표나 미군 장성들의 발언에서 확인되는 이전비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실제 주한미군 기지 이전을 위해 우리 쪽이 부담하는 비용은 용산기지 이전비용(35억~55억달러)과 미 2사단과 LPP에 따른 기지이전 비용(2004년 국방부 국회 제출 자료를 보면, 최소 16억달러 이상), 이전비용으로 쓰일 수 있는 방위비 분담금(국방부 추산 17억달러)을 포함해 최소 68억달러에서 88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 이는 국내법에 따라 기지를 사용하기 위한 환경복구 비용과 평택 기지의 성토 비용을 제외한 것이다.

5. 반환 기지 환경 치유는 미국이 부담한다?

미 국방부의 입장은 다르다. 미국 쪽은 ‘환경보호 특별양해각서’를 근거로 정확한 수치도 없는 ‘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환경오염(KISE)의 경우 말고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미 국방부의 입장은 2005년 미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실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이나 환경절차 합의서는 미군 쪽에 실질적인 환경 치유를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협정 체결로 미국 쪽의 오염 치유 의무가 강화됐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제 정부 스스로 ‘대승적으로’ ‘국익을 위해’ 미국 쪽에 요구하지 말자고 하고 있다.

6. 이전비용 총액 제출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손해다?

당시 정부는 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없이 시설종합계획(MP) 제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액도 제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껏 최종 MP가 나오지 않은 채 기지 이전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6월로 예정됐던 MP 제출은 9월로 늦춰졌다. 평택에서 전격 ‘군사적전’을 벌일 까닭이 없었다.) 또 정부는 국회가 예산 승인권을 통해 이전비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국회가 한-미 간 합의사항에 제동을 걸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국회 요구에 따라 MP를 수정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국회의 실질적인 비용 통제는 불가능하며,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MP 작성과 국회의 사전보고 등을 통해 소요 예산을 최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정부 의지에 달린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미군기지의 조속한 이전에 합의해주는 데 급급했다.

7. 기지이전 협정 비준, 더 시간 끌 수 없다. 연내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외 주둔 미군 중 주한미군의 재배치가 가장 먼저 타결됐다. 그래서 미국이 해외 미군 재배치를 추진하는 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내세운다. 한국 쪽이 이전비용을 대폭 지원하면서까지 기지 이전을 시급히 합의해줘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주일미군의 재편만 보더라도 미-일 양국은 지난 5월1일에야 주일미군 재편 최종보고서에 합의했다.

8.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정부의 자의적인 기대에 불과하다. 정부는 공동성명 채택으로 동북아 분쟁에 대한 주한미군의 입출을 제어할 수단을 마련한 것이라고 자평했으나, 실제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을 제어할 장치는 전무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 반대라는 한국 쪽의 입장에 명시적으로 동의한 적이 없다. 또 주한미군 이동에 대해 한국 쪽 동의를 구할 것으로 볼 근거도 없다.

9.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드나드는 것이나, 한반도 이외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위해 주둔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과 활동 범위를 규정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준 1·19 공동성명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라크 사례처럼 주한미군이 동북아 이외 지역에 나가더라도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10. 한-미 간 협의 과정을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겠다?

지난 3년 동안 한-미 동맹 재편 협상을 벌여오면서 정부는 비밀 유지에 온 신경을 썼고, 정보를 통제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투명성, 책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협상은 전혀 공개하지 않다가, 느닷없이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협상 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반대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아예 봉쇄하고자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은 미군의 역할 변경을 수용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할 동북아 전초기지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2004년 주한미군 기지이전 협정에 중대한 ‘목적 변경’이 생겼음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협상 과정의 절차적 하자, 비용 부담의 적정성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마치 우리 쪽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 호도했고, 사회적 합의와 비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처럼 강변했다. 따라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사업은 ‘국책사업’이 아니라 국회 청문회에 회부돼야 할 사안이다.

정부의 졸속·부실 협상과 이를 무책임하게 비준·동의해준 국회 때문에 국민들은 막대한 재정·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 모든 결과들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국회에 있다. 특히 국회의 책임 방기 수준은 도를 넘었다. 하루속히 청문회를 열어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에 관한 협상 전반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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