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일본서 팔꿈치에 공 맞고 내리막길 걸은 이종범의 일본전 대활약
뉴욕 메츠에 매정하게 버림받고 한화로 돌아온 구대성의 미국전 호투</font>
▣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구대성(37·한화)과 이종범(36·기아)은 대형 태극기를 맞잡았다. 관중의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 소리는 그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그들은 ‘개선장군’처럼 뒤따르는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운동장을 돌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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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6일 한국이 일본을 꺾고 세계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입성하던 날, 대표팀의 ‘큰형님’ 구대성과 이종범의 감회는 남달랐다.
이종범 괴롭힌 ‘몸쪽 공 공포증’
구대성과 이종범은 친구 사이다. 구대성이 이종범보다 한 살(호적상 두 살) 많지만, 둘은 89학번 동기다. 프로 무대에도 1993년 같이 데뷔했다. 어느새 불혹을 앞둔 둘은 국내와 국외를 오가며 그라운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리고 2006년 3월, 어쩌면 그들의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영광과 환희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당한 치욕과 수모가 숨어 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 미국전과 일본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옛 치욕과 수모를 통쾌하게 설욕했다.
이종범은 16일 일본과의 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잠시 목이 메었다. 일본 프로야구는 평생을 ‘야구 천재’로 살아온 이종범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겼다. 이종범이 누구던가. 호타준족의 장쾌한 야구로,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3회, 94년 안타·득점·도루 등을 석권하며 타격 4관왕, 96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등을 수상하며 국내 야구를 평정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야구 천재’였다. 천재는 98년 현해탄을 건너 일본 프로야구 명문 주니치 드레곤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첫해 이종범은 시즌 초 활발한 플레이를 펼치며 ‘바람의 아들’ 돌풍을 일으켰다. 수비 부담이 많은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은 3할을 오르내렸고, 간간이 홈런도 때렸다.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해 6월23일 한신 타이거스의 투수 가와지리 데쓰오가 던진 역회전 공에 오른쪽 팔꿈치를 맞고 쓰러졌다. 팔꿈치 뼈가 부러진 이종범은 사실상 시즌을 접었다. 이후 그라운드에 나섰지만, 극심한 ‘몸 쪽 공 공포증’에 시달렸다. 일본 투수들은 반쪽 선수로 전락한 이종범에게 집요하게 몸 쪽으로 승부했다. 더그 아웃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즈음 이종범의 머리에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생겼다.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증. 이종범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일본 진출 3년6개월 만인 2001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에 복귀한 뒤에도 맏형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팀 성적이 바닥을 헤메었기 때문이다. 타격할 때 힘도 부쩍 달렸다. 전성기 때 30개를 넘던 홈런은 2003년 20개, 2004년 17개에서 지난해에는 6개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하지만 ‘야구 천재’에게 노하우가 있었다. 그는 “상대 투수와 힘으로 상대하지 않는다. 공이 들어오는 코스에 따라 결대로 밀어치고 당겨친다”고 말했다. 이런 ‘순리 타법’으로 그는 2004년 0.260까지 떨어진 타율을 지난해 0.312까지 끌어올리며 부활했다.
구대성은 5년간의 일본과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WBC 개막전이 시작되기 직전인 3월1일 친정팀 한화 이글스에 복귀했다. 한화는 전 소속팀 뉴욕 메츠에서 내친 구대성에게 연봉 55만달러(5억3400만원)를 투자했다. 그가 한화 시절에 보여줬던 성실함과 뛰어난 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적은 연봉에 까다로운 조건 내건 메츠
그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1996년 다승(18승), 평균자책(1.88), 구원(40세이브포인트), 승률(0.857) 1위에 올랐다. ‘대성불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다승과 구원을 포함해 투수 부문 4관왕에 오르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에 등극했다.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해 일본과의 3·4위전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에 동메달을 안겼다. 이때부터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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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그는 별명대로 ‘일본 타자들을 잡으러’ 일본에 진출했다. 국내에서 뛴 7시즌 동안 61승58패, 151세이브, 평균자책 2.79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오릭스 블루웨이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했다. 첫해에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7승9패, 10세이브를 올렸다. 하지만 일본 타자들에게 구위가 읽히며 2002년 5승, 2003년 6승, 2004년 6승에 그쳤다. 일본 4년간 통산 성적은 24승34패에 평균자책 3.88을 기록했다.
그래도 오릭스는 그와의 재계약을 원했다. 하지만 구대성은 ‘꿈의 무대’ 빅리그에 입성하기 위해 적은 연봉과 까다로운 옵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었다. 메츠는 시즌 초 구대성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중간 계투로 무려 33경기에 나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 3.91의 썩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구대성이 어깨 부상을 입자, 미국은 그를 버렸다. 메츠에 입단할 때 두 번째 해에 구단이 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이른바 ‘1년+1년’ 계약을 맺은 게 화근이었다. 구대성은 한국행을 결심했지만 친정팀 한화에도 문제가 있었다. 계약서에 “두 번째 해에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때 자유계약선수(FA)로 풀어준다”는 조항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야구 낭인’이 될 뻔했지만 한화는 메츠에 이적료(비공개)를 지급하고 그를 다시 품에 안았다. 구대성에게 한화는 ‘보은의 팀’이지만, 메츠는 ‘한 맺힌 팀’이다.
WBC 대표팀서 구대성과 이종범은 팀의 ‘정신적 리더’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16일 일본전을 앞두고 “투수 중엔 구대성, 타자 중엔 이종범이 제일 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장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후배들을 잘 다독이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후배들의 병역특례 혜택을 위해 그들은 야구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다.
순리 타법과 토네이도 투구
두 선수의 활약은 대단했다. 팀 내 2번 타자를 맡고 있는 이종범은 2라운드까지 6경기에서 팀에서 가장 높은 타율 0.429(21타수 9안타)에 출루율 0.550을 기록했다. 특히 이종범은 유난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빛났다. 지난 5일 1라운드 ‘도쿄대첩’에서 1-2로 뒤지던 8회 1사 뒤 중전 안타를 뽑아낸 뒤 다음 타자 이승엽의 역전 투런 홈런으로 역전의 밑돌을 놓았다. 또 지난 16일 2라운드 일본과의 재대결에서는 0-0으로 팽팽하던 8회 1사 2·3루에서 구속 150km에 이르는 후지카와 규지(한신)의 빠른 공을 받아쳐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로 일본을 울렸다. 자신을 버린 일본에 통쾌한 펀치를 날리며 일본의 눈물을 빼놓은 것이다.
구대성은 지난 16일 일본전에서 홈런 한 개만 허용했을 뿐 5경기에서 8이닝 1실점으로 평균자책 1.33을 기록했다. 박찬호와 서재응에 이은 팀 내 3위. 그는 공을 몸 뒤에서 숨겨 나오는 ‘신종 토네이도’ 투구 자세로 시속 130km 중반에 불과한 구속을 극복하며 한국에서의 ‘대성불패’라는 별명을 되살렸다. 그 역시 이번 대회에서 미국에 보란 듯이 복수했다. 그는 지난 14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자신을 버린 메이저리그, 그것도 올스타가 출전한 강타선 미국을 상대로 멋진 설욕전을 펼친 것이다. 우승을 장담했던 미국은 구대성의 카운터블로에 휘청대더니 결국 멕시코에 덜미를 잡히며 집으로 가는 보따리를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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