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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엽아, 무심타법을 지켜나가라

등록 2006-03-22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이 이승엽에게 보내는 격려와 충고
홈런은 천부적인 소질, 각고의 노력, 철저한 자기관리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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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연 극동대 교양학부 교수·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2003년 가을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을 두고 한참 고민에 빠졌던 이승엽 선수를 2군 경기가 있는 대구 경산구장에서 만났다.

“내가 보건대 넌 충분히 신기록을 깰 수 있다. 다만 스스로 위축되는 부담감을 덜어봐라. 타석에 들어가면 모든 생각을 버려라. 무심타법의 위력은 대단하단다.”

발을 드는 타격에 대하여

하지만 그해 승엽이는 홈런 56개를 치며 아시아의 홈런왕으로 등극했다. 자랑스러웠다.

나는 1986년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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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때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에서 뛰었다. 당시 나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개인 100호 홈런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었다. 라이벌은 삼성 라이온즈의 이만수였다. 99호는 내가 먼저 쳤는데, 그다음부터 공이 넘어가지 않았다. 중압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빨리 쳐야만 했다. 나는 나이가 많고, 이만수가 후배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만수가 100호 홈런을 날렸고, 나는 이듬해가 돼서야 홈런을 칠 수 있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승엽의 위력이 전 국민을 감동으로 몰아넣고 있다.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1977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을 상대로 우승했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한국은 미국을 6 대 4로 눌렀다. 나는 우완 정통파 투수를 상대로 우중간 홈런을 쳐냈다. 비록 아마추어 대회였지만 야구 종주국인 미국을 이기고 세계를 제패했다는 자부심은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승엽은 WBC 1라운드 일본전 2점 홈런을 시작으로 중국전 2개, 2라운드 멕시코전 홈런에 이어 미국전에서 선제 홈런을 때렸다. 한국팀 공격의 핵으로 떠오른 이승엽은 그야말로 한국 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감동이었다. 원년의 홈런왕이었던 나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머리카락이 쫑긋 솟아오르는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이승엽의 홈런은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천부적인 소질과 각고의 노력 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태어난 것이다.

홈런은 결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나는 현역 시절에 하루 1천 개씩 배팅 볼 연습을 했다. 홈런은 그만큼 충분한 연습량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이승엽의 홈런포도 그만큼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홈런은 ‘임팩트 파워’가 실려야 나올 수 있다. 맞는 순간 힘을 줄 줄 아는 선수가 홈런을 친다. 임팩트 파워를 키우는 방법은 코치가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된다.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힘이 실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타격 자세에서 스윙이 끝나는 피니시까지 완벽한 밸런스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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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은 타격 전 발을 든다.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일본 프로야구 현역 시절 발을 들고 쳤는데, 일본 선수들은 그 영향을 받아 대부분 그런 경향을 보인다. 일본 연수를 다녀 온 한국 코치들도 ‘발을 들라’고 가르쳤는데, 나는 이에 반대하는 편이다. 발을 들면서 중심이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이 왔을 때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각도와 높이에 따라 적절한 부분을 맞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과 배트에 힘을 100% 실어야 한다.

이승엽은 강한 임팩트 파워와 훌륭한 밸런스 등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진출한 뒤에도 꾸준히 발전했다. 제구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일본 투수들 사이에서 홈런을 쳐낸다. 뛰어난 적응력이다. 일본 야구에 적응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량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이승엽이 애초 가지고 있었던 발을 드는 타격 자세가 편한 이상 바꿀 필요는 없다.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소질을 관리하고 연습량을 꾸준히 유지하면 된다. 주위의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아시아 신기록을 세울 때처럼 무심타법을 지켜나가야 한다.

후배들이여, 고맙다

일본의 심장인 도쿄돔에서의 승리,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전하는 연이은 승전보를 들으니, 이젠 한국 야구가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이승엽이 보여준 것 같다. 일본과 미국의 최고 투수들을 대상으로 홈런을 자유롭게 칠 수 있는 이승엽은 한국 야구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한국 야구를 깔보는 태도를 보이던 일본 선수들, 한국 야구는 데이터를 볼 필요조차 없다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던 미국 선수들을, 우리 선수들이 깨끗이 깨뜨린 건 황홀한 순간이었다.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가슴속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WBC가 끝나면 바로 국내 프로야구가 시작된다. 부상당하지 않고 내친김에 우승까지 하고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도 응원군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박수치며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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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연은 2인자였을까</font>

<font color="darkblue">이만수와 같은 나이·경기수 놓고 비교하면 홈런 뒤지지 않아</font>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는 두 명의 걸출한 홈런 타자가 있었다. 김봉연과 이만수.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프로야구 통산 110개의 홈런을 때려낸 김봉연보다 252개의 공을 담장 밖으로 넘긴 이만수를 더 훌륭한 홈런 타자로 기억한다.
건곤일척,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된 것은 프로야구가 문을 연 1982년 원년부터다. 1호 홈런의 주인공은 이만수였지만, 그해 홈런왕은 22개의 홈런을 친 김봉연이었다. 김봉연은 이후 3년 동안 이만수에게 홈런왕 타이틀을 내줬다가 1986년 21개의 홈런을 때리며 16개에 그친 이만수를 따돌리고 타이틀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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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드 야구팬들의 뇌리에 기록된 두 사람의 명승부는 개인 통산 100호 홈런 고지를 놓고 싸웠던 1986년 시즌일 것이다. 85시즌이 끝났을 때 김봉연의 통산 홈런은 78개, 이만수는 85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김봉연은 22개, 이만수는 15개가 부족했다. 그렇지만 99호 홈런에 먼저 도달한 것은 김봉연이었다. 그 무렵 이만수의 홈런 수는 92개에 불과했다. 승리의 여신은 그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아홉수에 걸린 김봉연은 ‘탈모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게 헛스윙을 남발했고, 착실히 홈런 수를 보탠 이만수는 그해 9월2일 빙그레 투수 천창호로부터 100호 홈런을 뽑아낸다. 그는 이후 2시즌 동안 11개의 홈런을 친 데 그쳤고, 88년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만수는 김봉연보다 훌륭한 선수였을까.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될 때 김봉연은 30살이었고, 이만수는 24살이었다. 김봉연은 30살부터 36살까지 현역에 있었고, 이만수는 24살부터 39살까지 현역을 지켰다. 같은 나이에서 홈런 수를 비교해보면 김봉연은 7년 동안 110개, 이만수는 120개의 홈런을 친 것으로 나타난다.(표 참조) 이만수의 홈런이 여전히 10개 많지만, 그가 뛴 게임 수는 704게임인데 견줘, 김봉연은 630게임밖에 뛰지 못했다. 김봉연은 분명 이승엽만큼 뛰어난 홈런 타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만수와는 거의 같은 클래스의 선수였다. 김봉연을 2인자로 대접하는 것은 그에 대한 너무 야박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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