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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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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메스, 꿈틀거리는 심장

등록 2006-0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생명윤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구리 해부 실습의 끔찍한 추억
고등교육 과정까지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교육 전혀 이뤄지지 않아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8년이나 된 그 인상이 요사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아니되었다. 새파란 메스, 달기똥만 한 오물오물하는 심장과 폐, 바늘 끝….”

소설가 염상섭이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묘사한 것처럼, 20대 중반 이상의 젊은이라면 누구나에게 개구리 해부는 날카롭고 진득진득한 기억이다. 생체를 해부하고 생명을 훼손하는 데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자괴감과 수치심은 ‘용기 없다’ ‘비위 약하다’는 한마디로 일축됐기 때문에 그간의 자책감은 억압돼온다. 대신 개구리 해부는 ‘군대 가기 전에 사창가를 다녀왔더니 어른이 됐더라’는 ‘통과의례’로 몽상되곤 한다.

“3R 원칙, 대학원에서 처음 들었다”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최아무개(29)씨는 해부되고 있는 산 오징어와 함께 삶은 오징어가 실험실 책상 위로 올라왔던 기억이 아직 메스껍게 남아 있다.

“붕어를 해부하곤 오징어 해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해부 도중에 오징어 삶는 냄새가 나더니, 선생님이 삶은 오징어를 가져다주는 거예요. 기괴한 경험이었죠.”

그는 개구리 해부를 “인간에게 내재된 동정심과 가학적 본능이 동시에 튀어나오는 갈등의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고 주문했고, 아이들은 가학적 본능에 한층 빠져갔다. 시민과학센터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약자로 과학자들의 사회·윤리의식을 강화하는 교육)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추병수 교사는 “생체 개구리 해부 실험을 할 때, 아이들은 처음엔 무서워하다가도 익숙해지면 금방 가위로 난도질하곤 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과학 1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개구리 해부 실험은 제7차 교육과정부터 빠졌다. 그러나 추병수 교사는 “개구리 해부가 교과서에서 빠진 이유는 동물실험의 잔학성이나 생명윤리 때문이 아니라 교과 내용이 압축되면서 빠진 것”이라며 “아직도 과학 교과서에는 생명윤리 교육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구리에 대한 무자비한 남획도 고려됐다. 2005년 2월 발효된 야생동식물보호법은 ‘자연 보호’ 차원에서 10종의 양서류에 대해 포획을 금지했다. 환경부는 이 법률에 따라 해부용 개구리는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 황소개구리를 포획하거나 실험용 사육 개구리를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학교에서 퇴출된 개구리 해부 실험은 주로 어린이 과학캠프나 대학 실습실에서 행해지고 있다. 산 생명을 죽이는 ‘생체 해부’는 과학자로서는 꼭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동물실험과 관련한 윤리 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과학 교과 목표를 봐도, △과학적 탐구 능력 배양 △실생활 문제의 과학적 해결 △과학이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 인식하기 등이 설정돼 있을 뿐, 과학으로 인한 과학 윤리는 빠져 있다. 교과서를 봐도 생명 복제 논란을 다루는 게 전부일 정도다.

고등교육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받고 있는 고아무개(31)씨는 “3R 원칙을 대학원에서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학부 과정에서 약리학·기생충학·생리학 시간 등에 마우스 등을 이용한 실험을 많이 했는데도, 동물실험 지침이나 실험윤리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다.

사정이 이러하니 실험동물 학대는 대형 연구소보다 대학 실습실이 더 심하다. 수도권의 한 수의대에 다니는 신아무개(23)씨는 1학년 때 개의 체온을 재는 실습을 했다. 신씨는 “30여 명의 학생이 개 한 마리의 항문에 대고 차례로 체온계를 집어넣었다. 그 개는 30번이나 체온계를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동물실험이 포함된 필수 교육과정 수업에 동물 보호를 주장하며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하는 여러 법률이 제정됐다. 여기에는 동물을 진료 대상으로 하는 수의대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생체실험 뒤 폐사’의 사이클을 갖는 동물실험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논란도 있다. 인간도 인간을 위해 실험 뒤 폐사시키는 ‘생체실험’을 하지 않듯이, 동물을 위한 존재인 수의사들도 생체실험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석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국내 수의대 가운데 수의윤리를 따로 과목으로 정해 가르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한국은 초·중·고교에서뿐만 아니라 의대, 수의대에서조차 생명윤리 교육이 크게 뒤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시민과학센터 STS팀은 ‘개구리 모의 해부실험 교육안’을 작성해 배포하고 있다. 이 교재는 실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여러분은 개구리나 붕어, 닭 등의 해부실험을 해보고 싶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해마다 여러분의 해부실험을 위해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해부실험을 하겠습니까?”

학생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

기존의 교과서가 그저 실험실에 갇힌 과학만을 가르친다면, 이 교재는 학생들이 사회화된 과학의 방식으로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는 데 의의가 크다. 과학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 해서는 안 될 것,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해부실험은 개구리 해부도와 내부 장기 그림이 그려진 몇 장의 종이를 풀로 붙이고 가위로 자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실 생명에 대한 대량 실험은 근대 과학이 출현하고 나서부터 본격화됐다. 근대 과학은 정신과 몸의 이분법 아래 몸을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많은 생명을 희생시켰다. ‘국가 발전의 이름으로’ ‘과학의 이름으로’ ‘전체의 이름으로’ 집단 학살이 이뤄졌다. 주요 희생물은 백인에 대당한 흑인이었고, 우등한 게르만인에 대당한 유대인이었고, 인간에 대당한 동물이었다.

사실 황우석 사태 때 “그깟 난자 제공하는 것 가지고 뭐 그러냐?”는 식의 반응이 나왔던 이유도 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근대에 머물러 있는 과학 교과서와 무관치 않다. 동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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