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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 기억만 남은 8·15

등록 2005-08-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종전기념일 대신 명절 연휴 즐기며 원폭 피해만 보도되는 일본
전쟁의 본질에 대한 교육 없이 젊은 세대들에게 잊혀져 가는 8월

▣ 도쿄=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일본에서 8월15일은 종전기념일이나 패전기념일 행사가 없다. 대신 ‘오봉’이라고 해서 한국의 추석 명절 연휴를 보낸다. 일본의 언론매체들은 8월 초부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 특별 프로그램을 연이어 내보낸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일본이 마치 전쟁의 피해국인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침략전쟁의 본질에 대한 젊은 세대들에 대한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전쟁 참가자들의 증언 프로그램 눈길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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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8월 초 <아사히 텔레비전>이 패전 6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전쟁 참가자들의 직접 증언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얻어 1주일 뒤 2차 증언을 듣는 시간을 급히 마련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시노하라 이쇼의 집을 취재했던 8월5일 밤에 두 번째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특히 전쟁 당시 20대 초반~30대 초반이었던 참전병사들이 80대 초반~90대 초반의 노인들이 되어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증언자 가운데는 인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만주 731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참전자나 ‘인간어뢰’ 부대에 근무했던 이들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방송 진행자는 “저도 당시 소학교 5학년인 때여서 사실 전쟁을 안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전쟁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인 현재 간신히 살아남은 전쟁 경험자들의 증언을 듣는 것은 귀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시노하라 이쇼는 “태평양전쟁을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나로서도 방송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이런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일본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군수업체 노조활동을 했던 와타나베 고는 “태평양전쟁 관련 행사를 해도 당시 일본에서는 먹을 게 없어 이런 것을 먹었다면서 당시 먹던 음식을 해먹는 식의 행사만 있다”면서 “그건 전쟁 폐허에서 이만큼 이뤄놓은 일본 사회에 대한 존경심을 강요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주) 노조 기관지를 펴보였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게 아니라 다른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하기 위한 합병이었다”는 주장이 버젓이 실려 있었다. 그는 또 “태평양전쟁 당시 대표적인 전함이었던 ‘전함 야마토’를 만들었던 조선소가 있는 구레시에서는 소학교 5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 교과서에 그 사실을 자랑스럽다는 식으로 묘사했다”고 통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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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일본 땅에서 사는 재일동포 2·3세들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8·15를 기억하는 게 쉽지 않은 실정이다. 8월6일 총련쪽 동포들이 주축이 된 민족악기중주단 ‘민악’의 창립 15주년 기념공연장에서 만난 동포 2세 무용가 조수옥씨는 “내 생일은 잊은 적이 있지만 8·15를 잊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또 “일본 사회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더라도 매년 8월15일만 되면 ‘우리의 원점이지’ 하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그렇지만 3세, 4세로 넘어가면 그런 인식도 거의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같은 곳에서 만난 동포 3세 백달원(23·대학생)씨는 “민족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일본 미디어에서 다루는 8·15와 민족학교에서 배운 8·15가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운 적이 많았다”며 “일본 대학으로 진학한 뒤로는 8·15가 어느새 지나가버려 황당한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두 나라의 8월은 이렇게 다르다

일본 방송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 60주년 기념 뉴스가 계속되던 8월6일 저녁 위성방송을 통해 나오는 한국방송에서는 울릉도에서 출발해 수영으로 독도로 향할 예정인 한국 여성 33명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의 8·15와 일본의 8·15는 그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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