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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도 진화한다

등록 2005-06-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가 외제자전거만 골라 훔치는 전문화된 일당 늘어나
도난 방지 위해 여러 대를 두거나 경보장치 설치하기도

▣ 신윤동욱 syuk@hani.co.kr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자전거 도둑’은 더 이상 낭만의 이름이 아니다. 그 옛날의 자전거 도둑들은 자전거가 탐나서,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훔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100만원이 넘는 자전거가 늘어나면서 고가 외제 자전거만 골라 훔치는 자전거 도둑 일당도 나타나고 있다.

자전거 도둑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고가 자전거 경쟁 속에, 자전거 운전자와 자전거 도둑 사이의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헐값으로 거래돼

“수원역 앞에 자전거를 잠깐 세워뒀는데 없어진 거예요.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죠. 전국일주에 동거동락한 놈이라 꼭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전거 사진을 넣은 전단 50장을 만들어 수원 시내 자전거 대리점에 돌렸어요.”

2002년 10월 60만원짜리 자전거를 도난당한 상용(27·수원 원천동)씨는 결국 자전거를 찾았다. 때마침 수원의 한 수입 자전거대리점에서 수천만원대의 물품이 털렸고, 이 대리점과 친한 동호회원들이 수원을 이 잡듯이 뒤지다가 상용씨의 자전거 도둑을 잡은 것이다.

“운이 좋았죠. 하지만 오래가나요? 반년도 채 안 돼 한밤중 술 먹고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잠깐 세워두고 오줌을 누는데 그사이 없어졌죠.”

이렇게 자전거 도둑이 흔하니 ‘자전거 분업 체계’를 갖추는 이들도 있다. 이상도(29·서울 서초동)씨는 90만원짜리 산악용자전거(MTB)와 10만원대의 생활 자전거 두대를 탄다. 초등학교 때부터 잃기와 사기가 반복되자, 90만원짜리는 멀리 자전거 여행이나 산에 갈 때만 타고 다니고, 일상생활에서는 값싼 생활 자전거만을 이용하는 것. 대개 자전거 마니아들은 이런 식으로 자전거를 여러 대 갖추고 가는 곳에 따라 다른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도둑은 더 이상 좀도둑이 아니다. 자전거 도둑은 ‘전문화’되고 있다. 장철호(46·서울 신림동)씨는 “예전에는 10만원대의 생활 자전거가 많이 없어졌지만, 최근에는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자전거를 노리는 도둑이 많다”며 “일부 동호회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고가 자전거 문화도 이에 한몫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서울에서는 197대의 자전거를 훔친 고가 자전거 절도단이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은 지하철역 주변의 자전거 거치대를 고가든 저가든 우선 싹쓸이했다. 그 뒤 가격에 따라 분류해 고가 자전거는 서울에서 판매하고, 나머지는 택배를 이용해 멀리 지방으로 팔아넘겼다. 훔친 고가 자전거는 인터넷 장터 등을 통해 헐값으로 거래된다. 가끔 훔친 자전거를 인터넷 장터를 통해 판매하다가 주인에게 붙잡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발바리’의 자유게시판에는 가끔 도난 신고가 올라온다. 도난 자전거의 사진을 올리고, 이를 보면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귀찮은 물건으로 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아예 ‘데프콘’이라는 경보장치를 달고 다니는 자전거도 많다. 경보장치의 가격은 7만~8만원 수준이다. 자전거 바퀴를 죄어 맨 케이블이 절단되면 95dB의 고성능 사이렌이 울린다. 자전거에 손을 대기만 하면 100dB의 경보음이 울리는 장치도 있다.

자전거를 건물에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인식도 문제다. 천연 달거리대(생리대)를 만드는 피자매연대의 ‘돕헤드’는 지난 5월부터 자전거로 ‘슬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달거리대를 주문처에 일주일에 서너 차례 배달하는 일이다. 배달 업무에서 가장 힘든 일은 주차 문제라고 한다. 그는 “자전거를 건물에 가지고 들어가면 제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윗사람이 문책당한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를 드는데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를 귀찮은 물건으로 보는 인식이 바뀌어야 자전거 도둑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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