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시’가 유행해도 왜 여전히 ‘찬밥’ 취급 받는가
기반시설은 확충되고 있으나 교통법규 등 소프트웨어 못 따라줘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자전거 도시’가 유행이다. 경북 상주시를 비롯해 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뛰고 있는 지자체들이 여럿 된다. 자전거는 도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확실한 ‘전시행정감’이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의 총연장은 7736km. 서울과 부산을 18번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자전거 도로와 주차장 등 관련 예산은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757억원이 쓰였다.
자전거 도로에 대한 정보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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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전거 운전자들은 여전히 도로에서 승용차로부터 위협받고 인도에서 보행자로부터 미움받는다. 자전거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은 날로 확충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중·장년층이 자전거 타기와 교통법규를 배울 만한 교육 프로그램도 적다.
“업체들이 날림으로 공사를 하기 때문에 자전거 도로의 보도 턱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가 많아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예요. 자전거 시설의 표준규칙도 현실성이 떨어지고, 자전거 도로 전문 건설업체 하나 없는 게 문제죠.”
2년 동안 자전거 업무를 해온 지자체 관계자의 말이다. 현행 ‘자전거 이용시설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자전거 도로의 폭은 1.1m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도로 폭이 이 정도라면 두 자전거가 교차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다. 이런 느슨한 기준 때문인지 자전거 없는 자전거 도로가 많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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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로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수도권 자전거 지도마저 제대로 나온 게 없을 정도다. 유럽의 도시들이 자전거 지도를 제작해 여행정보센터에 비치해놓는 것과 대조적이다. 되레 자전거 지도는 동호회원들이 발품을 팔아 산발적으로 제작된다. 많은 자전거 동호회가 해당 지역의 지도를 만들고 있지만, 이를 통합·보급하는 시스템이 없다. 미니 자전거의 일종인 스트라이다 카페 운영자 이창용씨는 “현재 인터넷 지도 서비스 업체인 콩나물닷컴(www.congnamul.com)에서 일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는 모든 사람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지도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법적 기반은 어떨까? 1995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이 법률은 자전거 운전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자전거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이 ‘권장 사항’에 그쳐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등 자전거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자전거등록제가 대표적인 경우다. ‘자전거 도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자전거 활성화법이 시행 근거만 마련하고 의무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아 사문화되고 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인력이나 비용 면에서 자전거 등록제를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부처 차원에서 실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횡단보도에서 자동차에 치이면 자전거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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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법에서도 자전거는 ‘찬밥’이다.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따라 건너다 자동차에 치이면 누구 잘못일까? 힘센 자동차의 책임일 것 같지만, 잘못은 ‘교통약자’인 자전거에 있다. 도로교통법상 ‘차마’인 자전거가 보행공간인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도로 오른쪽의 길가를 달려야만 한다. 그래서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자동차에 들이받히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자전거의 우선통행권을 규정하는 아무런 조처가 없다. 그래서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자동차는 차도 오른쪽에서 직진하는 자전거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국내 한 가구당 자전거 보유대수는 0.5대로 추정된다. 올해 지자체가 세워놓은 자전거 예산의 합계액은 580억원, 국비 지원액은 100억원이다. 올해부터 자전거 관련 사무와 재정권이 지자체로 넘어가 단체장의 의지가 없을 경우 관련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더 커졌다. 행자부 관계자는 “현재 경륜에서 나오는 수익에서 자전거 활성화에 쓰이는 돈은 하나도 없다”며 “경륜·경정법을 개정해 수익금의 일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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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접 받는 ‘생활필수품’ |
▣ 도쿄= 황자혜 전문위원
영화 <러브레터>, 자전거 페달을 돌려 밝힌 라이트에 시험지 답안을 맞추던 어스름 교정의 자전거 주차장. <쉘위댄스>, 반복되는 일상 속 집에서 역까지 주인공을 태워 달리던 자전거.
영화 곳곳에서 나오듯 자전거는 일본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이는 통계수치로도 명확히 확인되는데, 2004년 일본 전국 도도부현별 자전거 보유대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인구 1억2668만8천명의 자전거 보유대수는 6859만대로 1.8 대 1, 거의 두 사람 중 한 사람꼴. 특히 도쿄는 이보다 더 높은 1.4 대 1로,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자전거가 많은 만큼 주차공간도 필수. 아파트나 맨션에 자전거 주차장은 기본이다. 역 주변에는 반드시 유료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주차비는 월 5만원 안팎. 도쿄의 경우 도로 정체가 극심하고 대중교통 요금도 비싼데다 땅값이 워낙 비싸서 주차비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일반 시민들은 자전거로 역까지 가서 주차시킨 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에서 자전거를 사면, 경찰에 자전거 방범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카드에는 등록번호를 비롯해 자전거의 제조회사, 색깔, 차종, 차체번호가 기록된다. 자전거 차체에도 같은 등록번호가 붙여진다. 그러므로 경찰은 모든 자전거 소유자를 파악하고, 수상한 사람이나 자전거에 대한 불심검문을 통해, 본인의 이름으로 정식 등록된 자전거인지, 빌린 것이라면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물어,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마치 도난 차량처럼 도난 자전거이거나, 도난한 사실이 확인되면 경범죄로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런 필수품 자전거를 아무 데나 세워놓으면? 정답은 ‘설마가 사람 잡는다’. 자전거를 두대나 도난당한 적 있는 나는, 지인에게서 받은 낡은 자전거야 포기할 수 있었지만, 갓 산 새 자전거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며칠 안 돼 도난 자전거를 보관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제법 먼 곳까지 버스로 가, 보관료 3만원을 물고, 또 그 먼 거리를 자전거로 돌아와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도난 때 자전거 값의 반을 보상받는 보험에도 가입하고, 설마 하고 세워놨다가 쓴물 마신 게, 일본 자전거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역 주변 관할 시가 지정한 장소에 무료 임시주차가 가능한 곳도 있다. 도쿄도 조후시의 자전거 주차공간에는 1천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자전거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는데, 굳이 ‘통로에는 자전거 주차 금지’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아니더라도 자전거가 들고 나는 것이 가능하도록 정렬돼 있다. ‘방치한 자전거는 수시로 철거하겠습니다’라는 팻말도 큼지막하다. 인도에 자전거를 주차하면 휠체어 등의 통행에 문제가 되므로. 철거 간판은 누군가 방치해둔 몇대의 자전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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