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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이 사라지는 사회

등록 2005-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노동인력이 올해보다 4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2050년, 노동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고령시대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인구지진으로 불리는 ‘고령화 충격’이 노동력(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력을 경제의 생산활동에 가장 기초적인 동력이라고 볼 때, 노동력 부족 현상은 기업의 경제활동에 큰 타격을 주고 국가의 생산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동력은 감소, 노동생산성은 향상?

여러 인구 추계는 이런 우울한 전망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현재 3467만명으로 총인구의 71.8%를 차지한다. 선진국 평균(67.7%)에 비해 아직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2016년 3649만명(73.2%)을 고비로 감소세로 돌아서 2030년에는 3189만명(64.7%), 2050년에는 2275만명(53.7%)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25∼49살 연령층도 올해 59.6%에서 2050년에 45.2%로 감소할 것이라는 게 인구통계학의 전망이다. 조기퇴직과 청년실업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생산가능인구 연령을 25∼54살로 좁힐 경우 2050년에는 노동인력이 올해보다 무려 4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2025년에는 생산가능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205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현재는 생산가능인구 8명이 노인 1명을 부양)를 맞게 된다.

노동력 감소 현상 이외에 ‘노동력의 노령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노동력의 노령화는 50살 이상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율의 극적인 변화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2000년에 50살 이상 노동력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25% 정도였으나 2050년에는 5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50∼64살 인구는 올해 20.5%에서 2050년 40.5%로 급증할 전망이다. 또 2025년에는 고령 노동자(55살 이상) 비중이 30%에 육박하면서 일본을 제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권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런 노동력의 감소와 고령화에 대한 비관적 시나리오는 △생산현장의 활력 저하 △중·고령 노동자들의 기술 적응력과 학습능력 저하에 따른 노동생산성 감소 △육체노동 중심 제조업 생산직의 노동생산성 하락을 꼽는다. LG경제연구원 양희승 연구원은 “취업구조의 노령화는 혁신적 사고와 신기술 도입·개발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조선·섬유 등 물리적 노동 강도가 강한 전통적 제조업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고, 미래의 산업구조가 정보기술 기반의 서비스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빠른 기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고령 노동자는 생산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령화가 1인당 소득증가율과 생활수준을 낮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우선, 자본집약적 산업과 지식기반 산업은 노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오히려 오랜 경험과 지식 축적에 따라 노동인력의 고령화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특히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는 노동력 감소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즉, △노동력 감소가 자본장비율을 증가시키고 △노동력이 희소해짐에 따라 기업은 노동절약적인 기술혁신 욕구를 강하게 느껴 기술혁신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며 △임금이 상대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노동의 질 향상을 위해 더 많은 인적자본 투자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가구당 자녀 수가 감소함에 따라 자녀 1인당 인적자본 투자량이 증가해 노동의 질이 높아질 수도 있다. 이런 요인들이 모두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노동력 감소를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기퇴직’ 권하지 않는 사회로

이와 관련해 “고령화의 어두운 모습들은 인구 구성의 양적 측면만 보았기 때문인데,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서 인적자본과 기술혁신이란 질적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며 “고령화가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구통계학적 결정론은 ‘복지국가 축소’를 겨냥한 이데올로기 성격을 띠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고령화 진전이 극도의 상태에 이르는 2050년이 되면 연평균 노동생산성이 최소한 3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고령 사회에서 1인당 노동생산성 향상과 경제활동참가율 증가가, 고령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성장 잠재력 약화)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력의 양적 투입이 한계에 부닥치게 되는 고령 사회에서는 생산성 증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게 된다는 것인데, 다가올 고령 사회의 노동력 부족은 시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고령 사회가 위협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데 있어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는 결국 고령자의 노동시장참여율이다. 2000년에 우리나라 50∼64살 인구의 노동시장참여율은 64.3%로, 유럽(54%)이나 OECD 평균(60.3%)보다 높다. 이유는 각종 노후소득보장 장치가 미비해 은퇴를 미루고 늦게까지 노동시장에 남아 소득활동을 하는데다 자영업자 취업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각 세대가 자녀 부양 부담을 덜고 자신들만의 생애를 책임지게 되면 자연히 노동시장참여율이 떨어질 것이다. 또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연금제도가 성숙해지면 정년까지만 일하고 노후에는 일보다 여가를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사고와 문화가 바뀌고, ‘노동자’로서보다는 ‘연금 수급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게 될 공산이 크다. 한국노동연구원 신현구 연구위원은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사회와 경제가 적응해나갈 것”이라며 “노후 소득활동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고령자들이 은퇴하기보다는 일을 하도록 거기에 적합한 노동 강도와 유연한 근무시간을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은 기업마다 조기퇴직이 만연돼 있지만, 고령 사회에서는 여가를 원하는 고령자들을 기업이 적극적으로 일터로 끌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인구 추계를 보면 25∼49살에 이르는 핵심 노동계층의 경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감소해 오는 2007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나이가 차면 내보내는’ 기존의 인력관리 관행은 점차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LG경제연구원 양희승 연구원은 “노동력 공급 부족 현상으로 적정 노동력을 유지·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퇴출 위기에 처할 수도 있게 된다”며 “그때가 되면 조기퇴직제도가 기업의 인력 운용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마다 ‘고령자 친화적 작업조직·작업환경’으로 직장을 재설계하는 등 고령자들이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쪽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적극적 고령화’(Active Aging) 방침 아래 고령자들의 노동시장 퇴장을 유예하고 생산적 인력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이란 얘기다.

경험이야말로 국가적 자본!

이 과정에서 강제 퇴직 ‘정년’도 없어지거나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상 퇴직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건 최근의 일이다. 대공황 때 젊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나이 많은 노동자들의 일을 빼앗는 정년 제도가 고안됐는데, 당시 정년 65살은 평균수명보다도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정년제는 고도성장기에 양질의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이 제의한 ‘고용보장’이란 선물의 성격을 띠고 성립됐다.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위원은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고령자들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고, 정년제는 단체협상의 주요안건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고령자가 더 이상 사회의 짐이 아니라, 핀란드처럼 ‘경험이야말로 국가적 자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자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시대로 접어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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