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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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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잔인한 마케팅 안 배우련다

등록 2004-11-11 00:00 수정 2020-05-03 04:23

투자 유치에 성공한 부시의 군수 신상품 판촉에 나는 경쟁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도

▣ 정재철/ 몬텍 대표

부시가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는 전쟁이라는 대규모 이벤트를 통해서 또다시 강력한 프로모션을 진행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 자본의 대변자인, 특히 군수산업 자본과 같은 전통적인 산업자본의 최첨단 대변자인 부시가 행할 파괴적이고 잔인한 마케팅 방법에 또 한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제2의 대박을 찾고 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게임이라는 조그마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물론 내 회사도 마케팅을 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하지만 파괴적이고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부시가 주로 대변하는 군수산업의 제품과 내가 팔려고 하는 게임이라는 제품은 보완재도 대체재도 아니다. 그럼 상관없지 않을까?

미국의 대선에 한국처럼 실시간 중계를 해 집착을 보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물론 세계 각국이 촉각을 세우고 관심을 갖겠지만 한국만 할까? 나는 위의 두 가지를 비교할 만한 자료와 전문지식이 없다.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대선이 그만큼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부시냐, 케리냐. ‘케리가 되면 정보기술(IT) 산업이 활성화돼, 한국의 IT 산업도 좋아질 것이다. 그럼 내 회사도 좋게 되겠지. 만약 부시가 되면 전통적인 산업(군수·석유 회사 등)이 힘을 받아서 내 회사에 호재가 될 만한 것이 없겠지.’ 이런 상식적이고 찰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반면, 조삼모사든 조사모삼이든 합은 7개로 똑같다는 문구도 생각난다. 그렇다. 부시가 되든 케리가 되든 미국 자본의 세계화를 대변할 것이며, 미국 자본의 범세계적인 잉여자본 수취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을 것이다. 부시보다는 케리가 되면 덜 파괴적이고 덜 잔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떡하겠는가? 자본의 태동 자체가 인간의 고혈을 짜고 진흙탕에서 나온 것일진대. 인간의 고혈을 짜내면서 태동한 자본이고, 이후 지속적으로 자기증식을 해야만 생존할 운명을 타고났기에, 지금도 생존을 위해 세계 구석구석을 돌며 잉여자본을 수취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큰형님 격인 미국 산업자본, 한국과 같은 동생 격인 산업자본이 큰형님의 눈치를 안 볼 수 없고 말을 안 들을 수 없지 않나. 말 안 들었다가 매 맞고 있는 나라가 여럿 있지 않은가.

슬픈 것은 군수산업 자본, 석유라는 복합적인 대박 아이템으로 부시는 중동에서의 성공을 위해 열나게 너무나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고 있으며, 제2의 대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부시는 그 대박 아이템의 기획서를 작성하고 있을지도, 아니면 작성을 마치고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신상품 마케팅은 절대 안 돼

이번 대선에서 멋진 기업설명회(IR)를 통해 투자 유치에 성공한 부시이기에, 그리고 주력 투자자인 군수산업의 자본을 대변해야 할 부시이기에, 계속해서 무기를 팔아야 하고 판매할 고객과 장소가 필요하기에 또다시 흔해빠진 마케팅 방법(?)으로 신상품을 판촉할 것이 예상되고 그곳이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것은 IT 분야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제품의 질로 경쟁을 하는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을 뜻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내 운명이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분노케 하고, 잠재된 에너지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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