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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힘 빼서 이헌재에 옮겨 싣나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눈길 끄는 국민경제자문회의 권한강화… 원로원 역할에서 경제정책 사령탑으로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분권형 국정운영 체제 도입과 함께 집중하는 문제는 국민경제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사무처장 조윤제 대통령 경제보좌관) 권한 강화다.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단순 자문기구로 ‘경제계 인사들의 원로원’에 머물던 기능과 역할을 국가 주요 경제정책에 대한 구체적 방향까지 조율할 수 있는 경제 사령탑으로 전환하고, 대통령이 직접 총괄 지휘하는 쪽으로 개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재경부는 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8월11일 자문회의에 대한 대통령의 경제정책 수립 지시권을 명문화하고, 보고 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경제자문회의 운영에 관한 규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노 대통령은 같은 날 그동안 대통령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이정우)가 행사해온 부동산정책 총괄조정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넘기고, 이를 전담할 ‘부동산정책기획단’을 자문회의 산하에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또 내부적으로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위원장 문정인)가 관장해온 세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 업무도 자문회의로 넘겨주는 등 정책기획위원회가 맡고 있는 경제 현안 관련 업무를 모두 자문회의로 이관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그동안 대통령정책기획위원회가 구상해온 각종 경제 정책이 로드맵 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실천 단계로 접어들면서 집행력에 한계가 드러나, 관련 부처로 업무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 정책 총괄 기능을 재경부로 넘기면서 국민경제자문회의 산하 기구로 관련 기획단을 편성한 것은 대통령이 지속적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핵심 과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에 대해 사회적 약자 보호와 분배, 한국경제의 개혁과 체질 개선에 집중해온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중심의 ‘이정우 사단’을 뒤로 물리고, 시장론자인 이헌재 재경부 장관과 조윤제 경제보좌관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한 핵심 참모는 “노 대통령이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단기에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최근 경기부양에 대해 상당한 초조감을 느끼고 있다”며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 부동산 정책 총괄 업무의 재경부 이관 등은 경기부양쪽으로 정책 전환을 위한 조처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상황 악화에 대처하기 위해 그동안 금기시해온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한 명분을 만들고,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에 집중해온 정책 기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길닦기라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 안에서는 부동산 정책 총괄 기능의 재경부 이관 문제를 두고 ‘이헌재 사단’과 ‘이정우 사단’ 사이에 힘겨루기가 거듭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재경부 일각에서는 경기부양 등 성장정책 우선론과 부동산 가격 하락이 실제화될 경우 닥칠 경제적 파장의 심각성을 부각하며 부동산 보유세 도입 시기 및 세율 조절 등 세부적인 정책을 재경부가 전담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정우 사단은 부동산 정책의 변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재경부가 아닌 청와대 안에 별도의 부동산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하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이 재경부, 건설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위원회 등 범정부적으로 연동돼 있고 각종 세율 조정 등 현실 정책을 다뤄야 한다는 이유로 여름휴가 직전인 지난 7월 말 부동산 정책의 재경부 이관을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조처들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 포기와 인위적 경기부양 정책 추진으로 해석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 8월13일 노 대통령이 “부동산 가격 안정은 어떤 경우도 포기하지 않겠다”며 “경기부양을 위해 무리한 미봉책도 쓰지 않겠다”고 진화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노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정책기획단에 정책기획위원회 소속 핵심 인사들의 참여를 지시하는 등 재경부 주도로 부동산 정책이 변질될 가능성을 막는 추가 조처도 취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제 정책이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실체가 불분명한 정부 내 386 인사들이 경제를 모른다며 사실상 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성장우선론을 설파해온 이헌재 부총리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은 부동산 정책 이관 다음날인 12일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관련해 “실행 의지는 바뀌지 않더라도 정책은 시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부동산 정책이 (가격) 상승기일 때와 하락기일 때가 같은 수는 없다”고 말하는 등 완화 기조를 드러냈다. 2005년도 보유세 도입 방침은 유지하되 세율을 낮추고 대상도 대폭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개혁 성향의 한 여권 핵심 인사는 “아직 노 대통령이 경제개혁 정책과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미래를 명확히 단정할 수도 없게 됐다”고 방향 선회 가능성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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