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폐인’들이 꾸미는 개인 미디어의 세계… 기업들에겐 ‘접속 차단’사이트로 찍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프로젝트 미술그룹 ‘옆(엽)’ 사람들은 지난 4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싸이월드 미니홈피 미니룸의 대중성을 확인했다. 미술관 2, 3층을 작업 공간으로 삼아 벽과 바닥에 만화를 닮은 미니룸을 만들었다. 개인 미디어에만 있던 가상공간을 재현해 관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던 것이다.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하는 ‘미니미’로만 채웠던 미니룸을 얼마든지 새롭게 꾸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 옆(엽)의 작품 는 전시 기간 내내 전용 기념촬영지로 쓰였다. 그리고 그룹 옆(엽) 사람들은 미니홈피가 새롭게 창조된 문화 영역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네트워크에 갇혔던 미니룸이 현실 공간으로 이동한 것은 싸이질의 대가다. 이화여대 조소과 대학원 동문 5명으로 이뤄진 그룹 옆(엽)은 싸이월드에 ‘엽’(SIDEOFSIDE.cyworld.com)이라는 클럽을 만들었다. 미술관이나 공공기관 등지에서 전시한 작품을 인터넷상에서 보여주려고 만든 커뮤니티였다. 그룹 옆(엽)의 회원인 작가 신동희씨는 미니홈피를 파도타기하면서 유쾌한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 미니룸을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클럽에 올린 전시 사진들을 스크랩하는 방문객이 늘면서 눈여겨보니까 미니룸이 그룹 옆(엽)의 작품과 통하는 게 느껴져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누구나 개인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부여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만은 예외가 없다. 개인 미디어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두었다면 사람찾기로, 네이버에 블로그를 이용한다면 키워드 검색으로 각각 다른 이들의 일상과 사유에 접근할 수 있다. 개인 미디어를 활용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개인 미디어는 통합검색(블로그)이나 랜덤가기(미니홈피) 등을 통해 다른 이에게 노출된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 미디어라고 해서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형곤(25·피피엘 컴퍼니)씨는 요즘 요리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50여 가지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사진과 요리법을 미니홈피(www.cyworld.com/adbada)에 올렸다. 닭다리 데리야키는 무려 1만여명이 스크랩했다. 그는 머지않아 요리법을 모은 책으로 온라인 밖에 나올 예정이다. 핑크트럭을 직접 몰고 다니며 이색 물건을 파는 김효신(25)씨. 그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미니홈피(www.cyworld.com/sceen)에 독특한 소품과 자신이 그린 그레파스 그림을 올렸다. 이것이 눈길을 끌면서 홍익대 앞의 핑크트럭을 보려고 지방에서 찾아오는 ‘고객’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것들이 개인 미디어에서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출판사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김정선씨는 건강검진에서 혈압 수치가 높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놓았더니 며칠 새 그의 게시판과 방명록은 고혈압 정복 사전으로 탈바꿈했다. 그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혈압을 낮추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한 것이다. “싸이질을 하면서 사진을 올리려고 디카를 장만하고 포토숍을 배우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기록 매체에 익숙해지려는 것이었다. 오래 전에 헤어진 친구와 ‘재회’하기도 했던 미니홈피가 내 삶에 따뜻한 윤기까지 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개인 미디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블로그에 딱딱한 정보만 넘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네이버의 블로그 ‘리버 어베뉴’(blog.naver.com/sexyriver.do)는 전민형씨 부부가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채팅으로 만나 3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드라마 보다 진솔한 스물둘 동거기와 스물셋의 육아일기 등으로 블로그를 꾸몄다. 지금은 전씨가 전북 군산에서 공군 부사관으로 복무 중이어서 부인이 홀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물론 남편도 틈틈이 짧은 글을 남기고 쌍둥이 딸 예원이와 예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개인 미디어에 일상이 속속들이 노출되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숨기고 싶은 장면과 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로 일하는 박아무개씨는 얼마 전 미니홈피를 폐쇄했다. 그는 지난해 만난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렸다. 지난 5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사진을 모두 지웠다. ‘스크랩 허용 안 함’ 옵션 기능이 없던 시절 미니홈피의 사진은 누구나 퍼갈 수 있었다. 그 남자친구는 스크랩한 사진을 잊을 만하면 게시판에 올려놓고 방명록을 도배질했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니홈피를 떠나야 했다.
일상 노출로 난처한 상황 놓이기도
이처럼 싸이월드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면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일 수도 있다. 스스로 ‘노출 수준’을 결정하면 된다. 만일 자신의 미니홈피를 아무런 흔적 없이 엿보는 사람을 찾고 싶다면 ‘관리’ 메뉴에 있는 ‘이벤트’를 설정해 꼬리를 잡을 수 있다. 미니홈피 총 방문자와 게시물 작성 누계에 이벤트를 설정하면 해당 번호의 당첨자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다른 미니홈피에서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축하 인사말이 뜨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아무리 관음증에 시달려도 싸이질은 진화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찍어서 바로 올리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싸이월드는 유·무선 통합 메신저 네이트온을 이용해 휴대전화로 미니홈피에 접속할 수 있다. 한 인터넷 기업의 사내 커플인 정아무개(29)씨는 외근을 나가면 이동 중에 폰카로 자신의 모습을 찍어 ‘폰사진 폴더’로 사진을 보낸다. 지금의 ‘나’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고 싶지 않은 싸이폐인들을 위한 폰 사진 폴더에 올라오는 사진이 하루에 7만여장. 무선 인터넷의 대중화가 싸이월드에겐 또 하나의 기회로 작용하는 셈이다.
현재 싸이월드는 기업들의 접속 차단 사이트로 지목되고 있다. 미니홈피에서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파도타기를 해야 한다. 미니홈피를 꾸미고 방문하다 보면 한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게다가 ‘내가 지난 밤에 한 일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를 확인하려면 낮 시간에 확인하는 것은 필수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는 싸이폐인들은 사내 전산망에 과부하를 일으키기도 한다. 기업들은 정보 유출을 우려해 접속을 막는다고 한다. 물론 속셈은 노동력 유출을 막으려는 것이다. 오프라인의 인맥을 온라인에 이식하는 사이버 페르소나는 갈수록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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