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 노무현 집권 2기]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인터뷰… 국가보안법은 폐지에 가까운 보완론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처럼 국론이 대립하는 문제를 갖고 국회가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17대 국회 들어 ‘정책청문회’ 방식으로 파병 문제에 대한 재검토 공론화를 이끌 뜻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그는 또 ‘성장에 무게를 두느냐’ ‘구조개혁으로 성장동력을 내실화하느냐’라는 논란이 담긴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간 대립과 관련해 “정부 내부의 이견 조정이 중요하되, 개혁의 후퇴는 없다”고 밝혔다. 과반 여당의 새 원내사령탑으로 뽑힌 그를 5월14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책청문회는 비리청문회와 다른 개념
-원내대표에 선출된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나?
=변화와 개혁이라는 총선 민의에 대한 우리당의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도 같은 방향이었는데 이를 당선자들이 평가해준 셈이다.
-앞으로 국회 운영은?
=정쟁을 완전히 그만두고 생산성 높은, 일하는 국회로 가기 위해 제도와 관행, 문화를 바꿔야 한다. 우리당 내부를 생각한다면 위에서 당론을 정해 지시하는 게 아니라 의원들이 철저히 주체가 되는,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의사결정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총선 민의를 국회 운영에 반영하는 방법은?
=의원들도 분발해야 하지만, 결국 국민의 참여와 의원에 대한 감시통제가 잘 이뤄져야 한다. 국민들의 정책적 민원이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의원들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 그리고 의원들이 일을 잘하는지를 감시·통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국민소환제는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국회 윤리위원회도 강화할 것이다. 일각에선 의원들에 대한 의정평가제도 거론하는데 평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그런 방안에는 아직 유보적이다.
-국회 운영의 투명성과 정책능력을 높이는 방안은?
=국회에서 정책청문회를 자주 열어야 한다. 과거의 무슨 비리청문회와 다른 개념이다. 이를테면 이라크 파병처럼 국론이 대립하는 문제를 갖고 (정책적으로 따져보는) 청문회를 해야 한다. 엊그제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를 주제로 방송토론들이 열리던데, 지금까지 방송에서 그런 역할을 해줬다면 앞으로는 방송이 아니라 국회에서 그 문제를 갖고 청문회든 전원위원회든 토론 절차를 가져가야 한다. 정책청문회를 열고 언론기관에도 협조를 구해 중계해주도록 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 여론조사를 거치든지 해서 표결하면 국민의 뜻이 좀더 잘 반영되지 않겠나.
-이라크 추가파병은 16대 국회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17대 국회에서 정책청문회 의제로 삼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인가.
=개별 사례를 놓고 확정적으로 말하긴 조금 이르긴 하다. 당내 논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추가파병 문제에 대해서는 원내대표 경선과정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우리당이나 국회 차원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 의원들이 공유한 가운데 토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했다. 앞으로 당과 청와대의 관계는?
=당-정 분리를 전제하면서도 긴밀한 당-정 협의(‘정’은 청와대와 정부를 합친 표현으로 사용)가 필요하다. 당-정 간에는 대등한 관계가 돼야 한다. 우리당이 역량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가 정부를 견인하는 관계로 가고 싶다.
-새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선출된 뒤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첫 번째 당-정 협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홍재형 정책위의장이 공정거래법 개정 문제를 두고 “정부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해 마치 공정거래위보다는 재정경제부 손을 들어주는 느낌을 줬다.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15%로 축소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관련해 재경부와 공정위 사이에 충분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외부로 의견이 나가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개혁이 후퇴하겠느냐? 당이 마치 재경부 손을 들어준 것처럼 언론들이 해석했는데 그건 아니다.
-공정거래법 개정을 둘러싼 두 부처간 논쟁을 보는 천 원내대표의 생각은?
=그건 제가 지금 판정하기 어렵다. 내부에서 검토해볼 문제다. 국회의 관련 상임위원회는 물론이고 당내 분과위원회도 아직 구성되지 않은 상태다. 국가보안법 문제라면 몰라도 제가 그 분야를 선도할 전문성을 지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언론에 비치는 것처럼 개혁 후퇴가 아니라는 점은 밝히고 싶다.
-참여정부 1년차에선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 않았다.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나?
=총선 과정에서 시민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국 정치를 부패정치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국민들이 높게 평가해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은 것은 역시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 때문인 것 같다. 경제란 게 갑자기 좋아지기보다는 전임 정부가 뿌린 씨앗 때문에 영향을 받는 측면도 있겠고…. 어쨌든 여당은 앞으로 시급한 민생 문제에 훨씬 더 집중할 것이다.
-이헌재 부총리가 이끄는 현 경제팀이 설정한 방향이 대체로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재검토 여지가 있다는 게 새 지도부의 생각인지 궁금하다.
=그건 박 기자가 나한테 답을 주면 좋겠는데…. (웃음) 이헌재 부총리가 임명된 지 몇달 안 되지 않았나. 이 부총리에게 좀더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 성급히 평가할 게 아니라 좀더 보자. 그냥 본다기보다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대체로 방향에는 공감한다는 뜻인지?
=(즉답을 피하면서) 두고 보자. 잘한다고 해야지 못한다고 할 수 있나. (웃음) 참 말하기 어렵다. 전에는 마음대로 이야기했는데. 더구나 대통령이 이제 막 업무에 복귀했으니 앞으로 방향을 봐야 한다.
-경선과정에서 1년 안에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추진 구상은?
=경선과정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 있고 그런 수준에서 더 이야기할 것은 현재 없다. 그때도 경선을 하다보니 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말이) 너무 많이 나갔다. 어쨌든 제 사견은 그때 피력한 바 있고 이제는 사견을 말할 권리가 없다. 정책위원회에 개혁기획단을 두어 언론개혁뿐 아니라 여러 개혁과제를 검토하고 선후관계를 설정하도록 할 것이다. 그 밖의 과제들도 이러한 검토과정을 거쳐서 시작돼야 한다.
-노 대통령은 조선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대선후보 시절에 밝혔으며 지금도 그 생각을 지키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웃음) 저 개인도 아니고…. 모르겠다. 당의 대표로서는 개인적인 호오를 넘어서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국가보안법은?
=중요 개혁과제 중 하나다. 언론개혁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잘 검토해서 추진해야 한다. 내용에 관해서는 불고지죄와 찬양고무 같은 인간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항은 무조건 삭제해야 한다. 다만 잠입탈출 조항은 북에 갔다오는 것을 무조건 허용하긴 곤란하지 않느냐. 외국에 갈 때 여권 발급절차를 거치듯이 최소한의 행정적 규제는 필요하지 않은가.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폐지에 가까운 보완론에 가깝다.
개헌은 다음 대선 시점에 논의를
-고건 국무총리 후임자는 어떤 개념으로 인선하는 게 바람직한가?
=당내 경선에 몰두하느라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쨌든 대통령은 총리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줘 일상적으로 내각을 이끌도록 하겠다는 뜻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일상적 업무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즉, 대통령이 믿고 맡겨도 될 사람이 필요한데, 고건 총리가 바로 그런 분 아니었나.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후임자 지명이 확실시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당의 입장은 어떻게 정리할 생각인가?
=내부적으로 결정돼 있을지 몰라도 저한테든 다른 사람한테든 아직 당에 통보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말해 대통령의 총리 지명권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총리는 국회 인준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통한 검증을 거치게 되며 그 결과가 반영돼야 할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절차와 원칙을 잘 지키면서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미리 무조건 된다고 말하는 것도 곤란하고 야당처럼 아직 객관화된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도 곤란하다.
-문희상, 유인태 당선자 등이 간혹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포함한 개헌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개헌 문제는 다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시점에 가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천 원내대표도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의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나는 원내대표를 꼭 해보고 싶었다. 1년간 이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다른 목표 때문에 원내대표 직무에 영향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관심 없는 문제다.
-원내대표 당선이라는 사건이, 천 의원의 개인사에서 갖는 의미를 자평해달라.
=2001년 5월에 민주당 쇄신운동을 시작한 이래 지난 3년간 제가 걸어온 길이 모두 무모하고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모두 성공했다. 쇄신운동도 국민참여경선이나 민주당의 개혁으로 이어졌고 정권 재창출의 원동력이 됐다. 노 대통령을 만드는 데 제가 기여한 것이 있다면, 경선 캠프에 가장 먼저 참여했다는 점보다는 국민참여경선 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한 점이다.
원내대표 경선도 내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켜 이겼다. 운이 좋은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화자찬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시대 정신을 잘 따라가는 것 같다. 그런 보람과 성취감이 있다. 몇년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외롭게 갔는데 길이 만들어지더라.
-행복감을 느끼나?
=행복까지야 그렇고…. 어쨌든 해보고 싶은 대로 소원을 이룬 것 아닌가. 당선 자체가 소원은 아니지만 일을 해볼 위치를 확보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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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지난 5월11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치러진 열린우리당 원내총무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당 안에서는 이해찬 의원의 승리를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일단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유인태 전 정무수석,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 등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던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 대다수가 조직적으로 이 의원을 밀었다.
이른바 ‘노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 천 의원 편에 선 사람은 염동연 당선자 정도였다. 그나마 염 당선자가 천 의원과 같은 호남 출신인데다 정동영 의장과 가깝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경쟁자로 출마한 천정배 의원의 측근들조차 “노 대통령이 이 의원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을 정도였다.
김근태 전 원내대표 등 재야 출신 중진들과 1980년대 전대협 세대 당선자들도 이 의원을 위해 뛰었다.
천 의원에 대한 공개 지지자는 이종걸, 임종인 등 몇몇 변호사 출신 당선자와 김한길 전 의원, 과거 민주당에서 ‘바른정치 모임’을 같이했던 인사들 정도였다. 그런데 승리의 여신은 천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무엇이 이 의원에 비해 열세로 분석되던 천 의원에게 승리를 안겨줬을까. 이 문제는 천정배 원내대표 체제의 성격과 앞날을 가늠하는 핵심고리로 정치권 안팎에서 여전히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직적인 힘의 열세를 1차적으로 메운 것은 김근태 전 원내대표와 경쟁관계인 정동영 의장쪽의 전폭적 지원이다. 김현미, 민병두, 최성 당선자 등 정 의장의 측근 그룹과 정 의장이 영입한 관료 출신 당선자들이 천 의원을 적극 지지했다. 우리당 핵심 관계자는 “정 의장이 경선 전날 밤 늦게까지 소속 의원과 당선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천 의원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전했다.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의 지원사격도 보탬이 됐다. 전남 신안 출신인 천 의원에 대한 호남 당선자들의 호의적 태도와 충청 출신인 홍재형 전 부총리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으로 ‘모신’ 전략도 득점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충청권 당선자들 중 상당수가 홍 부총리를 보고 천 의원을 찍었을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당 안팎에서는 좀 색다른, 그러나 상당히 의미 있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천 의원을 지지했다는 수도권 출신 한 초선 당선자는 “국회에 첫발을 내딛는 상당수는 초선을 훈육하고 당론을 주입하는 원내대표가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민주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원내대표를 원한다”면서 “당선자 워크숍과 두 차례의 후보 토론 과정에서 천 의원의 순수성과 개혁성이 더 다가왔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인식하며 무계파, 수평적 정당 문화 실현, 지도부의 지시와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꿈꾸는 108명의 초선 당선자에 대한 성공적 공략이 천 의원 승리의 또 다른 비결이라는 것이다. 정당 내부의 세대교체라는 초선들의 열망에 불을 댕겨 막판 부동표를 끌어모은 셈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말 강원도 한 호텔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서 “여당 의원의 책임”을 강조하며 정제되지 않은 개인 의견 표출 자제를 요구했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도 “여당의 책임과 안정”을 역설했다. 5선인 이 의원의 이런 모습이 상당수 초선들에게는 ‘기존의 정당 질서를 유지하려는 낡은 인물’이라는 부정적 인상을 남겼을 수 있다.
천 의원은 개혁 지속, 청와대와의 대등한 관계, 정부에 대한 당의 주도권 확보를 주창하며 그 반대의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원내대표가 된 천 의원에게 이런 승리 요인은 부담스러운 짐이기도 하다. 일단 정 의장을 비롯한 당권파와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의 지원을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다. 총무단 구성과 상임위원장 배정 등에서 이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 이 의원을 지지한 당내 중진들의 지위와 여론도 의식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천 의원을 ‘민주적인 국회운영의 적임자’로 선택한 초선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내느냐도 쉽지 않은 과제다. 당장 초선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노 대통령의 김혁규 전 경남지사 총리 기용 방침과 이라크 파병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부터 초미의 관심사다.
청와대와 대등한 관계를 외쳐온 천 의원이 노 대통령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도 없지만, 초선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주기도 어렵다. 더욱이 세대교체로 당내 중진들의 발언권이 약화되면서 중재자들도 사라졌다. 결국 수많은 난제들은 거대 여당의 원내대표인 천 의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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