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바’에 감춰진 우리 이민의 그림자…‘G.I. 브라이드’에서 대학생·유학생으로 물갈이
하와이 주민들은 호스티스가 접대하는 술집을 주인이 누구건 간에 ‘코리안 바’라고 한다. ‘코리안 바’가 고유명사에서 대명사로 바뀌는 과정에는 미국 이민사의 아픈 상처가 배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하와이에도 미군과 결혼한 한인여성, 속칭 ‘G. I. 브라이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평탄하지 못한 가정생활을 겪었다. 아내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미군 남편들은 종종 아내를 멸시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휘둘렀다. 견디다 못해 이혼한 한인여성들이 갈 곳이라고는 술집밖에 없었다.
영자신문의 보도에 맞선 투쟁

이렇게 해서 생겨난 ‘코리안 바’는 본토의 한인 호스티스 바처럼 한인손님들만 받을 수 없었다. 본토의 대도시와는 달리 하와이 한인은 전체 인구의 2%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을 상대하면서 ‘코리안 바’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이와 함께 하와이 주민들에게 한인여성의 이미지는 ‘술집 여자’로 굳어졌다.
1978년 업무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돌아온 하와이대학 최영호 교수(72·역사학)는 하와이 2대 영자신문 가운데 하나인 (Starbulletin)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신문은 8월16일부터 사흘 동안 코리안 바 비리를 특종보도했다. 시의 허가를 받기 위해 술집 주인이 당시 호놀룰루 시장 선거운동 참모인 로버트 정에게 로비를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당시는 시장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공화당 출신 기존 시장과 민주당 출신 후보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신문은 당시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 코리안 바 문제를 끌어들인 것이다.
최 교수는 즉시 한인들과 문제를 상의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논의하는 방향이 이상해요. 한인정화위원회를 만들어 술집을 다 없애자는 주장들이 나오는 거예요.” 최 교수는 “신문사가 한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불공정한 기사를 썼으니 거기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인인권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최 교수가 직접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사과문 게재를 요구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완강히 거부했을 뿐 아니라 한인신문 기자들을 데려왔다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한인인권투쟁위원회는 즉시 한인들을 조직해 10월1일 일요일 예배가 끝난 뒤 신문사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알래스카에서 휴가를 즐기던 신문사 사장이 달려왔다. 흑인인권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시점에서 ‘인종차별하는 신문’이란 딱지가 붙으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태는 이 한인단체가 보내온 글을 싣고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후로 언론에서 ‘코리안 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여행겸 아르바이트

‘G. I. 브라이드’들이 나이든 지금, 하와이 코리안 바는 신문광고를 보거나 친구 소개로 한국이나 본토에서 관광비자를 들고 찾아오는 한인여성들을 고용하고 있다. 한인 1.5세 변호사 아멘다 장(35)은 한인 호스티스와 상담하며 최근 코리안 바 문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코리안 바로 인해 한인여성이 겪는 피해는 매우 크다. “미국에서는 변호사협회를 바 어소시에이션(bar association)이라고 하거든요. 한인 변호사 협회는 코리안-아메리칸 바 어소시에이션이죠. 코리안 바 협회라고 지겹게 놀림받았어요.” 왜 젊은 한인여성이 코리안 바에서 일 안 하고 변호사로 일하느냐는 조롱을 받을 때도 있었다.
코리안 바 호스티스의 직업은 굉장히 다양하다. 한국에서 암암리에 들어오는 여성들 가운데는 대학생들도 꽤 있다. 방학 때 여행 겸 아르바이트로 오는 학생들이다.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일하는 경우도 있고 이민국 단속에 걸려 추방재판을 받으면 미국인과 급하게 결혼해서 정착하는 여성들도 있다. 장 변호사는 “한국정부가 이 일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한탄했다.
1년 반 전부터 이민국과 경찰 단속이 심해졌지만 아직도 호놀룰루 유흥가는 한글 술집 간판으로 흥청거린다. 법적으로 간판에 ‘코리안 바’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영문 이름 밑에 한글을 써넣어 이곳이 코리안 바임을 알리는 것이다. 휘황한 네온사인 간판들은 우리 이민 역사가 남긴 상처다.
호놀룰루=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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