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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 인사참모부가 떤다

등록 2004-12-01 00:00 수정 2020-05-02 04:23

장성 인사에 결정적 영향권 행사하는 육본의 실세…괴문서 사건으로 군검찰과 양보없는 힘겨루기

▣ 김성걸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kim@hani.co.kr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 수사가 계속되면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군검찰 수사관이 들이닥쳐 1.25t 트럭 2대 분량의 진급 관련 서류를 압수해갔다. 또 군검찰이 인사참모부의 영관급 장교와 장성들을 차례로 소환한 데 이어 행정병까지 조사하겠다는 태도이다. 군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인사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아무튼 익명의 투서로 시작된 진급비리 의혹 수사는 인사참모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카드 변조, 의혹의 핵심

육본 인사참모부는 군에서 ‘실세 부서’로 통한다. 5만명의 육군 장교와 300여명의 육군 장성에 대한 진급과 보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인은 진급이 되지 않을 경우 군문을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인사참모부는 일반 회사에서 ‘저승사자’인 구조조정 부서 역할도 하고 있다. 이를 상징하듯 군에서는 ‘전시에는 작전, 평시에는 인사’라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작전참모가 실권을 쥐는 반면 평시에는 인사참모가 실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육본 인사참모부의 조직은 소장 계급의 인사참모부장이 있고 산하에 4개 처 가운데 위관 및 영관급 장교 진급을 담당하는 인사관리처가 있다. 장군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는 인사참모부장 직속의 장군인사실이 따로 있다.

군에서 보직의 중요성은 무척 강조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핵심’ ‘요직’ 부서를 거쳐야만 마지막 관문인 진급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급은 경쟁이고, 보직은 전쟁이다’라는 말은 이런 사정을 나타내준다. 진급 경쟁 못지않게 보직 경쟁이 뜨겁다.

장교들의 보직을 담당하는 별도 조직으로 인사운영실이 있다. 이 조직도 원래 인사참모부 소속이었다. 인사참모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말이 나오자 별도로 떼어놓았지만 업무 내용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이번 군검찰의 소환에도 인사관리처 장교 이외에 인사운영실 장군이 소환된 것도 업무 연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막강한 파워 부서여서 최근 10년간 6명의 인사참모부장은 모두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사표-반려’ 사건의 당사자인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도 인사참모부장 출신이다. 육군 참모총장의 권한이 교육·훈련·인사 분야에 집중돼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사 분야를 보좌하고 있으니 마치 당연한 것처럼 진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육군 진급 심사가 시작되면 참모총장-육본 인사참모부장(소장)-관리처장(준장)이 핵심 라인을 형성한다. 국방장관이 대장 진급 선발권을 가진 반면 육참총장은 중장 이하 진급에 대한 선발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통한다. 물론 중장 이하 계급에 대해서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입김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육참총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육군은 이번 진급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4심제’에 의한 진급 심사를 하기 때문에 공정한 심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반 장교들로 구성된 4개의 진급자 추천위원회에서 준장 진급자를 선발했으니 ‘외부 인사’에 의한 공정한 심사라는 것이다. 군검찰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같은 인사기록 카드를 바탕으로 심사를 할 경우 선발위원이 누가 되든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군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인사기록 카드의 변조이다. 심사의 기초자료가 되고 진급자 추천위원회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인사기록 카드가 변조됐다면 진급비리 의혹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인사참모부의 막강한 권한은 우선 인사기록 카드 작성에서 나온다. 인사기록 카드에는 개인의 교육과 근무 경력, 가족 관계 등 기본적인 사항이 기록된다. 이런 사항은 본인이 열람을 신청할 경우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인사기록 카드는 이외에도 직속상관의 근무평정과 헌병·기무 등 외부기관의 평가도 곁들여져 있다. 이런 사항은 본인이 열람 신청을 하여도 공개되지 않지만, 진급 심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육본쪽은 이번 일부 진급자들의 인사기록 일부 누락과 오기에 대해 “남 총장의 인사지침에 따라 이번 진급 심사는 공정했고 심사에 부조리가 개입할 가능성은 없다”며 “인사 자료에 일부 사실이 잘못 기재됐다면 이는 실무자의 단순한 행정착오이지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막강한 권한, 진급인원 할당

인사참모부는 이런 인사기록 카드를 ‘비밀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일반 장교들은 비밀 사무실에 대해 말만 들었지 감히 접근하려는 생각을 못하고 있으며, 인사참모부 장교들도 일부만 출입이 허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군검찰이 압수수색해 가져간 서류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군 일부에서는 군검찰이 장교들의 인사기록 카드를 가져갔다면 이는 개인정보 또는 인사비밀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군검찰쪽은 이에 대해 “압수수색 다음날 수사상 필요 서류만 남기고 인사참모부에 되돌려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참모부의 또 다른 파워 원천은 진급 공석 결정이다. 가을철 장교들의 정기 진급 인사철이 다가오면 인사참모부는 각 병과별로 올해 진급 예정 인원을 산출한다. 이는 해당 병과의 전역 예정 인원을 따져서 결정된다. 그러나 전역자 수는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전역자 수와 일치시킬 수 없다. 또 한정된 진급 예정 인원에서 필요에 따라 병과별 진급 예정 인원을 결정해야 하므로 어떤 병과는 진급 예정 인원이 많은 반면 다른 병과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이런 조정 권한을 인사참모부가 갖고 있는 것이다.

한 예비역 관계자는 “과거에는 진급 심사 기회가 세 차례 이상도 찾아왔지만 최근에는 한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며 “특히 한 차례 진급 심사에서 떨어진 특과 병과 장교의 경우 다음해 진급 공석이 예상보다 적으면 진급 심사대에 오르지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사참모부는 또 육사·3사·학군 등 각 출신별로 진급 예정 인원을 할당한다. 이 숫자는 진급 심사 결과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소 융통성 있게 제시되지만, 진급 심사 해당자에게는 진급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결정적인 숫자로 작용한다.

이와 함께 육군 장교들은 매년 평정을 받는다. 이 평정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같은 부대에 우수 장교들이 몰려 있으면 좋은 순위를 받지 못하고, 진급 심사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 군 관계자는 “인사 분야 장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교들의 순위를 꿰뚫고 있고, 그에 따라 누구는 유리하고 누구는 불리하다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며 “야전에서 병사들과 뒹굴기만 하는 일반 장교들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으로 처음 인사 괴문서가 국방부와 인접한 간부 숙소인 국방레스텔 지하주차장에 뿌려지자 과거 인사 분야의 위력을 알고 있던 군 관계자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자극적인 용어이지만 소문으로 전해오던 ‘똥별, 돈별, 식모별’에 대해 장군 진급 예정자들이 실명으로 거론됐다는 소식에 괴문서를 구해보려는 ‘소동’이 벌어졌다. 또 국방부가 괴문서 내용에 대해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히고, 연이어 육본 인사참모부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이 들리자 군 관계자들은 “그렇다면 상당히 신빙성 있는 내용이 아니냐”며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괴문서에는 10개 항목에 걸쳐 전체 준장 진급자 52명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20명의 장군 진급 예정자가 등장했다.

냉랭한 대접 받는 괴문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괴문서는 냉랭한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업무능력 부족과 부하 장병들로부터 장군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지탄받아온 보병 대령 OOO, OOO, 정보 대령 OOO”이라는 식의 투박한 표현과 구체성이 없는 내용은 군 관계자의 외면을 받았다. 여기에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괴문서의 내용이 상당 부분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군검찰 수사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자 군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군 관계자는 “인사참모부가 그동안 권위주의를 벗어나려고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은 인사참모부와 군검찰이 서로 양보 없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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