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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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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2-07-24 00:00 수정 2020-05-02 04:22

서강대 ㄱ교수 성폭력사건 피해자 최희정씨의 ‘반쪽짜리 커밍아웃’

서강대 ㄱ교수 성폭력 사건( 407호 참조) 피해자 최희정(31)씨가 ‘반쪽짜리 커밍아웃’이라 이름 붙인 글을 보내왔다. 최씨는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여성민우회 등이 중심이 된 '학교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은 대학에서의 교수 성폭력 못지않게 중·고교에서의 교사 성폭력 문제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위기의식에서 지난 5월 만들어졌다. 편집자

저기 저 앞에 무대가 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온몸을 태울 듯한 분노를 안고 무대 위로 뛰어오르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나는 2001년 10월31일 서강대 ㄱ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최희정입니다”라고. “내 딸은 정숙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일 당하지 않는다”고 말한 교수님들에게도 큰 소리로 묻고 싶다. “보십시오. 내 어디가 그리 정숙치 못해 보입니까? 당신의 딸도 이미 피해자이면서, 점잖은 아버지에게 말 못 하고 가슴에 피멍이 든 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산산조각난 ‘합리적 해결’의 믿음

나는 지면을 빌려 뒷모습도 옆모습도 아닌 정면사진을 내놓고 확인받고 싶었다. 내가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보이는지. 그래서 피해를 입어 마땅한 여자인지.

사건을 처음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충격을 받으신 부모님은 이틀이 지난 뒤 이렇게 말씀하시며 용기를 주셨다. “네가 다소 희생한다 생각하고, 학교에 알려야 한다.” 지성인들·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대학교에서라면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은 즉시 합리적으로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알렸고,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학교·여성부·경찰·검찰에서 모두 12번의 조사를 받고 진술해야 했다. 가해자는 지난 2월8일 교수로서는 드물게 성폭력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학교는 가해자에게 안식년과 함께 정직 3개월이라는 터무니없는 징계를 내렸다. 지성인·지식인들의 합리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시밭길인 줄 알면서 딸에게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나보다 더한 아픔을 감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또다시 얼굴이 알려져 구설에 오르는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피해자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된다. 무엇보다 나는 두렵다. 홀로 커밍아웃을 한 뒤 또다시 사회적 뭇매를 맞을 일이. 그래서 나는 지금 텅 빈 무대만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글은 반쪽짜리 커밍아웃이다.

오늘 한 사람, 내일 또 한 사람 “저도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했어요”라고 이메일chuzworld@yahoo.co.kr)을 보내오고 메신저로 대화를 요청해올 때마다 나는 매번 분노하고 고민하고 좌절한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목격자가 없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당한 상처는 전치 몇주의 외상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느끼는 충격과 불쾌감, 수치심과 자괴감은 영혼을 산산조각낸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끔찍한 내상이다.

증인이 없어 증거를 대기도 어려운데, 더구나 한국 사회의 여성으로서 공론화 뒤에 이렇게까지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피해자들이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낼 이유가 없다. 나는 피해자의 말과 삶 자체가 증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최근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ㄷ대 ㄱ교수는 피해자를 무고 혐의로, 자신에게 맞선 동료 여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증인이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피해자를 맞고소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그런 후안무치한 일이 교권을 옹호하는 대학의 높은 성벽을 발판삼아 이뤄진다면 그 성벽 역시 무너져야 한다.

피해자들은 투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에 못 견뎌 신음소리를 낸 것이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막아달라고 동료·교수·학교에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백이면 백, 성폭력 가해자들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정치적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 자신의 꿈과 사회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가해자의 적을 위해 싸울 만큼 우리의 인생이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나는 힘겨운 싸움을 했다. 교수들과 학교로부터 배신당하고 상처받았다. 그래서 법에 호소했다. 그러나 법도 피해자들에겐 냉담했다. 피해자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죄인처럼 홀로 조사받고 홀로 조사실을 나와야 한다. 보충조사를 받으러 지방검찰청에 나간 날, 가해자가 나와 있었다. 피해자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대질심문을 한 것이다.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태로 가해자와 대면했다. 대질심문을 거부한 또 다른 피해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교수 얼굴을 보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 것 같아 거부했어요.” 나에게는 대질심문의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피해자 모임 ‘수련회’를 결성하다

지난해 12월 서강대 여성위원회 학생들은 다른 대학 여학생단체에 연대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ㅇ대, ㄱ대, ㄷ대 또한 교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상태였다. 이 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교수 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에는 현재 6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나는 나의 상처를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연대회의를 통해 다른 피해자와 만났다. 이메일을 통해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교수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수련회’를 결성했다. 피해자들은 한국·일본·미국에 흩어져 있고 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가해자들보다 가난하고 힘도 없지만, 이메일과 채팅으로 꾸준히 서로를 격려하며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다.

최근 수련회 회원들이 분노할 사건이 일어났다. 성인에게도 이렇게 힘겨운 일이 어린 청소년들에게 일어난 것이다. 서울 ㅊ정보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같은 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자신의 피해사실을 청와대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한 피해자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제적까지 당했다. 지난 5월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여성민우회 등이 주축이 돼 ‘학교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을 꾸렸을 때 수련회는 지지성명을 보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ㅊ정보고등학교의 피해자를 만나러 간 날, 어린 학생들이 경찰서에 간다는 얘길 듣고 나도 모르게 그들과 동행했다. 혼자였기에 더 끔찍한 시간을 아이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그들은 미성년자이고 성폭력 피해자인데도 경찰청의 지침과는 달리 나는 배석할 수 없었다. 피해학생들은 문제학생처럼, 죄인처럼 진술해야 했을 것이다. 끔찍한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고 시간대와 논리에 맞게 자세히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가해자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어느 손이 신체의 어느 부위에 어떻게 닿았는지…. 나 역시 진술이 끝났을 때 문 밖에서 누군가 기다려주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나는 기다렸다. 간간이 웃기도 하던 아이들이 창백한 얼굴로 나왔다.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지친 얼굴에서 예전의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을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준 다음 나는 한동안 거리에 서서 울었다.

‘학생이 어떻게 감히…’

군사부일체. 그 말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교사·교수를 존경해야 했다. 교사·교수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믿은 선생님이기에,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 여겼기에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들은 정신적 공황상태가 된다. 이 상황이 꿈인가 생시인가 당혹스러워진다. 낯선 치한이라면 떠밀고, 차고, 욕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가해자들의 증언대로 그들이 만취상태였으면 뺨이라도 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충분히 기억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일을 저지르는데 ‘학생이 어떻게 감히’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가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내일 다시 얼굴을 봐야 하는 교수님인데, 교수님이 민망하지 않게 자리를 피해야 하는데 따위의 상대 입장까지 생각하게 된다. 짧은 시간 동안 피해자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이미 사건은 벌어진 뒤다. 다음날이면 가해자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의 상처는 깊어진다. 이런 교사·교수들을 믿은 자신을 자책하고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옹호하는 학교·사회에 철저히 무력해진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고 한국을 떠난다.

나는 무척 외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만큼 외롭지 않다.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당당한 주체로 만들어주었다. ‘성폭력 근절을 위한 모임’(cafe.daum.net/sghope)이 있고, ‘교수 성폭력 근절과 대학의 민주화를 위한 커뮤니티’(neo.urimodu.com/index_community)도 만들었다.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그곳을 통해 자신들의 사건을 알려오고 나의 고통을 덜어준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지식인 사회에 염증을 느낀 수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 모두는 새삼 놀랐다. “나도 피해자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그리고 공감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많다는 사실에.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나는 그래서 깊은 방에서 웅크린 피해자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말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이미 혼자가 아니라고. 나는 여러분과 함께 나의 반쪽짜리 커밍아웃을 완성하고 싶다고.

최희정/ 교수 성폭력 피해자 모임 회원 chuzworld@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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