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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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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동네 한 바퀴’


6·2 지방선거에서 ‘동네 정치’ 일구는 전국의 풀뿌리 후보들
등록 2010-03-05 10:55 수정 2020-05-03 04:26

“나부터도 그렇고 이 친구도 그렇고, 떨어지면 청초호에 코 박을 거야.” 2월23일 저녁 강원 속초고 32회 졸업생들의 동창회에 참석한 양천석(47)씨가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양씨는 이 학교 28회 졸업생이고, ‘이 친구’ 엄경선(45)씨는 30회 졸업생이다. 두 사람은 오는 6·2 지방선거에서 속초시의원에 출마한다.
속초 동명항 근처의 한 횟집에 모인 30여 명은 강원도 말로 ‘싱퉁이’라고 부르는 도치를 안주 삼아 이미 소주 네댓 잔씩을 주고받은 터였다. 얼굴이 불콰하게 물든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양씨의 말에 대꾸했다. “오염된다고~. 청초호에 코 박으면.” 폭소가 터졌다. 양씨가 다시 말을 받았다. “그 물 내가 다 먹고 죽을 거니까 괜찮다.” “하하하.”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풀뿌리 후보와 지역 활동가들이 2월16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풀뿌리 좋은정치 네트워크’ 발족식을 열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풀뿌리 후보와 지역 활동가들이 2월16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풀뿌리 좋은정치 네트워크’ 발족식을 열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초·중·고 동창들이 모여 시작한 지역운동

농담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이번엔 엄경선씨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제가 지렛대가 돼 속초를 바꾸고 싶습니다. 주민이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일에 노력하겠습니다.” 후배들은 좋다, 싫다 대답 대신 취재 중이던 사진기자에게 “두 사람 사진 잘 나오게 찍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엄씨는 속초시 기초의원 가 선거구, 양씨는 나 선거구에 출마할 예정인 무소속 예비후보다. 이들은 자신을 ‘속초 주민 소속 시민후보’라고 표현한다. 속초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방선거를 준비하려고 만든 ‘진보사회실현연대’에서 지난해 5월 일찌감치 후보로 결정됐다. 두 사람 모두 속초친환경무상급식운동본부, 속초경실련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운동가’이기도 했지만, 엄씨는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양씨는 광고업체를 운영하는 ‘생활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결심, 그것도 당선 확률이 100% 보장되지 않는 결심을 하는 게 어렵지 않았을까? 이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20년 가까이 지역운동을 했다는 우리가 선거에 안 나서면 어떻게 지역을 바꾸자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이들이 살아온 궤적을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두 사람은 다른 많은 386세대처럼 ‘운동권’이었다. 어느 겨울,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엄씨가 양씨를 찾아갔다. 1985년 3월과 6월 서울 목동 철거민 투쟁과 대우어패럴 파업에 대한 홍보물을 뿌리다 경찰에 두 차례 연행된 뒤였다. “형, 군대를 가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군대를 가야 할지, 운동을 계속해야 할지.” 양씨의 답은 간단했다. “군대 가라. 갔다 와서도 마음이 안 변하면 그때 운동 계속해.”

제대한 뒤 엄씨는 민중당에서 1991년 지방선거 홍보를 맡았다. 1992년 총선 땐 민중당 후보로 서울 노원 지역에 출마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를 돕기도 했다. 그해 겨울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대선 캠프에서 홍보를 담당했다. 2학점이 모자라 학교를 한 학기 더 다녀야 했을 정도로 진보 진영의 정치세력화에 힘을 쏟았지만, 보람을 느낄 만한 결과는 만들지 못했다. ‘동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회의가 밀려들었다. 영화사, 건강식품회사 등을 전전하면서 서울살이도 돈벌이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때마침 양씨가 속초 풀뿌리 언론 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1994년 여름이었다. 100만원이 넘던 월급이 25만원으로 줄었고, 취재와 기사 작성은 물론 배달·수금까지 직접 해야 했지만 지역의 공익에 도움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1986년부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양씨는 앞서 1992년 귀향했다. 구로공단에선 인쇄공장, 플라스틱 사출기 공장 등에서 노조를 조직했다. 마지막으로 일한 사출기 공장에선 주간 10시간, 야간 14시간 맞교대로 일을 했다. 없는 날이 오히려 이상한 잔업과 특근 덕에 본봉보다 수당이 더 많았지만, 과로로 건강이 나빠졌다. 공장을 그만두고 가리봉동에 ‘열두마당’이라는 노동자 주점을 냈다.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말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절, 열두마당은 그 동네 노동자들이 노동가요를 부르며 ‘노태우’를 비판할 수 있는 해방구였다. 하지만 양 후보에겐 고민이 밀려왔다. “학생 출신들이 노동운동 1~2년 하다 감방 갔다온 경력 갖고 기득권 정당으로 들어가는 등 변절하는 걸 보면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어요. 노동자 스스로 의식이 높아져야 노동운동도 발전하고, 그러려면 저 같은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노동운동을)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제는 지역에서 일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동네 정치’를 바꾸는 풀뿌리 후보의 선거 혁명을 기대해도 좋을까? 강원 속초시에서 주민후보로 시의원 출마를 준비 중인 양천석(오른쪽 두 번째)·엄경선씨(세 번째)가 2월23일 저녁 속초고 동창회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동네 정치’를 바꾸는 풀뿌리 후보의 선거 혁명을 기대해도 좋을까? 강원 속초시에서 주민후보로 시의원 출마를 준비 중인 양천석(오른쪽 두 번째)·엄경선씨(세 번째)가 2월23일 저녁 속초고 동창회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시민단체가 직접 시의회로 들어가자”

속초로 돌아오니 초·중·고 동창 중에 두 사람처럼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 돌아온 이들이 제법 됐다. 반가운 얼굴들이니 정기적으로 친목이나 도모하자며 ‘다시 만난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했다. 그리고 속초환경운동연합, 속초경실련, 속초고성양양반부패시민연대, 속초의정지기단 등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이 모임을 중심으로 하나둘 생겨났다. 그사이 두 사람은 을 그만두고 다른 생업을 찾았지만, 몇몇 단체의 비상근직을 맡아 친환경 급식조례 운동, 보육조례 운동 같은 풀뿌리 활동을 계속했다.

지난해 시의회에서 경제적 효과가 의문스러운 관 주도 축제인 ‘불 축제’ 예산 8억5천만원을 전액 삭감하고 ‘대한민국 음악대향연’ 예산을 3억원 삭감한 것도 이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시의회를 지속적으로 압박한 결과였다. 최근엔 가장 큰 지역 현안인 동우대학 원주 이전 반대 운동을 펴고 있다. 대학이 사라지면 지역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지역 인재들도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출마는 이렇게 오랜 지역운동의 경험으로 깨달은 또 다른 운동의 방식이었다. “왜 시민단체는 항상 시정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손팻말을 들게 되는 걸까요? 무상급식 실시나 제대로 된 의정 감시 활동 같은 주민의 이해와 요구가 제대로 수렴되지 않고, 그럴 통로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속초의 야당은 민주당이 아니라 시민사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를 더 합리적으로 풀려면, 시민사회가 직접 시의회에 들어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엄씨의 이야기다.

아프리카에서 배운 공동체의 소중함

안정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당 대신 무소속 출마를 선택한 데도 이유가 있다. 시장과 시의회 7석 가운데 5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도 기득권만 주장할 뿐 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축제 예산 삭감처럼 시민사회가 똘똘 뭉쳐 강한 압력을 넣어야만 움직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분열에 실망해 등을 돌린 주민이 많았다. 이들이 시민후보로 나서기로 하면서 두 진보 정당은 해당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광주 남구 라 선거구에서 ‘주민후보’로 구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임승호(41)씨도 서울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이전과 달리 시민단체가 정책을 제안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던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좋은 정책’이 실행돼도 사람들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비현실적인 급여로 인한 생활고도 버티기 힘들었다. “법이나 제도를 바꾸더라도 근본적 사회 변화는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에 무너”진 그는 “다시는 운동 안 한다는 각오”로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회사는 그를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발령냈다.

지역에 몸을 던지게 한 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제대로 된 농기구 없이도 공동 경작으로 땅을 일구는 사람들, 하루 일당 1달러를 받으면서도 이웃과 함께 웃는 사람들, 수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비만 오면 물난리가 나도 서로 등 두드려가며 복구 작업에 나서는 사람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걸 그들이 말해줬다”고 했다.

2001년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 광주YMCA,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에서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 다른 지역 단체들과 함께 추진한 공직자 주민소환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했을 때의 감동은 아직 잊을 수 없다. 이 조례는 2006년 국회에서 주민소환법이 제정되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주민소환조례 제정은 그나마 성공적인 사례였지만, 사실 ‘호남의 여당’인 민주당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2006년 당선된 민주당 소속 광주·전남 기초단체장 22명 가운데 10명이 인사 청탁 비리와 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 무효 처리돼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정도였다. 최근 18명의 시의원이 모두 민주당인 광주시의회는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 일당 독점 구조를 더욱 공고한 성채로 만들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독점하면 독주하게 됩니다. 민주당이 모든 걸 가진 광주에서 지방자치는 없어요. 정당자치만 있을 뿐이지. 하지만 기초의원이 시민을 위해 일하면 동네도 바뀌고, 민주당의 정치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요?” 임씨는 자신이 선거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선되든 안 되든 선거 이후의 계획도 세워뒀다. 광주에서 시민정치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민운동만으로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수집해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 단체와 뜻있는 시민의 역량을 모아 4년 뒤, 8년 뒤 선거에서도 주민이 지방자치에 직접 참여할 길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서울 도봉구에서 구의원 풀뿌리 후보로 결정된 이창림씨(맨 왼쪽)가 2월25일 방학동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서울 도봉구에서 구의원 풀뿌리 후보로 결정된 이창림씨(맨 왼쪽)가 2월25일 방학동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서울 도봉구에서는 이창림(33)씨가 풀뿌리 후보로 기초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월 도봉 지역 시민단체들의 지방선거 대응 연대조직인 ‘좋은 정치 씨앗들’에서 후보로 결정됐다. 이씨가 ‘주민후보’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간명하다. “정당 소속이라면 동네 말고도 안테나를 세워야 할 곳이 하나 더 있잖아요. 저는 주민자치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 정치·사회적으로 대변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통로가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보통의 지역운동가들과 달리 그는 학생운동을 한 경험이 없다. 처음엔 그저 정치에 관심이 많을 뿐이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한 2002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을 감시하는 시민 옴부즈맨 활동을 하게 됐다. ‘깨끗한 선거’를 약속한 경선에서 이인제 의원 쪽이 울산 선거인단에 10만원이 든 돈봉투를 뿌린 사실을 이씨가 밝혀냈다. 아무리 열심히 감시하더라도 ‘선수’가 공정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2년 뒤 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치세력이 되겠다며 만든 초록정치연대에서 간사를 맡아 전국을 다니며 지역운동가들을 만났다. 다소 막연하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역이 변화해야 세상이 변화한다”는 소신으로 바뀌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씨가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도봉구의 시민단체들이 구의원 시민후보를 물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칠 것 없는 29살이었다. 큰 고민 없이 선거에 나섰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주변에선 “동네에서 활동하는 건 갑갑하다. 중앙으로 가서 시민운동을 하라”고 충고했지만, 그에겐 선거 이후가 진짜 지역운동의 시작이었다.

지하 창고에 사는 주민을 만나고

복지단체인 도봉자활후견기관의 간병사업단에서 일하면서 하루 종일 빛도 들지 않는 지하 창고에 사는 주민을 만나고, 자식이 뇌성마비지만 맡길 곳도 돈도 없어 혼자 두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어머니를 만났다. 혼자 집에 있다 숨을 거둔 할머니를 발견하고 장례를 치러준 적도 있다. 주민들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2008년 ‘도봉구의원 의정비 부당인상 반환 주민소송’을 주도해 주민소송 역사상 처음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마을신문 의 편집위원을 맡아 지역과 이웃의 소식을 나누며 지역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씨는 “내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도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농민후보’도 있다. 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전남 구례군의 정정섭(46)씨다. 미국산 쌀 수입으로 인한 국산 쌀값 폭락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던 1987년,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농사지어 어렵사리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양복 입고 출근하는 회사에 취직하기는커녕 시골로 돌아와버린 아들에게 선뜻 공감할 부모는 없었다. “구례농민회를 만들자고 주민을 설득하는 것보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하지만 사회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농민의 삶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굽힐 수 없었습니다.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부모님도 선거에 나가라고 격려해주실 만큼 달라지셨죠.”

전남 구례 ‘농민후보’ 등 출마 줄이어

20년 넘게 농민운동을 하면서 거둔 성과도 제법 된다. 2006년엔 기아자동차 광주지부와 자매결연을 맺어 구례 지역에서 생산된 쌀의 판로를 열었다. 구내식당에 쌀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구례의 감, 고로쇠물, 산수유 등도 구내식당에 전시해 판매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2004년엔 구례 특산물인 산수유를 수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주민들끼리 똘똘 뭉쳐 철회시킨 적도 있다. 하지만 늘 아쉬웠다. 외국산 한약재가 국산으로 둔갑해 비싼 값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도에 조례를 제정하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민들이 수십 발 뛰어야 정치인이 한 걸음 움직이는 효과”라는 생각은 더욱 강해졌고, 결국 출마를 결심했다.

풀뿌리 후보는 이들 말고도 더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시민후보로 당선된 경기 과천의 서형원 의원과 강원 춘천의 이재수 의원이 재선에 도전한다. 전남 여수에선 지역 환경운동가 출신의 문갑태씨가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현재 지역 시민사회가 후보 선출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곳도 여럿이다. 서울 관악·노원·마포구, 경기 군포시, 경북 구미시, 대구, 전남 나주시 등에선 늦어도 4월 초까지 풀뿌리 후보를 확정할 계획이다. 충북 옥천에선 ‘안티 조선운동’을 벌였던 오한흥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가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후보가 누구든, 출신이 어디든 이들의 생각은 하나다.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은 동네 정치다.”



정당도 ‘동네 정치’에 나서는 방법
좋은 후보 기준 맞춰 줄을 서시오


지역운동이 활발한 곳이라고 해서 모두 6월 지방선거에 ‘주민후보’를 내는 건 아니다. 시민사회와 정당의 관계, 출마에 적합한 인물 유무 등 각 지역이 처한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곳도 있다.
경기 고양시의 시민단체들은 후보와 정책을 분리해 대응하는 ‘투 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후보 선출 문제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5개 야당에 맡겼다. 지역 단체들이 모인 ‘고양 무지개연대’는 5개 정당의 논의 창구인 ‘정당협의체’가 단일 후보를 논의하면, 검증·지지 활동만 하기로 했다. 그 대신 선출된 후보가 내놓을 공약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교육·복지·경제 등 10개 분야에서 공약 100개를 엄선한 뒤 오는 3월2일 발표한다.
공약 작성 작업은 고양 무지개연대가 공식 출범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지역 단체들은 정책팀을 만들어 분야별 정책 대안을 정리했다. 2월8~24일엔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공약 공모대회’를 열었다. 32명의 시민공약 38건이 접수됐다. 집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어달라거나, 자전거도로를 확충해달라는 등 주로 생활 주변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없애달라는 내용이 많았다. 2월25일엔 이들 공약을 놓고 지역 활동가와 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회를 벌였다. 자료집만 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토론은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런 활동이 가능한 건 지방자치가 부활한 1991년부터 ‘시민단체 출신 시의원, 시민단체가 만든 정책’이 지역의 전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2002년엔 시민후보 8명이 당선되기도 했다. 2006년엔 무소속 후보가 모두 낙선했지만, 시민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민주당 등의 시의원 3명이 당선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은 축소되지 않았다. 이춘열 고양 무지개연대 집행위원장은 “좋은 후보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그 후보가 뭘 할 것인지를 논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책적 접근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전북 부안군, 서울 동작구 등에선 각 정당이 좋은 후보를 뽑도록 시민단체가 독려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민자치모임인 ‘부안 아카데미’ 등은 민주당에 시민공천배심원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3월3일 기자회견을 연다. 또한 부안을 지역구로 하는 김춘진 민주당 의원과 중앙당에 서명 명단을 전달할 계획이다. 민주당이 낙점한 후보가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 현실을 감안해, 아예 후보를 정할 때부터 시민의 의사를 물으라는 압박인 셈이다.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희망동네)의 좋은 후보 기준은 지난해 ‘의정감시단’의 평가 결과다. 희망동네는 2007년부터 구의회가 예산을 결정하는 12월이면 구의원들의 출석률, 발언 내용, 회의 참석 태도 등을 모니터링하고 점수를 매겨왔다. 2월25일엔 이 자료를 구의회 의석을 나눠가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작구위원회에 전달했다. 유호근 희망동네 사무국장은 “지역 주민이 직접 평가한 점수를 반영해 구의원 후보 공천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일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 더 잘할 수 있도록 끌어내는 것도 시민사회의 효과적인 정치 참여 방식”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 시민단체들은 정책 제안과 좋은 후보 선정 기준 제시 두 가지 활동을 병행키로 했다. 학교급식 조례, 자전거도로 확충 등 주민 생활에 밀접한 공약을 제시한 뒤 후보들에게 이를 시행하겠다는 서약을 받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친다. 아울러 부정부패 전력자, 선거법 위반자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다양하고 합리적인 공천 기준을 만들어 3월 중순 각 정당에 전달할 계획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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