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틈새’를 파고든 게 바로 마을신문과 지역 언론이다. 구나 동 단위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동네 소식을 전하고, 언론 본연의 기능을 살려 지방권력 감시활동도 편다. 운영에 드는 비용부터 기사 작성·배포까지 모두 지역 주민이 도맡아하는 것은 물론이다. ‘풀뿌리 정치’를 키우고 감시하는 역할을 ‘풀뿌리 언론’이 맡고 있는 셈이다. 덩치는 작지만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고 있는 풀뿌리 언론의 활동을 살폈다. 편집자
지난 1월19일 저녁 6시30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허름한 상가건물 2층에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로 단단히 몸을 감싼 이들이 모여들었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서둘러 달려온 이들은 모두 6명. 떡볶이와 김밥, 음료수로 간단히 요기를 하더니 다시 어둠이 들어찬 겨울 거리로 나섰다. 들어올 때와 달리 이들의 팔엔 저마다 타블로이드판 신문 수백 부씩이 들려 있었다. 그날 발행된 이었다.
후원회원들이 신문 배포까지은 은평구 주민이 만드는 마을신문이다. 다루는 내용도 은평구 얘기, 읽는 사람도 은평구 사람들이다. 개혁국민정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우리당으로 흡수된 2003년, 은평구에 살던 당원 몇몇이 의견을 냈다. “기왕 모인 거, 노 대통령 당선됐다고 흩어지지 말고 이젠 진짜 풀뿌리 민주주의 한번 해보자. 우리가 사는 은평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지 못하면 중앙 정치판을 바꾼다고 민주주의가 되는 게 아니다. 지역 감시활동에 충실할 수 있는 신문 하나 만들자.”
평범한 직장인과 주부였던 이들의 아이디어에 ‘열린사회은평시민회’ ‘생태보전시민모임’ 같은 지역 시민단체들도 호응을 보냈다. 순식간에 후원회원과 신문사를 차릴 자본금 1600만원이 모였다. 2004년 10월 인터넷 신문으로 이 시작됐다. 지난해 말부턴 격주간으로 오프라인 신문도 내고 있다. 한 번에 5천 부씩 찍지만, 신문값은 무료다. 200만원에 이르는 발행 비용은 대부분 후원회원 150여 명이 매달 내는 회비로 감당한다. 이날 거리에서 신문 배포에 나선 이들도 후원회원이다. 물론 ‘수고비’를 바라지 않는 기꺼운 자원활동이다.
의 상근기자는 부미경 편집장을 포함해 2명이고, 시민기자는 300여 명에 이른다. 은평구 곳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이들의 시선은 촘촘하고도 매섭다. 시민기자 채훈병씨가 지난해 말에 쓴 ‘은평 인터넷 방송국’ 관련 기사는 구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구청이 주민을 위해 뭘 하는지 평소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다. 은평 인터넷 방송국은 구청이 구정 홍보와 평생교육 제공 등을 목적으로 관리하는 역점사업이다. 은평구청은 지난해 이 방송국에 최첨단 고화질(HD)급 장비를 갖추고 스튜디오까지 재단장하는 데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였다. 채씨는 지난 1년 동안 이 방송국 운영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동영상은 볼 수 없고 주민이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는 코너는 폐쇄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초·중·고생을 위한 학습자료는 가장 최근 것이 2008년 게시물이었다.
상근인 윤효순 기자는 2008년 여름 과 인연을 맺었다. 그해 촛불 정국 때 “엄마이자 시민으로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분출하려고” 시민기자로 활동했고, 지난해 5월부턴 아예 상근기자가 돼 은평 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주요 인터넷 언론과 중앙 정치판까지 달아오르게 한 ‘특종’도 했다. 지난해 10월 재보선 출마설이 나돌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사전선거운동 의혹 보도였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이 위원장의 지역구였던 은평을 지역을 관통하는 704번 버스 옆구리에 그의 책 광고가 실리고, 지역구 학교 강연과 주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한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이 보도를 본 창조한국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재오 위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 조사를 의뢰했고, 선관위는 이 취재한 내용을 참고자료로 가져가기도 했다.
, ‘차일피일’ 구청을 압박하다인천 부평구에서 볼 수 있는 은 시민주주만 1천 명에 이른다. 매주 화요일 타블로이드 배판(가로 39.1cm, 세로 54.5cm) 12면으로 발행한다. 지역운동을 벌이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 나섰거나 이들을 지원했던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됐다. 주민들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려면 이들의 삶에 밀착한 지역 신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었다. 당시 선거 때 만난 시민 후보 지지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 주주로 나섰고, 2003년 10월 정기간행물로 등록된 어엿한 지역신문이 탄생했다. 상근기자 4명과 시민기자 40여 명이 기사를 쓰고, 독자들은 월 4천원(후원독자는 월 5천원 이상)에 우편으로 신문을 받아본다.
“주민들이 이라는 문턱 없는 마당에서 지역 정치·행정·경제의 주인으로 서는 꿈”을 창간 정신으로 한 신문이 생겨난 뒤 부평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게 부평 지역 주요 도로에 설치된 무단횡단 금지 펜스다. 부개사거리에서 송내역으로 가는 경인로에서 2007년 한 해에만 사망사고가 4건 발생하는 등 무단횡단의 피해가 커지자, 주민과 경찰은 사고다발 지역에 무단횡단 금지 펜스를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은 이미 인천시에서 받은 예산을 집행하는 일인데도 “디자인을 더 검토해야 한다”고 차일피일 미뤘다. 이런 사실이 의 지속적인 보도로 알려지자 여론의 압박이 거세졌다. 결국 구청은 2008년 말부터 곳곳에 펜스를 설치했다.
그간 주목하지 않던 구의회의 잘못된 관행도 드러났다. 구의원들이 단체로 의정운영 경비를 써서 고가의 체육복을 산 사실을 고발했고, 업무추진비 대부분이 밥값 등 접대비로 쓰인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승희 편집국장은 “체육복 구입비 보도 이후 시민단체가 구의회에서 농성을 벌였고, 결국 (구의원들의) 사과와 환불을 받아냈다.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가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며 “(그 밖에도) 잘못된 행정으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기사가 보도된 뒤 적지 않은 부분이 고쳐졌다”고 말했다.
청취자의 피드백이 중요한 라디오는 주민 참여를 생명으로 하는 지역 언론에 더없이 맞춤한 매체다. 서울 마포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초단파 라디오 ‘마포FM’을 보자. 지역 문제를 다루는 ‘송덕호의 쌈박시사’, 홍익대 앞 인디음악을 들려주는 ‘뮤직 홍’, 마포 주민의 일상을 들려주는 ‘톡톡 마포’ 등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마포의 지역적 특색을 살렸고, 프로그램 기획·제작·진행도 모두 주민들이 맡고 있다. 2004년 방송위원회가 참여형 미디어 발전 방안으로 추진한 ‘지역 공동체 라디오’의 시범사업자로 선정돼 이듬해 9월 처음 전파를 쏘아올렸다. 보통 라디오 방송국의 출력은 1kW지만, ‘지역 공동체 라디오’의 출력은 1W로 보통 반경 5km 이내에서만 청취할 수 있다. 마을신문처럼 ‘마을 라디오’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 이런 지역 공동체 라디오는 ‘마포FM’를 비롯해 ‘관악FM’(서울 관악구), ‘영주FM’(경북 영주시), ‘광주시민방송’(광주) 등 전국에 8곳이 운영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레게음악만 방송하고 철거민 구하고
‘마포FM’에서 상근직은 송덕호 운영위원장 등 3명뿐이다. 방송에 필요한 다른 인력은 모두 자원활동가다. 후원회원 200여 명 가운데 절반이 작가, PD, 진행, 기술 등을 나눠맡아 자원활동을 한다. 신규 프로그램 도입은 ‘참여편성제’를 통해 결정된다. 회원 누구나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데, 지난해 말 회의에선 국내 최초로 레게음악만을 틀어주는 ‘와다다 레게 라디오’ 편성이 결정돼 1월4일부터 방송을 하고 있다.
이달 초엔 재개발 예정지인 아현 3구역에 고립된 이들을 구했다. 건물 대부분이 철거된 이곳엔 김완숙씨 가족과 한상순씨 가족 등 두 집이 남아 있다. 철거용역들의 위협, 원인 모를 화재 등 이곳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100가지도 넘지만, 쥔 돈 한 푼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처지로 여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는 이유 한 가지가 이들을 붙들고 있다. 시공 하청업체가 도시가스를 끊었고, 화장실마저 없앤 다음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하지만 구청도 경찰도 “사유지에서 민간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공사장 주변에 쳐놓은 펜스의 작은 출입문을 통해야만 집에 갈 수 있는데, 하청업체는 마침내 이 출입문마저 폐쇄해버렸다. 이 소식이 ‘송덕호의 쌈박시사’에 전해졌고, 1월5일부터 매일 방송 끝나기 전 5분씩 이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연결했다. 전날 철거용역이나 하청업체가 가한 협박, 펜스를 넘어가려다 다리를 다친 소식 등이 전파를 탔다. 이들을 응원하고 업체의 비정함을 비판하는 청취자들의 문자메시지도 수십 통 전달됐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자 굳게 닫혔던 펜스 출입문이 열렸다. 김완숙씨는 방송에서 “마포FM이 최고”라며 눈물을 흘렸다. 작은 라디오의 작지 않은 영향력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마을신문엔 ‘사람 냄새’도 흐른다. 창간한 지 12년 된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의 은 말 그대로 마을 소식을 전한다. 아침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교통지킴이 아줌마가 누군지, 이번에 들어설 지하철역 이름은 뭐가 될지, 마을 청소를 가장 열심히 한 마을 조직은 어디인지가 주요 내용이다. 상근기자도 없다. 의사, 보험설계사, 자영업자 등 13명이 머리를 맞대 기삿감을 정하고 제목을 뽑는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다가도 자신이 실린 신문을 “앨범에 꽂아 잘 보관해뒀다”는 이도 있다. 그렇게 반송 주민 5만6천 명은 서로 거리를 좁힌다.
개표 방송을 재밌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이들 풀뿌리 언론이 빛을 발할 기회다. 광역·기초자치단체장 후보 소개에도 힘이 부칠 중앙 언론과 명확히 비교될 수 있다. 대부분 지역 언론은 기초의원 후보자까지 초청해 정책토론회를 열고, 공약 검증을 철저히 해 후보자 관련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마포FM’은 오는 3월부터 선거방송 체제로 바뀐다. 4년 전에도 후보자 토론회 등을 준비했지만, 그땐 주요 후보자들이 모두 “마포FM이 뭐냐?”며 참여하지 않았다. 인지도와 참여도가 높아진 지금은 이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포구 선거관리위원회 개표장에 가서 새벽 2시까지 어느 매체보다 빠르게 개표 결과를 방송한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개표 방송을 재밌게 진행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은 후보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인터뷰를 한 뒤 각자의 장단점, 정치 철학, 비전 등을 가감 없이 소개할 계획이다. 또한 학교운영위원, 주민자치위원, 역대 구의원·교육위원 등 자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실어, 지방자치에서 주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한계는 있다. 가장 큰 벽이 완성도다. 대부분 글쓰기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어서 기사의 질이 낮거나 취재를 잘 못할 때가 있다. 아무리 참신한 소재를 발굴했다 하더라도 전달력이 떨어져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거나 두어 달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소통하면 보수 정당과 유지들의 관계도 균열”송덕호 ‘마포FM’ 운영위원장은 “아현 3구역처럼 재개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전문적인 기자들이라면 사안을 심층 취재하겠지만, 여기선 (자원활동가들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 없고 그런 마인드도 없다. 눈에 보이는 문제의 이면에 뭐가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 진짜 언론이 될 수 있고, 그런 활동가나 청취자가 늘어야 주민들의 자치 역량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풀뿌리 언론이 지역의 역학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받는다. 부미경 편집장은 “지역에 오래 산 사람들, 특히 지역 여론을 좌우하는 유지들은 대부분 보수 정당에 포섭돼 있다. 그런데 이들은 30년 된 이발사, 40년 된 구둣방 주인처럼 지역의 역사와 함께했기 때문에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어서, 마을신문에 소개가 되면 매우 좋아한다. 이렇게 유지들이 풀뿌리 언론과 소통을 계속하면 보수 정당과 그들의 관계에도 균열이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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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풀뿌리 언론이 참고할 만한 사례는 (www.janjan.jp)이라는 일본 인터넷 언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잔잔은 정치부장 출신으로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장을 지낸 다케우치 겐이 2003년 2월 창간했다. ‘모든 시민이 기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의 를 벤치마킹했다. 상근기자 15명에 시민기자가 7천 명이다.
사실 일본에선 일본 지사를 비롯해 인터넷 신문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 틈에서도 이 독보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선거 정보 페이지(사진)를 개설하고, 정치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데 있다.
일본은 선거운동 규제가 심해 2003년까지만 해도 공약집 배포마저 불법이었다. 공약집 안에 돈을 집어넣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선거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후보자가 자신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방법은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지역 조직, 유명세, 돈 등 세 가지 간판 중 하나는 있어야 정계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으로 ‘3방’(さん-ばん·세 가지 간판)이란 유행어까지 만들어졌다.
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했다. 후보자가 직접 자신의 공약집이나 이력, 홍보 동영상 등을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그 페이지에서 해당 정치인이나 선거와 관련한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다. 역대 각종 선거결과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처음 접한 정치 정보에 유권자들의 반응은 컸다. 한 달 평균 페이지뷰는 1천만 회에 이르렀고, 중의원 선거(2009년 8월)를 앞두고는 그 2배가 넘는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다케우치 겐 사장은 “그동안 선거 출마자의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정치인의 질이 점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5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우리 사이트에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애썼던 데도 공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도쿄(일본)=글·사진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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