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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없인 상환 없다’는 상식


영국엔 소득연동 상환제도·등록금상한제, 미국엔 다양한 학자금 지원 창구
등록 2008-11-27 06:57 수정 2020-05-02 19:25

7454명. 학자금 대출 이자, 또는 원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유의자’ 수다. 이 수는 매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대학생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대안이 필요할까?
현재의 학자금 대출제도는 돈을 빌리는 순간부터 이자를 내야 한다. 이렇게 이자만 내는 거치 기간은 최장 10년까지 정할 수 있다. 거치 기간이 지나면 역시 최장 10년에 걸쳐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다. 이때 원금과 이자를 내는 기간은 학자금을 빌린 사람이 일자리를 구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

지난 11월11일 5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지난 11월11일 5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연 3348만원 이상 벌어야 갚기 시작

이에 반해 영국은 완벽한 ‘소득연동 상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등록금을 학생들이 내지 않고 학자금 관리공사(SLC)에서 낸다. 이후에 학생이 취업을 한 뒤 수입이 기준소득(2007년 기준 1만5천파운드·약 3348만원)을 넘어서면, 그 초과분의 9%씩 자동 상환하게 된다. 학생의 수입이 평생 기준소득을 못 넘으면 갚지 않아도 된다. 대신 학생 때 기준소득이 넘는 수입이 생기면 학생 때부터 상환이 시작된다. 오스트레일리아도 소득이 있을 때 대출금을 상환하는 소득연동 상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남수경 강원대 교수(교육경제)는 “학자금 대출의 이자율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모두 7% 선으로 은행 금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기준소득을 초과한 사람들에게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느라 빌린 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학자금 지원 창구가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보증하고 민간 재원에서 대출금을 마련하는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 제도가 유일하다. 그러나 미국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학자금 대출, 대학과 정부가 함께 운영하는 학자금 대출, 우리와 같은 정부보증 민간 운영 학자금 대출 등 세 가지가 있다. 재원이 다양한 만큼 혜택을 볼 수 있는 층위가 넓다. 또한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은 확실히 저소득층 위주의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세세한 상환 유예 조건이다. 소득연동 상환제도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취업을 못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등 어려운 상황에서는 상환을 유예하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월 1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군인조차 꼬박꼬박 이자를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자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기 쉽다. 남수경 교수는 “유예 조건을 세세하게 만들어 제도적 결함을 메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학생에게 우선 적용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연동 상환제도가 불가능할까. 영국의 대학 진학률은 50%인 데 반해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91%에 달한다.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는 “한번에 모든 학생에게 적용할 경우 10년간 20조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선 소득 3~5분위 저소득층 학생, 수익률이 높은 전공 분야 학생에게 시범적으로 도입해 재정의 건전성을 확충한 뒤 점차적으로 넓혀나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등록금의 지나친 인상을 교육재정 투입 등으로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영국은 정부가 정한 기준 이상으로는 등록금을 책정할 수 없는 등록금상한제를 실시 중이다. 2011년까지는 연간 3천파운드(약 669만원)를 넘으면 안 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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