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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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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엔 인권기구들 ‘차별금지법 제정’ 한목소리

여성·인종 차별 철폐, 아동권리위원회 등 거듭 권고
등록 2020-08-10 12:27 수정 2020-08-15 08:16
2018년 11월29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12월10일)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인권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인권단체 활동가와 참가자들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향한 인권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1월29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12월10일)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인권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인권단체 활동가와 참가자들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향한 인권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 싣는 차례

① 헌법적 가치의 실현과 차별금지법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44.html)

② 국제인권규범과 차별금지법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인권선언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 차별과 배제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졌던 인류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약속이었다. 그 기초가 되는 원칙이 바로 평등과 차별금지다. 모든 사람이 단지 사람이기 때문에 응당 누려야 하는 권리인 인권은 평등과 차별금지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다.

한편, 평등과 차별금지는 단순히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억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정한 기표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분리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열등하거나 심지어 인간 이하인 것처럼 취급하며, 사람들 사이 위계를 정하고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질서가 평등과 차별금지 원칙이 겨뤄야 하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하는 것에서 나아가 세계인권선언 제2조는 당시 중요하게 여겼던 차별 사유를 예시로 들며, 그러한 차별 없이 선언상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제7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을 위반하는 어떠한 차별에 대하여도, 또한 어떠한 차별의 선동에 대하여도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차별로부터의 보호 자체를 권리로 확립했다.

인권의 전제는 평등과 차별금지

세계인권선언 이후 인권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에 담으려 했던 노력은 일련의 국제인권조약 채택으로 이어졌다. 특히 차별금지와 평등은 국제인권조약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권리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인권선언과 함께 국제권리장전을 이루며 양대 국제인권 규약이라 불리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1966년)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 1966년)은 모두 평등과 차별금지를 핵심 조항으로 둔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1966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1979년),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1990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1991년), ‘장애인권리협약’(2006년)은 차별 철폐와 동등한 권리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국제인권조약이다.

한국은 이러한 국제인권조약 중 ‘이주노동자 협약’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준했고,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제26조에 따라 당사국으로서 해당 조약들을 신의성실하게 이행해야 할 기본 의무가 있다. 또 대한민국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한국이 비준한 국제인권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즉, 대한민국은 사람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특히 법률로 사회의 주요 영역에서 차별이 없도록 하고 차별이 발생한 경우 시정하는 것은 국제인권조약 이행 의무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최근 10여 년간 인권조약 이행을 감독하는 여러 유엔 기구가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복해서 권고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는 2009년 사회권위원회부터, 2011년 여성차별철폐위원회, 2012년 아동권리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5년 자유권위원회, 2017년 사회권위원회, 2018년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가장 최근에는 2019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의 한국에 대한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에 계속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유엔 사회권위 “시민과 입법자 의식 높여야”

2019년 아동권리위원회는 “2007년 이래 차별금지법안 제정이 진전을 보이지 않는 것에 우려”한다고 밝혔다. 앞서 권고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도 인권조약 기구들에서 여러 차례 반복됐다. 2017년 사회권위원회는 차별이 인간 존엄과 인권의 평등한 향유를 저해하는 문제에 대해 “시민과 입법자들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지 말고, 인식 개선 노력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사람들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다름이 곧장 차별을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다름은 사회에서 부정적 표식으로 작동하며 편견, 고정관념, 불리한 대우, 동등한 사회참여 제약을 동반한다. 차별금지법에서 무엇을 차별금지 사유로 할 것인지는 어떤 다름이 인간의 가치에 마치 경중이 있는 것처럼 가르는 속성으로 작동하는지, 사회에서 나타나는 차별 현실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사회권위원회는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해석 지침인 일반논평 제20호(2009년)에서 “차별의 성격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며, 차별금지 사유는 “취약성을 갖고 있고 주변화를 겪는 사회집단의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규약에서 명시한 인종·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기타 견해, 출신국가 또는 배경, 재산, 출생 이외에 장애, 연령, 국적, 혼인·가족상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건강상태, 거주지, 사회경제적 상황 등도 차별금지 사유로 인정하며 규약을 해석·적용해왔다. 차별금지 사유가 차별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은 다른 인권조약 기구들도 마찬가지다.

2019년 6월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을 출발해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하자 이를 가로막는 시민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9년 6월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을 출발해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하자 이를 가로막는 시민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법에 인종차별 정의도 없는 한국

한국에 대한 유엔의 권고도 국내에서 대응이 불충분한 차별 영역에 주의를 기울이며 차별금지법이 그런 차별 현실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2015년 자유권위원회는 한국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일련의 개별법들이 있지만,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점” “특히 인종차별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현재까지 없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명시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인종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포함하는 모든 사유에 근거한 차별을 정의하고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2017년 사회권위원회는 성소수자, 국내 거주 외국인, 외국인 부모를 둔 아동의 차별 현실에 특히 염려를 표했다. 2018년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빈곤여성, 민족적·인종적·종교적·성적 소수자에 속하는 여성, 장애여성, 난민 및 난민신청 여성, 무국적 및 이주여성, 농촌여성, 비혼여성, 청소년, 여성노인 등”이 ‘성별’과 ‘다른 사유’가 교차해서 나타나는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2019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국내에 인종차별을 정의하고 금지하는 법률이 없다는 점에 거듭 우려를 표했고, 아동권리위원회는 조속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되 “그러한 법률이 출신,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는 사회의 주요 영역들에서 차별을 금지해야 하고, 사회구성원인 우리는 다름을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인권조약기구의 해석 지침 중 가장 최근에 채택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제6호(2018년)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합리적 편의 제공의 거부(특히 장애 차별 관련), 괴롭힘을 주요한 차별 유형으로 설명하는데, 국제인권법 실무의 현재적 관점을 보여준다.

차별금지 사유에 해당하는 어떤 속성을 이유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직접차별’이라고 한다. ‘간접차별’은 형식적으로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는데 그것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균등하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이다. 다른 속성을 지닌 사람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조정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편의 제공의 거부’에 해당한다. ‘괴롭힘’은 특정 속성을 이유로 위협적이거나 모욕적인 환경을 만들어 인간의 존엄성에 해를 입히는 의도나 효과를 갖는 행위를 말한다. 이 밖에 미국·캐나다·독일 등의 차별금지법제는 ‘성희롱’을 성차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명시적으로 해석하거나 별도의 차별 유형으로 두어 금지한다. 차별을 지시하는 행위(독일)나 차별을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행위(캐나다) 역시 차별로 보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국회의 시간’

6월29일 정의당 의원 6명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이동주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 이튿날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시안을 공개하고 국회에 차별금지법 입법을 권고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현실로 만들고 우리 사회를 좀더 포용적인 공동체로 진전시켜야 할 과제가 이제 국회에 있다. 우리의 대표자들이 차별금지법 입법 과정에서 여러 도전에 맞서 이렇게 이야기해주기를 바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민감한 주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공존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헌법과 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법에 따라 모두가 차별 없이 동등하게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모든 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란히 서겠습니다. 차별에 맞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차별은 제가 지키겠다고 다짐한 헌법적 가치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반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차별을 금지해야 하고, 차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높여야 합니다. 차별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를 제대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국회는 이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가 왔습니다.”*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포괄적…’으로 시작하는 인용문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에 관한 유엔인권이사회 연설(2012년 3월7일)을 모티브 삼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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