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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문제: 내가 아는 공정함은 과연 공정한가

평등주의·비례주의 원칙의 조화, 토론과 역지사지 자세 가져야
등록 2020-10-02 09:48 수정 2020-10-03 23:35
2020년 5월2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서경대에서 치른 에스케이(SK) 공채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시험장에 들어가려고 길게 줄 서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20년 5월2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서경대에서 치른 에스케이(SK) 공채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시험장에 들어가려고 길게 줄 서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이어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진료 거부에 이르기까지 공정성 문제가 주요한 사회 갈등으로 불거진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사회 책 시리즈를 내고 있는 필자에게 공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논술교재 서술 방식으로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_
편집자

어느 알려지지 않은 부족사회에 찾아갔다고 해보자. 이 사회에서 가장 선망받는 지위는 ‘전사’야. 열여섯 살이 된 소년들은 모두 전사 시험을 치러. 전사 시험은 부족 원로들이 엄격하게 관리해. 시험 첫날, 소년의 살갗을 갈고리로 꿰어 공중에 매달아. 고통을 참고 부족의 전통 노래를 불러야 통과하지. 다음날 소년들은 부족이 신성시하는 커다란 바위 주변을 온종일 빙글빙글 달려야 해. 멈추거나 쓰러지면 탈락이지. 소수만이 두 시험을 통과해. 시험 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고.

시험을 통과해 전사가 되면 특권을 얻어. 전사가 아닌 주민들이 전사들에게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바쳐. 전사들은 원하는 여성이나 남성과 결혼할 수 있고, 주민의 가축이나 집도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어. 이쯤에서 우리는 이 부족사회가 돌아가는 짓거리에 화를 내겠지. 그런데 부족의 원로가 이렇게 말해. “우리 부족에서 전사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전사 시험이 얼마나 공정하게 치러지는지 보지 않았는가? 뭐가 잘못인가?”

시험이 공정하면 사회도 공정할까

뭐가 잘못일까? 우선, 시험을 남자들만 치르는 게 불공평한 거 같아. 그런데 남녀 모두 시험을 치더라도 문제는 있어. 시험을 통과했다고 남의 자유나 재산을 빼앗는 특권을 허용하는 건 말이 안 돼. 시험 한 번으로 사람들의 처지가 극단적으로 불평등해지는 것도 문제야. 시험 내용이 반인권적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어, 갈고리로 몸을 매다는 거나 오래 달리는 능력이 대체 부족을 이끄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 수도 있지(물론 원로는 고통을 잘 견디는 능력이 지도력과 상관 있다고 답하겠지).

가상의 부족 이야기를 한 건 시험이란 놈을 좀 다르게 보자는 거야. 대부분 사회는 선망받는 지위나 권한에 이르는 과정에 시험이라는 선발 절차를 둬. 선발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는 건 어느 사회나 중요하지. 하지만 선발 절차가 공정하다고 그 사회가 항상 정의로운 건 아니야. 공정하게 관리되는 선발 절차 때문에 사회의 부정의가 정당화되기도 해. 선발 절차의 공정함은 공정한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야.

공정함이란 대체 뭘까? 공자님 말씀을 빌리면 이해하기 쉽겠다.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마라.” 간단히 말해 공정은 각자를 올바르게 대우하는 방식, 또는 그 방식의 기준이 되는 가치야. 그럼 각자를 어떻게 대우하는 게 올바를까?

우리의 본능적 도덕심은 두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해. 하나는 평등주의야. 누구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거지. 다른 하나는 비례주의야. 각자의 노력이나 기여에 비례해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거야. 두 원칙은 충돌하지 않아. 가령 시험을 치를 자격이나 시험 과정은 누구에게든 평등해야 해. 하지만 시험 결과는 실력에 비례해서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야겠지. 평등주의와 비례주의는 공정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고, 두 원칙을 가지고 공정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어.

하지만 두 원칙을 어떻게 얼마나 적용할지에 따라, 사안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도 있어. 모든 문제는 그것이 놓인 맥락에 따라 평등주의로도 비례주의로도 해석되는 ‘회색지대’를 갖고 있거든. 누군가는 평등주의 원칙으로 봐서 불공정하다고 분노하는 일을 다른 사람은 비례주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다고 여길 수 있어.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이고.

즉, 공정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어. 공정이란 평등주의와 비례주의라는 원칙을 붙잡고 열린 토론과 역지사지의 자세로 그 내용을 서로 합의해야 하는 가치야. 공정한 관계란, 내가 대우받고 싶은 방식을 남이 인정하고 반대로 남이 바라는 방식을 나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거야.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공정에 대해 토론하지 않고 공정을 선점하려고만 해. 자기에게 이로우면 공정하고 불리하면 불공정하다고 선언할 뿐 남들이 동의할지는 상관 안 하지.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공부한 의사’가 의료정책에 더 큰 결정권을 가져야 공정하다는 어느 의사 단체의 주장은, 공정함을 겨루는 시험이 있다면 꼴찌는 맡아놓았다고 해야겠지.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회원들이 2020년 4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잘리거나 무급휴직, 과로사 당하는 비정규직 증언대회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에 방진복을 입은 채 참석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회원들이 2020년 4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잘리거나 무급휴직, 과로사 당하는 비정규직 증언대회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에 방진복을 입은 채 참석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공정을 따지려면 장벽 먼저 치워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정을 둘러싼 뜨거운 이슈야.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부터 장기 근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직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 그런데 그 공공기관에 들어가려고 공채시험을 준비한 취업준비생들과 시험에 통과해 정직원이 된 이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나서. 공채시험을 보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건 특혜라는 거지. 능력에 따라 합리적 차등을 둬야 한다면서.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보다 현장 실무를 오래 한 직원이 없는데 무슨 능력을 더 검증해야 하느냐고 항의해. 같은 일을 하면서 대우는 다르게 받는 게 공정하냐면서. 이 문제에서 우리는 어떤 합의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출발점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으로 뻗는 직선을 하나 상상해봐. 직선에는 1부터 10까지 점이 찍혀 있어. 이 점들은 어느 회사의 직원들이 노력에 따라 받는 보상을 의미해. 1의 노력을 한 사람은 보상 1을, 10의 노력을 한 사람은 보상 10을 받아(10이 회사의 최고 보상 수준이라고 하자). 여기서 노력이란 그 일을 한 기간이라고 하자. 일한 기간이 길수록 보상도 커져. 이 직선에서 모든 직원은 동등한 규칙을 적용받고 노력한 만큼 다르게 보상을 받아. 평등주의로도 비례주의로도 공정해.

어느 날 회사는 공채시험을 도입해. 그리고 공채시험에 통과하는 사람은 보상 5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게 했어. 공채시험에 통과하기까지 들인 시간을 5의 노력으로 봐주기로 한 거지. 회사는 집중적으로 전문 지식을 습득한 사람을 공채시험으로 뽑아서 기업 생산성을 높이기 원해. 실제 공채시험으로 들어온 직원이 보상 1에서 출발한 직원과 협동하면서 기업 생산성이 올라갔고 덕분에 모든 직원이 전보다 넉넉히 급여를 받았어. 또한 공채시험을 치지 않고 보상 1에서 출발한 직원도 꾸준히 일하면 보상 5, 보상 6으로 나아가는 데 지장이 없어. 그렇다면 공채시험이 도입되더라도 이 회사는 공정한 상태라고 하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회사가 직원 일부를 ‘비정규직화’해. 특정 업무를 하는 직원을 주기적으로 해고했다 다시 고용하면서 같은 일을 계속 시키는 거지.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은 주로 이처럼 같은 업무를 오래 하면서도 정직원이 아닌 노동자야. 원래 공채시험은 그것을 통과하면 보상 5에서 시작하도록 해주는 제도일 뿐인데, 이제는 보상 1에서 시작한 노동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 5로 갈 수 없게 하는 장벽의 의미가 되었어. 비정규직은 기간이 되면 장벽에 부딪혀 해고되고, 재계약되면 다시 보상 1에서 시작해야 해. 노력은 보상받을 수 없어.

공채시험으로 정규직·비정규직 가를 순 없어

앞에서 보았듯, 공채시험을 통과하면 보상 5를 받는 건 동의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공채시험이 장벽이 되어 다른 사람의 노력이 보상받을 기회를 아예 차단한다면, 그것을 공채시험 통과에 따른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마치 전사 시험에 통과만 하면 누구하고든 결혼할 수 있고 남의 물건도 가져올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 공채시험이 정직원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장벽의 의미가 되면 평등과 비례의 원칙은 깨져.

이 장벽을 세운 건 공채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나 어렵게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아니야. 하지만 이 장벽을 세워 이익을 보는 자가 어딘가에 있어. 비정규직 직원에겐 노력한 만큼 보상을 주지 않고, 정직원과 비정규직을 서로 대립하게 하면서 말이지. 공채시험에서 장벽의 의미를 떼어내고, 누군가의 이익 때문에 세워놓은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공정함을 합의하기 위한 출발점이야. 정말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면 비정규직과 정직원의 차별을 없애야 해. 그런 다음 공채시험으로 들어온 직원은 더 높은 보상을 기대하게 해주고, 동시에 보상 1에서 시작한 직원도 자기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면 돼.

공정함을 따질 때는 경기장이 기울어져 있지 않은지, 경기장에 들어오는 문에서 차별은 없는지부터 판단해야 해. 사회의 배경 제도가 공정하지 않으면 그 안의 제도 하나하나만 떼어놓고 공정함을 이야기해봐야 의미가 없어. 경기장이 평평하지 않은데 오프사이드를 매의 눈으로 찾아내는 심판이 있다고 그 시합이 공정해질 수는 없잖아.

시험 관리는 공정함의 아주 작은 일부

공정함을 나한테 이익인가 손해인가 하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또 공정함을 시험이라는 선발 과정의 공정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지구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나 다름없어. 선발 과정을 잘 관리하는 것은 공정함이라는 커다란 사회정의 체계에서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해. 이를 인정하고,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함을 평등주의와 비례주의라는 도구를 이용해 치열하게 찾는 사람들의 사회, 그것이 공정한 사회의 모습이야. 그 시작은 ‘내가 아는 공정함이 정말 공정한가’라고 스스로 물어보는 거야. 

오준호 <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 저자·국회 비서관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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