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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차별’ 구제, 미국과 독일의 ‘차이’는?

미국법은 피해 구제하는 선택지 많아 혼란… 독일은 차별금지법 포괄적 통합
등록 2020-10-31 02:14 수정 2020-11-01 01:47
2018년 미국 필라델피아 시내의 스타벅스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 연합뉴스

2018년 미국 필라델피아 시내의 스타벅스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 연합뉴스

2017년 봄 ‘차별금지법 비교’를 주제로 한 세미나 수업에서 한 학생(Ms. Han)이 한국의 고용차별금지법에 관한 논문을 썼다. 헌법(제11조), 근로기준법(제6조), 고용정책기본법(제7조),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관련 법률이 무수히 많았다. 나는 ‘한국의 차별금지는 미국만큼이나 혼란스럽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법률이 많은데) 차별받은 피해자는 과연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자칫 ‘절차의 늪’에 빠질 수도

이는 미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미국 헌법은 1867년 모든 시민의 평등권을 보장하도록 개정됐다. 그러나 그 적용 범위는 국가가 저지른 행위로 한정하고 차별 종류에 따라 입증 기준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1960~70년대에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방지하는 많은 연방 차별금지법을 제도화했다(이 중 일부는 1991년 개정됐다). 인종, 성별(현재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 포함), 임신, 피부색, 국적, 연령(40살 이상), 장애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 차별 형태에 따라 적용 기준은 각각 조금씩 다르다. 이런 차별금지법들은 두 개의 연방기관을 통해, 중재 또는 민사소송으로 적용된다.

행정 조처를 활용해 차별금지 시정을 집행하는 다른 연방기관들과 더불어 연방정부와 업무 계약을 한 모든 민간 기업의 관행을 점검하는 연방기구들도 있다. 연방 법령이 정한 차별금지에 따르거나 이를 확대하는 주법들도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는 정치적 견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이를 위한 자체적인 집행 절차를 마련해뒀다. 반면 연방 법률은 정치적 관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지 않는다(연방 헌법은 정치적 관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할 수 있다).

미국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한에 따라 확대할 수 있는 각 지방정부의 인권법도 있다. 계약 위반이나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소송을 청구하는 일반법도 따로 있다. 이런 법들과 병행해 실업보험, 업무 중 상해 보험, 노사 협약이 정한 차별금지의 이행 등에 관한 행정적 시스템이 마련됐다.

어떤 면에선 이 모든 것이 미국법이 차별 피해자에게 폭넓은 구제책을 제공함을 뜻한다. 피해자는 다양한 관련 법을 활용할 수 있다. 체불임금 수령과 복직, 혹은 복직을 대신할 퇴직금 수령(고용계약 해지), 차별 피해로 인한 고통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징벌적 손해배상), 가해자의 행동 교정 명령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에는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여러 가지, 그리고 종종 상충되는 법적 구제책이 있는 탓에 차별 피해자는 구제받는 과정에서 법적·행정적 절차의 늪에 빠져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해고(또는 강제 퇴사)된 직원은 실업보험 청구를 권고받지만, 행정기관이나 법원에 직장 내 차별이나 괴롭힘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라는 조언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공소시효가 짧은 탓에 차별 피해자가 자신이 몰랐던 다른 구제책이 더 효과적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 수도 있다.

차별 피해자는 정신적 상처에 대한 노동자 보상 청구를 권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활용할 수 있는 구제책을 선택하는 경우, 때로 다른 대안들을 포기해야 한다. 일반인이나 노조 법률자문은 물론이고 변호사조차 수많은 구제책을 두고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모든 구제책에 대해 충분한 조언을 얻기란 쉽지 않다.

2020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 로이터

2020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 로이터

독일에선 통합법 덕분에 피해자 혼란 적어

다양한 형태로 헷갈리는 피해 구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 있을까? 있다. 독일을 보면 다른 접근법이 나온다. 독일의 차별금지법에도 많은 뿌리가 있다. 독일은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 협약’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 협약’ ‘장애인 권리에 관한 협약’ 등 자국 법률에 통합돼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국제 협약을 비준했다.

독일의 차별금지법은 유럽연합(EU)의 차별금지 협약과 지침에 규율된다. 유럽연합 법제는 다시 독일 국내법으로 뒷받침돼야 하며,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에서 집행된다. 일부 차별 사건을 다룰 권한이 있는 유럽인권협약의 적용도 받는데, 그 집행은 유럽 전체를 관할하는 유럽인권재판소를 통해 이뤄진다. 연방 차원의 차별금지법도 시행 중이다. 그러나 독일에선 다양한 차별금지법이 단 몇 개의 우산 아래 하나로 합쳐졌다. 차별금지법은 대부분 독일연방기본법(헌법), 일반평등대우법(2006년), 장애인보호법 등을 통해 시행된다. 독일연방의 각 주는 자체 법령으로 평등권을 확대할 수 있는데, 일부 주가 그러했다.

독일 차별금지법의 적용 범위나 법원의 해석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차별 피해자 구제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혼란은 훨씬 적다. 고용 차별은 전세계적 문제로 각 나라의 법적·사회적 환경에 따라 여러 형태를 취한다. 미국과 독일 모두 실질적인 법률과 그 적용에서 비판할 것이 많다. 그러나 독일의 차별금지법들이 대체로 통합된 덕분에 독일의 차별 피해자는 자신에게 적절한 구제책을 찾을 기회를 얻는 데 유리하다. 반면 미국의 차별 피해자는 활용 가능한 잠재적 구제책 가운데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데이비드 B. 오펜하이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데이비드 B. 오펜하이머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법학과 교수로, 버클리대 평등 및 차별금지법 비교연구 센터장을 맡고 있다. 가장 최근의 저서는 한국, 미국, 독일 등 전세계 ‘미투(Me Too) 운동’에 대해 작가 48명과 함께 쓴 <글로벌 #미투 운동>(2020년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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