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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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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헌법만으론 ‘평등 공동체’ 구현 못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다른 존재 부정하는 야만에 대항하기 위하여
등록 2020-08-01 15:49 수정 2020-08-05 14:21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이 다시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2020년 5월 출범한 제21대 국회에는 정의당이 주도하고 국회의원 10명이 참여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입법 추진을 권고한 뒤 14년 만이다. 그 이듬해 정부 입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을 시작으로, 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 여섯 번이나 발의와 폐기를 거듭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유력한 수단인데도 일부의 오해와 완강한 반발에 부닥쳐서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8.5% 나왔다. 인권법학회 소속 전문가들이 차별금지법이 한국 사회에 왜 필요한지, 어떤 변화를 이끌지 말한다. 매주 연재한다.

글 싣는 차례

① 헌법적 가치의 실현과 차별금지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1항) 1919년 임시헌장 이래 이 창대한 선언은 수시로 침탈되고 무시로 부정됐다. 우리가 우리 삶의 주체이며 그러한 우리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하게 국가 운영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구히 보장받는다는 이 100년의 약속이 그나마 우리의 일상으로 한 걸음 다가선 것은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선 우리의 큰 함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광장의 함성이 일상의 승리로 이어지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 하지만 그 촛불은 의연히 빛을 잃지 않아, 우리를 바라보지 않던 정치권력이 우리를 쳐다보게 했고, 우리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던 그들에게 우리를 향해 말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통치도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뚜렷이 각인해놓았다.

민주공화국은 자크 랑시에르의 말처럼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다. 그 누구의 말이라도 들려야 하며, 그 누구의 몸짓이라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서 자기 몫을 주장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과 평등한 구성원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은 이런 이념에 터 잡는다. 헌법이 전문에서부터 대한민국이 “우리 대한국민”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들”의 나라임을 선언함은 이런 연유에서다.

‘투명인간’이 존재하는 현실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평등법 시안은 민주공화국의 이런 지향에 바탕을 둔다. 그 안들은 누구든지 고용이나 교육,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그리고 행정서비스 영역에서 23개(정의당안) 혹은 21개(인권위 시안)의 사유로 차별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성별이나 장애, 나이, 성적 지향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 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공동체에 자기 자리를 가지고 그 자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임을 선언한다. 그래서 이 차별금지법은 헌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이자 동시에 민주공화국 헌법의 토대를 구성하는, 헌법의 출발점이 된다.

민주화 시대에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이미 췌사(쓸데없는 군더더기 말)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여야 한다”는 당위의 명제는 여전히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그 말 속에는, 어떤 사람은 공동체로부터 배제돼 있고, 어떤 사람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투명인간이며, 어떤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삶 자체가 박탈당하거나 박탈당할 항시적 위험 속에 살아간다는 지금 여기의 현실이 들어 있다. 차별금지법은 이를 겨냥한다. 그것은 23개 혹은 21개의 차별금지 사유에 대한 우리의 편견 혹은 사회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려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것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너로 인해 내 삶이 구성되고 너의 평등을 인정하기에 내 존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공동체의 기본 구성 원리를 꾸려낸다.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차별

대저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인권선언(1948년)이 말하듯,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래서 헌법은 모든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그 삶의 가치를 보장한다. 일상 영역에서는 각각의 사람이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삶이 자기 것인 만큼이나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아간다. 이런 생활상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이나 가치가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차이에도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공동체를 구성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헌법이 어느 누구도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개의 사람이 가지는 수많은 차이에도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또 최고의 가치를 가지며, 그렇게 동등한 사람들로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구성되어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정확하게 이 지점을 담아낸다. 차별금지법은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어떤 속성을 이유로 그 사람의 사람됨(혹은 나와 동일한 인간성을 가짐)을 부정하지 않도록 명령한다. 성별이나 연령이 다르다고 해서 혹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고 해서 또는 사회·경제적 지위나 고용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그를 생활관계에서 배제해버리거나 정죄해 배척하고 고립시키는 것을 금지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나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바로 그 다름으로 인해 당신의 삶이 가치 있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지시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나와 너를 달리 취급할 필요도 엄연히 존재한다. 종교 교육을 하는 교사직에는 그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이 우선 채용돼야 하며, 성별에 따른 화장실 분리는 사회 통념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 경우는 분명 차별이지만, 우리 헌법이 허용하는 차별이다. 달라서 다르게 취급하는 ‘합리적 차별’이기 때문이다. 반면 헌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차별도 있다. 합리적 기준도 없이 제 맘대로 차별하거나 그때그때 다른 기준을 갖다 대거나 옳지 않은 목적을 위해 차별하는 경우다. 헌법은 이를 ‘자의적 차별’이라 하면서 엄격히 금지한다. 그리고 이 둘-허용되는 합리적 차별과 금지되는 자의적 차별-을 구분하기 위해 헌법은 ‘자의 금지의 원칙’이니 ‘비례성 심사’니 하며 수많은, 그리고 충분히 세밀한 잣대를 개발해 엄정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은 바로 이 자의적 차별이다. 합리적 차별이라면, 헌법과 함께 차별금지법 또한 당신의 선택을 철저히 보호한다. 오로지 정당하고 합당한 이유도 없이 상대방 혹은 어떤 집단을 이 사회생활 관계에서 배제하거나 소외시키고 급기야는 그의 인간으로서 존엄성까지 부정하기에 이르는, 일종의 야만적 행동만이 차별금지법 적용 대상이다.

2017년 2월25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광장의 함성이 일상의 승리로 이어지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 사진공동취재단

2017년 2월25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광장의 함성이 일상의 승리로 이어지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 사진공동취재단


‘설교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오해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를 내놓는다. 하지만 우리 법제는 그리 만만하지 않아 대부분은 쉽사리 해결된다. 차별금지법은 그 법 하나만이 고립무원으로 홀로 서 있는 게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양성평등법, 고용평등법 등 다양한 개별법이 차별금지법 시행 과정에서 자칫 나올지 모르는 과잉 규율이나 흠결을 보완한다. 그 법 적용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칙은 헌법과 법의 일반 원칙이 담당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근대 법체계가 들어온 이래 100여 년에 걸쳐 쌓아올린 법리의 틀은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교회에서 설교도 맘대로 못한다”는 식의 오해를 제대로 털어버리기에 충분한 판단기준을 제공한다. 사실 설교는 차별금지 영역에 해당하지 않아 차별금지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일부 종교 분파에서 양산하는 차별금지법 오남용 사례는 바로 이 점에서 헛된 기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또 다른 질문이 뒤따른다. 헌법이나 개별법으로 충분할 듯한데 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 헌법은 스스로 집행되지 않는다. 헌법은 자신을 구체화하는 법률을 매개해 그 기본 가치를 실현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신의 자유는 그것을 구체화하는 형사소송법을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추구하는 평등 원칙을 구체화해 현실에 집행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차별금지법이 세간의 모든 일을 전부 규율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법적 규율이 가장 절실한, 필요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만 차별을 금지한다. 고용이나 교육, 재화·용역 제공, 행정서비스 등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그리고 자의적인 차별이 수시로 생겼던 4개 영역에서만 작용한다. 아울러 그것은 이런 영역에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이 기존 개별법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사유를 차별금지 사유로 편입시켜 평등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 한다.

요컨대, 차별금지법은 결코 잉여의 법이거나 옥상옥의 법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과 개별법의 중간지대에 자리해, 우리가 항시적으로 차별 현실에 직면하는 바로 그 영역에서 우리 삶을 수시로 침탈하는 바로 그 편견을 정면으로 다뤄 치유하려는 기본법이다.

인간됨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독일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에 의하면 법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를 위해 국가뿐 아니라 모든 개개인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부단하게 법을 호출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스스로의 인간됨을 재확인하는 그 노력의 과정을 통해 국가공동체가 운영된다. 민주공화국의 요체는 여기서 이루어진다. 누구도 헌법 보호에서 배제되지 않고, 헌법을 통해 모든 사람이 그 인간됨을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우리 대한국민”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일상의 삶 속에 실천하고 나날이 재구성하는 모두의 노력 속에서 헌법은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로서 민주공화국을 정초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헌법정신을 구체적인 생활현장에서 실천하는,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의 명령으로 자리한다. 우리는 지난날 광장에 나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목놓아 외쳤다. 바로 그 “우리들”의 나라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차별금지법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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