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차별금지법 국회 발의만 13년째…이번엔 통과할 수 있을까

등록 2020-09-26 03:20 수정 2020-09-27 01:16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지금껏 대한민국 국회에서 찬밥 신세였다. 국회 회의록시스템을 보면,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에 8차례(의원입법 7번, 정부입법 1번) 제안됐다. 그중 5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나머지 2번은 철회됐다. 철회한 한 의원은 그 이유에 대해 “대형 교회에서 많은 항의가 들어왔다. 공동발의한 의원들까지 큰 반대에 부딪혔다”고 언론에 토로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것은 4번. 하지만 법사위에서 의원들이 논의한 횟수는 놀랍게도 ‘0’. 17대 국회 때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정부가 각각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2008년 2월12일 법사위에 상정됐다. 이날 정부의 제안 설명만 있었을 뿐 의원들은 토론하지 않았다. 이후 법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2013년 2월19일 법사위에 상정됐다. 하지만 이때는 제안 설명도 없었고, 이후 임기 만료로 사라졌다.

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020년 6월29일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고, 하루 뒤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발표하며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권고했다. 장혜영 법안은 9월21일 법사위에 상정됐다. 역대 네 번째 법사위 상정이다.

21대 국회에선 다를까. <한겨레21>이 실시한 차별금지법 관련 법사위원 18명 전수 설문조사에 단 3명(17%)만 응답했다. 차별금지법이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21대 국회 법사위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다뤄진다면 최초의 논의가 된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_편집자주

2020년 출범한 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재발의돼, 9월21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에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겨우 10명이 서명했다. 공동 발의한 의원을 당적별로 보면 정의당 6명, 더불어민주당 2명, 열린민주당 1명, 기본소득당 1명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뺀 9명이 초선 의원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정치인들이 적어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유난히 몸을 사리는 ‘불편한 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앞서 2007년 12월 노무현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을 제출했으나, 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그 뒤 17~19대 국회(2008~2016년)에서도 여섯 차례나 의원 입법이 시도됐지만 모두 국회 임기 만료나 법안 철회로 이렇다 할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법안 발의조차 없었다.

특히 법안의 자진 철회는 특정 집단의 조직적인 반대와 압박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대 국회 때인 2013년 2월 차별금지법안이 연거푸 2건이나 발의됐지만, 둘 다 2개월 만에 의원들이 법안을 거둬들였다. 바로 이 기간(2013년 3~4월)에 국회 누리집 ‘국민 제안’ 게시판에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절대) 반대”를 외치는 글이 1043건이나 올라왔다. 2006년 1월부터 2020년 9월 현재까지 14년 동안 게시판에 올라온 ‘차별금지법 반대’ 의견(전체 1146건)의 91%가 불과 두 달 새 집중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국민 전체의 의견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응답자의 대다수인 88.5%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3월 같은 조사 때 ‘찬성’ 의견 72.9%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된 13년 동안, 사회 곳곳에서 차별의 구실과 유형이 더 다양해지고 때론 모호하게 세분화하고 있다. 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행위’의 범주가 점점 더 촘촘해지는 이유다. 2007년 정부 법안에선 13가지이던 차별 이유가 2020년 정의당 법안에선 23가지로 늘어났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다음날인 6월30일, 국가인권위원회도 14년 만에 다시 ‘평등법 시안’을 발표하고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2006년 첫 권고 당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차별 문제가 있는지 살피고, 변화된 사회 현실과 인식을 반영해” 미흡한 부분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정의당 법안이 최근 국회의 ‘입법 수문장’ 격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정식 상정된 것도 주목된다. 이번 국회에선 차별금지법이 일부의 거센 반대 의견과 국회의 복잡한 입법 절차를 통과해 제정될 수 있을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