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지금껏 대한민국 국회에서 찬밥 신세였다. 국회 회의록시스템을 보면,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에 8차례(의원입법 7번, 정부입법 1번) 제안됐다. 그중 5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나머지 2번은 철회됐다. 철회한 한 의원은 그 이유에 대해 “대형 교회에서 많은 항의가 들어왔다. 공동발의한 의원들까지 큰 반대에 부딪혔다”고 언론에 토로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것은 4번. 하지만 법사위에서 의원들이 논의한 횟수는 놀랍게도 ‘0’. 17대 국회 때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정부가 각각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2008년 2월12일 법사위에 상정됐다. 이날 정부의 제안 설명만 있었을 뿐 의원들은 토론하지 않았다. 이후 법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2013년 2월19일 법사위에 상정됐다. 하지만 이때는 제안 설명도 없었고, 이후 임기 만료로 사라졌다.
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020년 6월29일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고, 하루 뒤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발표하며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권고했다. 장혜영 법안은 9월21일 법사위에 상정됐다. 역대 네 번째 법사위 상정이다.
21대 국회에선 다를까. <한겨레21>이 실시한 차별금지법 관련 법사위원 18명 전수 설문조사에 단 3명(17%)만 응답했다. 차별금지법이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21대 국회 법사위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다뤄진다면 최초의 논의가 된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_편집자주
“2008년 5월29일(17대 국회 종료일), 2012년 5월29일(18대 국회 종료일) 그리고 2016년 5월29일(19대 국회 종료일). 모두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 폐기’된 날짜입니다. 2013년 4월24일. 발의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발의 법안이 반대 여론에 못 이겨 ‘철회’된 날짜입니다.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변해야 할 국회가 써내려온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 5대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선정하고, 2020년 6월14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문은 차별금지법 발의 실패의 역사를 언급하며 시작됐다. 가장 최근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은 2013년. 쏟아지는 반대를 견디지 못한 의원들의 철회 이후, 7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논의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6월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
7년 전 상황을 기억했기에, 발의를 준비하며 의원실 구성원 모두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21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 접한 반대 세력의 항의는 예상보다 더 강했다. 9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법안이 상정됐다. 발의에서 상정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반대 세력의 항의는 다시 법사위로 향한다. 이들은 왜 법안 논의조차 막으려는 것일까. 6월부터의 기록을 공유하며 반대 세력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6월17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 공동발의 참여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서두도 없이, 다짜고짜 묻는다. “민주시민교육인지 뭔지 하는 법안, 발의하셨죠? 그런 법을 왜 만드는 겁니까?” “네, 선생님. 남인순 의원님이 발의하신 법안인데요, 취지에 동의해서 공동발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국가인데 민주교육이 뭐가 필요해요? ‘성인지’ ‘성평등’이라는 어려운 말로 포장해서 차별금지법까지 이어가려는 거잖아요. 아이들한테 젠더 이념 같은 걸 가르치면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에이즈가 확산되는데, 그런 걸 왜 가르쳐야 합니까. 가정 파괴하려는 법 반대합니다.”
차별금지법 발의 일자도 공개되기 전이었는데, ‘성평등’ ‘성적 지향’ 등의 단어가 들어가는 조례나 법안이 발의되면 귀신같이 알고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맘카페나 보수 기독교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하지만 민주시민법까지 차별금지법으로 이어갈 줄이야. 벌써 시작됐구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6월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데스노트’가 돌기 시작했다. 대형 교회 단체대화방이 출처라고 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우리의 사랑으로, 빛으로 어둠을 이깁시다!’라는 제목 아래, 발의 의원들의 이름과 의원실 전화번호, 의원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목록. ‘대표발의자 장혜영’의 이름은 자랑스럽게 가장 위에 적혀 있었다. 사랑과 빛으로 어둠을 이기자니, 그래도 이제 ‘동성애는 죄악이다’ 같은 원색적인 혐오 발언을 뱉는 게 나쁘다는 걸 아는 단계까지는 온 건가.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6월25일
당에서 이주민, 난민 당사자, 활동가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간담회를 열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비공개 간담회였으나, 혹시 모를 충돌 상황에 대비해 국회 방호과에 지원 요청까지 마쳤다. 의원님 휴대전화로 유튜브 라이브 중계를 하는데, 쉴 새 없이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끊고 끊고 끊어도 계속해서 왔다. SNS 팔로어 수백만을 보유한 연예인 간접 체험을 이렇게 해보는구나 싶었다.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제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발의 의원 연락처 명단이 돌았다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결국 중계는 중간에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6월26일
오전 9시,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의원실 전화가 울린다. 오늘은 한 시간 동안 거의 스무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의원실의 보좌진은 나를 포함해 총 9명. 9명 모두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를 끊기 무섭게 다시 벨이 울린다. 오전 시간에만 수백 통의 전화가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사실 전화를 여러 통 받는 게 정신적 소모는 덜하다. “안녕하세요, ○○시에 사는 20대 청년입니다. 차별금지법 반대합니다.” 이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는 전화는 오히려 반갑다. 길게는 40분씩 이어지는 통화도 자주 있다. 사실 ‘통화’라기보다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이야기를 견뎌내는 거다. 나라를 망치는 법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다, 역차별이다, 더러운 동성애자들, 어떻게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할 수 있냐, 좌파 독재를 합법화하려는 거다, 사람 성별이 남녀 말고 더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의원실 동료들끼리 ‘30분 넘는 전화 받고 나면 영양제 하나씩 먹기’라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6월29일
드디어 법안 발의의 날.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의안과에 법안 제출까지 마쳤다. 국회 누리집 의안정보시스템에 ‘차별금지법안’을 수차례 검색해보고 나서야 좀 실감이 났다. 아, 드디어 진짜 발의했구나. 발의를 막기 위해 지난주에 총력을 다해 전화했던 것인지, 오히려 전화가 오는 빈도는 조금 뜸해졌다. 최소한 업무를 못할 만큼 전화가 마비되지는 않는 정도. 하지만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지.
7월2일
의원실 동료들의 목소리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보좌관님이 특단의 조처를 내렸다. “그냥 괴롭히려는 전화들인데, 대응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업무에도 지장이 많으니 전화선을 끊읍시다.” 그래도 아예 전화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비서님의 개인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을 해두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쌓였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 지향성, 사회적 상황에 의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명제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7월6일
팩스도 함께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복합기에 쌓여 있는 팩스 20여 장을 정리한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텍스트로 혐오 발언을 접할 때면 또 새롭다. “차별금지법 반대합니다!” 강렬한 한 문장으로 구성된 팩스부터, 자신이 이 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 팩스까지 다양하다. “기계성애, 시체성애, 소아성애, 수간까지 합법화하는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현대판 노예통치가 이루어진다” 등등. 차별금지법이 그만큼 영향력을 가진 법안이란 사실은 저희도 처음 알았습니다만….
7월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에 올라온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에 대한 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위원회로 회부됐다. “동성애를 조장하여 건강한 가정을 해체하고, 헌법을 위반하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건강한 미래를 파괴한다.” 청원의 사유다.
출퇴근 시간, 국회 정문 앞에서 팻말을 들고 목소리 높여 1인시위를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정상인 역차별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동성애 조장하는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아야 한다…. 정상인, 건강가정, 자유, 미래. 당신들이 정의하는 ‘정상’은 무엇이고 ‘건강’은 무엇인지. 그 자유와 미래를 누리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건지. 온종일 시달리다 지쳐 퇴근하는 길, 이유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국회 문을 나서게 된다.
7월13일
이제 수화기를 들기만 해도 어떤 말이 나올지 머릿속으로 자동 재생되는 수준이 됐다. “게이들이 문란한 성관계를 해서 에이즈가 확산되는 거잖아요. 에이즈 치료비를 국가에서 다 대주는데, 자기들이 실컷 즐기고 쾌락 추구해서 걸린 병인데 왜 국가에서 치료비를 주냐고요. 이거 세금 낭비고 역차별 아닌가요?” “선생님, 에이즈는 성관계로만 전염되는 병이 아니고, 성소수자들의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것은 그들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안전한 성관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그런 부분이 개선되면 에이즈 감염률도 낮아지겠죠.” 그럼 이제 다음 차례.
“지금은 그런 조항이 없더라도 나중에 다 개정해서 동성애, 동성혼, 수간, 소아성애 합법화할 거잖아요. 저희가 모르는 줄 아세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동성애 하라고 가르치고, 항문성교 구강성교 가르치는 거, 아이 셋 키우는 엄마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이미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나라들이 엄청 부작용을 겪는 거 모르세요? 뉴욕에서는 31가지의 젠더를 인정하고, 그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감옥에 보낸대요. 캐나다에서는 자녀가 트랜스젠더인 걸 인정 안 했다고 부모가 양육권을 박탈당했잖아요.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고, 나라를 파괴하고….” 수도 없이 들어 이제 달달 외울 정도인 가짜뉴스들.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내 답변이 아니기에, 나에게 발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지금 차별받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동성애자가 무슨 차별을 받아요. 자기들끼리 즐길 거 다 즐기고 문란하게 살잖아요. 서울시청 한복판에서 음란 퀴어 축제 매년 하고. 오히려 제가 이런 말 하면 잡혀가게 되잖아요. 이렇게 역차별을 당하는데! 그리고 당신은 아들이 남자 며느리 데려오면 좋겠어요?”
남자 며느리… 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다니.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사람이 수없이 존재하는데. 당신과 전화하는 이 사람이 퀴어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겠지요.
7월22일
위협적인 말투로 이름과 직함을 요구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아마 내가 ‘어린 여성’의 목소리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오기가 생겨 답하지 않는다. “답 안 하세요? 이거 녹음 중이에요. 말 안 해주면 끝까지 쫓아가서 알아낼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실제로, 유튜브에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에 참여한 다른 의원실 보좌진과의 통화를 녹음해 올린 영상이 돌고 있었다.
“의원이랑 통화하고 싶은데, 의원 바꾸세요.” “선생님, 지금 의원님이 외부 일정 때문에 자리에 안 계신데요. 전달하고 싶으신 내용 말씀해주시면 전달하겠습니다.” “비서예요?” “네, 비서입니다.” “동성애 찬성해요?” “찬성과 반대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지향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게 차별금지법의 내용이고요.” “그럼 당신 엄마랑도 성관계하지그래.” “선생님… 방금 하신 말씀은 성희롱입니다.” “보좌관 바꿔, 남자. 어린 여자랑 통화하려니까 말이 안 통하네, ××.” 이런 말은 싹 편집한 채로 말이다. 녹음 기능이 없는 의원실 전화기가 원망스러웠다.
2020년 여름, 가장 ‘뜨거웠던’ 장혜영 의원실의 한 달여 기록이다. 8월로 접어들면서 쉴 새 없이 걸려오던 전화는 뜸해졌다. 정의당과 장혜영 의원실은 여러 콘텐츠를 만들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차별의 당사자와 종교계 인사를 만나고, 토론회와 간담회를 열며 이후 두 달을 보냈다.
이유 없는 욕설이나 성희롱성 발언, 원색적인 혐오 발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는다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화벨 소리만 울리면, 새로운 전자우편이 왔다는 알림이 뜨면 심장이 뛰었다. 길을 걷다 누군가를 마주치면, 저 사람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진 않을까 수없이 생각했다.
거센 반발에 부딪힐수록 의지는 더 강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신들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고, 행복하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한 걸음 내딛고야 말 거라고. 그리고, 그냥 무시해버리고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 사람들의 생각을, 내가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세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었다. 세상의 변화는 이런 작은 균열에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혐오는 쉽다. 하지만 거기에 맞서는 것은 어렵다. 나는 혐오와 조롱에 대항하는, 사랑과 연대의 언어가 가진 힘을 믿는다. 많은 사람이 각자 자리에서 어렵게 분투해왔음을, 그리고 지금도 여러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음을 안다. 그 마음들이 모여, 2020년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해’가 될 수 있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장태린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비서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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