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가권력의 세 축인 입법·행정·사법부 가운데 국민들이 가장 멀다고 느끼는 건 어디일까?
아마도 대다수는 사법부를 꼽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접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정부와 각 정당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일처럼 중요한 뉴스로 다뤄지지만, 사법부와 관련해서는 보도 건수도 적을뿐더러 “~한 판결이 내려졌다”라는 단신성 뉴스가 대부분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표자들이 선거라는 국민과의 직접적인 대면 속에서 선출되는 반면, 법원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이런 거리감을 크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입법부나 행정부의 그것 못지않게 평범한 국민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판결을 통해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부문의 분쟁은 결국 법원으로 귀속되고, 여기에서 판결이 내려지면 ‘의견’이나 ‘주장’이 ‘규범’으로 자리매김된다. 실제 지은 죄가 아무리 많아도 법원에서 ‘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하면 자유의 몸이 되지만, 아무리 본인이 떳떳해도 법원에서 유죄로 판단하면 차가운 교도소에 갇히게 된다.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법원이 판례를 통해 만든 기준을 벗어나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나 규제를 받게 된다. 입법부나 행정부의 행보 또한 재판의 대상이다. 국회가 만든 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한갓 종잇장으로 변하기도 하고, 행정부의 법 집행을 무효화하는 판결도 나온다. 법치주의가 강화되는 한편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정치가 표류하면서 사법부의 구실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은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송년호에서 ‘올해의 판결’을 선정해 소개하기로 했다. 그저 남의 일 같고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판결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은 그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를 밝게 비추고 좀더 나은 사회를 앞당기는 데 기여한 좋은 판결들을 골라봤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우리사회는 이들 판결의 보폭만큼 진전한 셈이다.
판결 선정을 위해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를 포괄하는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회를 꾸렸다. 학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법 권위자인 윤진수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으로 참여했고, 헌법학회와 공법학회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종수 연세대 교수,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과 관련해 각종 법률구조 활동을 펼쳐온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법조계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추천을 받아 위원을 위촉했다. 대한변협 인권위원이자 군법무관들의 군대 내 ‘불온서적 23선’ 헌법소원을 진행하고 있는 최강욱 변호사, 민변 민생경제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남근 변호사, 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했던 검사 출신의 금태섭 변호사, 판사 출신으로 부동산과 금융관련 소송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영주 변호사, 노동사건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한 김진 변호사 등이 참여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비법조인 가운데서는 대표적 인권활동가이자 검·경 수사권조정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과 수년 전부터 법원 모니터링 활동을 벌여온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이 참여해 어려운 작업을 함께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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