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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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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올해의 판결] 난민 지위로 가는 문턱을 낮추다


대법원의 난민 지위 인정 판결…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의 증명 책임을 완화해
등록 2008-12-26 08:23 수정 2020-05-02 19:25

‘명사.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국립국어원 누리집은 ‘용기’를 이렇게 풀이한다. 해마다 세계 난민의 날(6월20일)이 되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을 비롯한 난민지원 단체들이 준비한 각종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내걸린다. 포스터에는 온갖 역경을 ‘씩씩하고 굳센 기운’으로 이겨낸 전세계 난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무한 폭력의 광기를 피해,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마침내 국경을 넘은 난민들의 표정에선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가 느껴진다. 그래서 흔히들 말한다. ‘난민이 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기억하세요, 그들도 우리처럼.’ 지난 6월20일 오후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 덕수궁 앞에서 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 노승혁

‘기억하세요, 그들도 우리처럼.’ 지난 6월20일 오후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 덕수궁 앞에서 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 노승혁

틀렸다. ‘용기’만으로 난민이 될 순 없다. ‘난민’은 국제법이 부여하는 ‘지위’다.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해서 ‘난민’이 되는 데는 때로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한다. 법무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 1994년부터 올 11월 말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모두 213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1명에게만 난민 지위가 허용됐다. 국가인권위의 연구용역을 받아 법무법인 소명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이 참여해 작성한 ‘2008 난민인권실태조사 보고서’ 내용을 보면, 응답자 4명 중 1명꼴(24.2%)로 “난민신청서를 접수한 지 1년이 넘었으나 아직 심사관과 면담조차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케냐·두바이·방콕 거쳐 무작정 한국으로

여기 에레쎄 롬보토 나르씨스(40·가명)가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이하 콩고)의 수도 킨샤사 출신인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콩고 땅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투쟁적’이라는 아르미 드 빅투와르 교회에서 청년회장을 맡을 정도로 교회 일에 열심이었다. 1997년 5월 모부투 세세 세코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반군 지도자 출신인 로랑 카빌라가 정권을 잡은 뒤에도 콩고의 내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이내 또 다른 내전이 불을 뿜어내면서, 폭력의 악귀는 콩고의 비옥한 땅을 피로 적셨다.

이 무렵 나르씨스는 예배 설교와 집회 연설 등을 통해 ‘징집 거부’와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콩고에서 당시 총을 드는 것은 약탈과 살인, 소년병 강제 모집과 성폭행에 가담하는 것을 뜻했다. 나르씨스는 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행동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1999년 9월1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나르씨스는 일행 10여 명과 함께 정부군에 체포됐다. 매를 맞고, 투옥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절망의 한가운데서 그를 빼내준 것은 교회 신도들이었다.

야만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르씨스는 그해 10월7일 킨샤사 공항에서 국제선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1차 행선지는 케냐였지만,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1998년 결혼한 아내(29)는 함께하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타이의 방콕으로, 만 이틀에 걸쳐 기나긴 여정을 이은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낯설고 물선 땅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흘러흘러 충북 제천의 양계장에서 닭을 잡았다.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12월6일 불법체류자 일제 단속에 걸려들었다.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로 옮겨진 그는 이듬해 11월27일 난민지원단체의 도움으로 법무부에 난민지위인정신청서를 냈다. 법무부가 ‘불허’ 판정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 2년 반가량이 지난 2003년 5월, 이의신청을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2006년 1월26일 서울행정법원 12부(재판장 조해현, 배석판사 박순영·신상렬)는 나르씨스를 포함한 7명이 제출한 난민인정불허결정취소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치적 표현행위로 인한 박해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에서 이루어진 작은 ‘기적’

핵심은 ‘박해 가능성’이었다. 난민협약 제1조는 난민이 되기 위해선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증을 해야 하는 책임은 나르씨스에게 부과됐다. 무엇보다 ‘충분한’이란 말이 중요했다. 목숨을 걸고 허위허위 떠나온 길이다. 증거 자료가 있을 리 없다. 무엇으로 ‘충분함’을 채울 것인가? 모든 난민 신청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최근 방한했던 로저 하인스 뉴질랜드 난민지위항소법원 부원장의 말을 따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방 안에 남녀 각 10명씩 20명이 있다고 하자. 그 방으로 갑자기 무장 괴한이 들이닥친다. 괴한은 무작위로 남녀 각 1명씩을 죽이겠다고 말한다. 그러곤 남성들을 1명씩 차례로 끌어내 ‘키가 너무 크다’느니, ‘머리 모양이 맘에 안 든다’느니 하며 트집을 잡다가 1명을 죽였다고 하자. 방 안에 있는 여성 10명 중 1명이 다음 차례다. 통계적으로 여성들이 끌려나가 죽을 확률은 각각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100%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난민이 처한 상황이 딱 이렇다. 박해를 당할 가능성이 10%만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항소했다. 2심부터 나르씨스 변호를 맡은 김종철 변호사는 “난민협약상 ‘박해’는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위엄’을 침해·차별하는 것”이라며 “1심 재판부는 ‘박해’를 ‘생명 또는 신체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좁게 해석했다”고 강조했다. 1년여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서울고법 8특별부(재판장 최병덕, 배석판사 여미숙·김정욱)는 2007년 1월19일 나르씨스의 손을 들어줬다. 작은 ‘기적’이었다. 물론 끝은 아니었다. 법무부는 고법의 판결에 불복해 항고했다. 기다림은 계속됐다.

그리고 2008년 7월24일 최종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대법원 3부(재판장 김영란)는 판결문에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은 난민 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하여야 할 것이나, 난민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그 외국인에게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주장 사실 전체를 증명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며 “진술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정도, (난민) 신청인이 거주하던 지역의 통상인이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의 정도 등에 비춰 전체적인 진술의 신빙성에 의해 그 주장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판시했다. 난민 신청자의 박해 가능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대폭 경감해준 게다.

“콩고에 관심을 가져달라”

입국한 지 8년9개월여, 난민신청서 제출 시점부터만 따져도 7년8개월여 만이다. 콩고인 에레쎄 롬보토 나르씨스는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난민’이 됐다. 그 세월 동안 나르씨스는 헤어졌던 부인과 상봉했고, 한국 안산 땅에 정착했다. 2005년과 2007년엔 각각 딸과 아들이 태어났다. “난민으로 인정된 뒤 의료보험이 된다. 아이들이 아프면 더럭 겁부터 났는데, 정말 다행이다.”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했던가. 자동차 업계의 불황으로 나르씨스가 3년여 다니던 타이어 공장이 최근 문을 닫았다. 생계는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뾰족한 대책은 없다. 나르씨스는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콩고는… 지금도 문제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멀고, 울음소리만 넘쳐난다. 관심을 가져달라. 많이 알려달라. 그게 콩고 사람들을 돕는 길이다.”


■ 심사위원 20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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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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