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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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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올해의 판결] 불법파견자도 직접 고용하라


대법원 “2년 이상 근무일 땐 직접고용 대상”…
3년간의 4전5기, 이경수·김미주씨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
등록 2008-12-26 08:48 수정 2020-05-02 19:25

이경수(30)씨와 김미주(29)씨는 입사 동기다. 이씨가 22살, 김씨가 21살이던 2000년 4월3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예스코(당시 이름 극동도시가스)로 첫 출근을 함께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얻은 첫 직장이었다. 영업관리팀에 배치된 이들은 고객지원센터 창구에서 도시가스 공급과 관련한 각종 질의나 민원을 접수·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체납된 가스요금을 받거나 공사비를 수납하기도 했다. 접수된 민원을 해당 업무 담당자에게 연결해주거나 각종 우편물 정리, 문서 수발 등의 업무도 막내 여직원이던 이들의 몫이었다.

불법파견자도 직접 고용하라.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불법파견자도 직접 고용하라.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파견 2년, 도급 20개월, 계약직 2년 뒤…

하지만 이씨와 김씨는 다른 직원들과는 신분이 달랐다. 이들의 법적인 사용주는 진방템프그룹. 예스코와 ‘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 파견계약을 맺은 파견업체였다. 당시 이씨와 김씨를 포함해 10명가량이 진방템프에서 파견돼왔다. 물론 서류상 그렇게 돼 있을 뿐, 이들에 대한 일상적인 업무 감독과 휴가 승인, 근태 관리, 근무 평가 등은 모두 예스코의 몫이었다.

예스코에 근무한 지 정확히 2년을 채운 2002년 4월3일, 이씨와 김씨는 소속사가 바뀌었다. 두레비에스피. 또 다른 파견업체였다. 예스코는 진방템프와의 파견계약을 끝내고, 이번엔 두레비에스피와 업무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이 또한 서류상 변화일 뿐, 이씨와 김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보며 같은 상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20개월가량이 흐른 뒤인 2003년 12월, 이씨와 김씨는 이번엔 무소속(?)이 됐다. 회사가 이들과 직접 고용계약을 맺은 것이다. 1년 기간의 계약직 사원이었다. 물론 맡은 일은 그대로였다. 1년 뒤인 2004년 11월 회사는 1년 계약을 갱신해줬다.

또다시 1년가량이 흐른 2005년 10월25일, 이씨와 김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가 재계약이 종료되는 11월30일부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여직원 5명도 함께 해고 통보를 받았다. 파견(2년)에서 도급(20개월), 계약직(2년)을 거치며 6년 가까이 정을 쌓은 직장인 만큼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풀뿌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일단 정규직 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임기를 두 달 남기고 있던 조구일 노조위원장이 발 벗고 나섰다. 회사 쪽에 이번 조처의 부당함을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조 위원장은 이씨·김씨와 함께 노조 자문 계약을 맺고 있던 민주노무법인 이혜수 노무사를 찾아갔다. 전후 사정을 파악한 이 노무사는 “2년 파견 뒤 위장 도급을 통해 불법 파견을 이어갔으므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을 안심시켰다.

이 노무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서 파견 가능 업종을 건물 청소원, 자동차 운전원, 비서·타자원 등 26개 직종으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와 김씨가 실제 수행한 업무는 이들 직종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또한 두레비에스피와 2002년 4월에 맺은 계약도 ‘위장 도급’이 명백했다. 다른 직원들과 섞여 일하는 형태가 유지된 만큼 도급 대상이 아닐뿐더러, 업무는 그대로 놔두고 계약만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파견법 6조 3항은 “사용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되는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었다(직접고용간주 규정). 결국 2년 이상 이씨와 김씨를 불법파견 형태로 근무시킨 회사 쪽에 직접고용이라는 법적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의 주장은 달랐다. 적법한 도급 계약이었으며, 2003년 말부터 1년 단위로 2년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한 것이 직접 고용계약의 전부인 만큼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 쪽에서는 이와 함께 해고된 여직원들의 회유 작업에도 나섰다. 결국 이씨와 김씨를 제외한 계약직 여직원 5명은 회사로부터 500만원씩을 받는 대신에 회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기로 했다.

2002년 판결 뒤 ‘직접고용 배제’ 관례화

‘다른 길’을 고집한 이씨와 김씨의 앞길이 순탄할 리 없었다. 당시 이씨와 김씨를 대리한 이혜수 노무사는 “돈을 받고 회사를 떠나기로 한 이들이 ‘회사에서 7명 모두 각서를 써야 500만원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너희 때문에 못 받을 수도 있다’라며 이씨와 김씨를 몰아붙였다”며 “이 일로 이씨와 김씨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씨와 김씨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회사는 결국 5명에게만 500만원씩을 지급하고 일을 마무리했다. 물론 김씨와 이씨에 대한 해고 방침도 여전했다. 이씨와 김씨는 결국 서울지방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조구일 위원장의 배려로 노무사 선임 비용은 노조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노동청(공익위원 김성진·정진철·최연희)은 2006년 2월12일 “직접 사용종속 관계가 성립된 것은 최초 계약 성립일인 2003년 12월1일인 점 등에 비춰 ‘2년 경과시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이혜수 노무사는 “사실 우리 쪽이 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막상 결과가 그렇게 나와, 이씨와 김씨에게 매우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경수(왼쪽사진 맨 오른쪽)씨와 김미주(왼쪽사진 맨 왼쪽)씨는 꼬박 3년 동안 법적 투쟁을 진행한 끝에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씨와 김씨 사이에 있는 사람은 개인돈으로 변호사 비용을 대는 등 이씨와 김씨를 도와온 조구일 전 예스코 노조위원장(조구일 제공). 서울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서 이씨와 김씨를 변론한 이혜수 노무사(현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보좌관).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이경수(왼쪽사진 맨 오른쪽)씨와 김미주(왼쪽사진 맨 왼쪽)씨는 꼬박 3년 동안 법적 투쟁을 진행한 끝에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씨와 김씨 사이에 있는 사람은 개인돈으로 변호사 비용을 대는 등 이씨와 김씨를 도와온 조구일 전 예스코 노조위원장(조구일 제공). 서울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서 이씨와 김씨를 변론한 이혜수 노무사(현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보좌관).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이씨와 김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22일 중앙노동위(공익위원 고흥소·임종률·안영수)는 “이씨와 김씨의 파견근로는 불법 파견근로에 해당하여 직접고용간주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적법한 파견이었다면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되지만,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법 적용이 안된다는 논리였다. 불법파견이 인정되고도, 바로 그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기막힌 상황에 부딪친 것이다.

이씨와 김씨는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평범한 직원으로 되돌아온 조구일씨와 함께 민주노동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를 찾아갔다. “이씨와 김씨 모두 노조 활동을 오래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여성들로만 보였다.” 권 변호사는 “파견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판단돼 사건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곧 서울중앙지법에 중앙노동위의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년 넘게 벌이가 없던 이씨와 김씨가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조씨가 사비를 털어 변호인 비용과 인지대 등을 댔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았다. 불법파견은 직접고용 간주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이미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 노동사건 판례 흐름을 꾸준히 공부해온 한 부장판사는 “1988년 파견법이 처음 제정됐을 때는 불법파견이 직접고용 간주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발상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파견이 일반화되고 2년 넘게 파견 근무한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사용자 쪽을 대리하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합법 파견만 직접고용 간주 규정 적용 대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며 “2002년 서울행정법원에서 처음으로 이같은 판결을 내린 뒤 거의 대부분의 1·2심 재판부가 이 판례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그사이 국회에서도 직접고용 간주 규정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국회는 결국 불법파견도 2년 이상 고용 땐 원청 사업자의 직접고용을 명시한 파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까지의 판례를 법률로 바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씨나 김씨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법 개정 이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새 법률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2006년 12월26일 서울행정법원 13부(재판장 이태종, 배석판사 김선희·오태환)는 이씨와 김씨에게는 직접고용 간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씨와 김씨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10개월 뒤 내려진 항소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서울고법 특별1부(재판장 박삼봉, 배석판사 곽병훈·김춘호)는 2007년 10월5일 별도 판결문도 작성하지 않은 채 “1심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희망의 빛, 공개변론 진행

이씨와 김씨는 이번엔 대법원에 상고했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권두섭 변호사)에서였다.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기륭이나 KTX 여승무원들과 달리 단둘뿐인 이들로서는 집회나 농성 등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2·3심 변호사 비용과 인지대도 조구일씨가 댔다. 조씨는 “애초에 이씨와 김씨가 500만원을 받고 쉽게 나갈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함께 가기로 나와 굳게 약속을 했다. 대신 나도 최대한 힘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상고한 뒤 6개월쯤 흐른 뒤인 올해 5월26일, 권 변호사는 대법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넘어갔고, 공개변론을 진행하기로 결정됐다는 통보였다. 14명의 대법관 앞에서 주장을 펴고 질의·응답을 가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중요한 사건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한 달에 한 번가량 공개변론을 열고 판결을 내린다.

권 변호사는 무료 변호인단을 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김선수·강기탁·박상훈·김진 변호사가 흔쾌히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상자기사 참조).

6월19일 오후 4시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이 열렸다. 권 변호사 등은 파견법 입법 취지와 함께 어느 쪽으로 판단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되는지를 설명하며 대법원이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예스코 쪽에선 대법관 출신인 박재윤 변호사(법무법인 바른)가 나와 “불법파견도 직접고용 간주 규정을 적용할 경우엔 기업 활동에 제약이 너무 크게 된다”고 주장했다.

공개변론 석 달 뒤인 9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는 대법관 14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견 기간이 2년을 넘길 경우 직접고용으로 간주하는 옛 파견법을 ‘적법한 파견’에만 적용된다고 축소 해석한 원심의 판단은 파견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 근거가 없고 타당하지 않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2심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하는 것)했다. 대법원은 “직접고용 간주 규정이 적법한 파견에만 적용된다고 보면, 파견법을 어기고 불법파견을 받은 사업주는 오히려 직접고용의 부담을 지지 않는 결과가 되어 법적 형평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노동위부터 3년 가까이 네 번 연달아 패한 이씨와 김씨가 마지막 뒤집기에 승리한 순간이었다. 당시 방청석에 있던 조구일씨는 “판결문을 읽는데 다른 말은 뭔 말인지 모르겠고 오직 ‘파기환송한다’는 말만 들리더라”며 “너무 기뻐서 이씨·김씨와 그날 밤새 울고 웃으며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대법원으로부터 사건을 돌려받은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유승정)는 지난 11월17일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씨와 김씨는 회사에 복직하되,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소송 비용도 각자 부담하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권두섭 변호사는 “이씨와 김씨가 2011년까지 기존 정규직 직군이 아닌, 처우가 낮은 별도 직군에 있어야 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복직이 돼 고용 보장이 된 것에 의의를 둬 조정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입사동기, 복직 동기가 되다

결국 이씨와 김씨는 해고된 지 정확히 3년 만인 지난 11월부터 예스코에 복귀했다. 20대 초반 입사 동기였던 이들은 서른 언저리에 복직 동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업무 환경 또한 많이 변했고, 현재 이들은 새로운 업무 수행을 위한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파견과 도급, 비정규직을 거쳐 실업자가 돼 3년 넘게 싸워온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프면서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씨와 김씨는 의 인터뷰 요청에 “회사에 복직이 된 마당에 인터뷰를 하는 것은 회사에 누가 될 수도 있어 사양할 수밖에 없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공개변론한 5인의 변호인단
무보수 드림팀 “상황극까지 짰다”


이경주·김미주씨 사건의 가장 극적인 대목은 비슷한 사건을 맡았던 1·2심 판사들이 대부분 직접고용 간주 규정 대상을 합법 파견만으로 좁게 해석해왔음에도, 대법원에서 이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전원합의체로 넘겨 공개변론까지 거쳤다는 점, 여기에 단 한 명의 소수의견도 없이 14명 대법관 전원이 이같은 결정에 동참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물론 대법원이 이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숨은 공로자들이 많다. 우선 서울대 노동법연구회와 법원 내 노동법커뮤니티·노동법실무연구회 소속 소장파 판사 등이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여러 이슈들과 법리 흐름을 정리하는 등 이번 판결의 밑바탕을 닦았다.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이씨와 김씨를 변호한 권두섭 변호사, 김선수 변호사, 강기탁 변호사, 박상훈 변호사, 김진 변호사(왼쪽부터).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이씨와 김씨를 변호한 권두섭 변호사, 김선수 변호사, 강기탁 변호사, 박상훈 변호사, 김진 변호사(왼쪽부터).


하지만 일등 공신은 역시 공개변론을 앞두고 꾸려진 변호인단이다. 변호인단의 좌장 격인 김선수 변호사(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단장)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노동 전문 변호사이며, 김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시민에서 활동하는 강기탁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 노동위원장)도 2003년 인사이트코리아 사건 변호를 맡아 서울고법에서 ‘불법파견도 직접고용 간주 대상’이라는 최초 판결을 이끌어냈다(하지만 이 판례는 이후 다른 재판에서 인용되는 일이 드물었다).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박상훈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또한 1988년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창립 멤버로 노동 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왔고, 김진 변호사는 비교적 젊은 변호사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노동사건을 다뤄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무런 보수도 없이 변호인단 구성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 박상훈 변호사는 “1980년대 초반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부터 노동법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며 “우리 사회의 큰 화두인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노동사건의 중요한 쟁점과 관련한 논의라면 당연히 무료라도 참여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욱 빛났던 것은 이들의 완벽한 팀워크다. 박상훈 변호사는 손수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모두 발언을 했으며, 강기탁 변호사는 참고인들에 대한 질의를 맡았고,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 마무리 발언을 맡았다. 권두섭 변호사와 김진 변호사도 대법관 예상 질문 정리 등을 맡았다. 김진 변호사는 “공개변론을 준비하는 열흘 남짓 세 차례 모여 회의를 했는데 전원 100% 참석률을 보였다”며 “상황극까지 짜볼 정도로 모두가 열의를 가지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공개변론에 참여했던 대법원의 한 판사도 “원고 쪽이 파워포인트도 준비하고 발언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열의를 가지고 공개변론을 준비해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심사위원 20자평
최강욱 네 번 지고도 굴하지 않은 원고들에 경의를!
박영주 잠시나마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게 하다
박경신 위반만 있고 처방은 없던 파견법에 마침내 처방이
김남근 그래도 역시 법은 상식 위에 서 있었으니
박근용 목마른 이 시대 노동자들에게 찾아온 오아시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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