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29일 전북 군산시 개복동 환락가 술집 ‘아방궁’에서 누전으로 인한 불이 났다. 화재는 대낮에 일어나 30분 만에 ‘간단히’ 진화됐지만 1층 방에서 늦은 잠에 빠져 있던 여종업원 13명 등 모두 15명이 질식사했다. 화마를 피하려면 1층 방을 나와 비상 사다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1층 철제 방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감금 상태였던 것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주검은 잠겨 있던 1층 문 앞에서 발견됐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절규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더욱 기가 막힐 일은 군산 대명동 성매매 업소에서 불이 나 5명의 여성이 숨진 사건이 불과 1년4개월 전 일이라는 점이다. 개복동은 대명동에서 약 1km 거리에 있는 ‘옆 동네’다.
대명동 화재 이후 경찰과 소방 당국은 감금 성매매를 근절하고 소방안전을 확립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군산소방서는 2001년 4월, ‘유흥주점 밀집지역 업소 합동 소방점검’을, 군산경찰서는 같은해 10월 ‘월동기 대비 유흥주점 밀집지역 안전시설 점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민관합동특별면담반을 편성해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심층 면담도 벌였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그대로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경찰과 업주들의 ‘지저분한 유착’과 소방서의 ‘눈 가리고 아웅 식’ 소방점검 때문이었다.
개복동 유흥가에서 50m 떨어진 개복파출소 경찰관 임아무개씨 등 경찰관 3명은 업주들이 모금한 돈 750만원을 받고 수시로 식사 접대를 받으며 ‘특수관계’를 유지했다. 유흥주점에서의 성매매를 그대로 묵인해주는 한편, 여종업원들의 지명수배 여부까지 확인해주었다. 대명동 화재로 난리가 났는데도 경찰과 업주의 ‘검은 고리’는 끊어질 줄 몰랐던 것이다. 이들은 결국 뇌물죄 등으로 기소돼 처벌받았다. 소방관 진아무개씨 등 2명도 소방점검 과정에서 아방궁 1층 숙소의 문이 밖에서 잠긴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피난상 장애요인이 없다”고 점검부에 적었다. 이들도 허위 공문서 작성죄로 약식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감금 상태라 불이 나도 탈출할 수 없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야만적인 사고가 1년4개월 만에 또 일어났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방지하겠다던 경찰은 뇌물을 받았고, 소방서는 점검을 게을리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죽음은 결국 이들의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재판장 신성기, 배석판사 이승규·김소영)는 2004년 5월,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업주들의 책임만 인정하고 국가(경찰)와 전라북도(소방서)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들의 직무유기가 여성들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업주들은 대명동 화재 이후 강화된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가게 자물쇠를, 전문적으로 열쇠를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특수자물쇠로 바꾸고 창문의 쇠창살을 철거함으로써 외관상 감금 사실을 알기 어렵게 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감금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경찰은 대명동 사건 이후 여종업원 인권을 위해 심층 면담을 벌였으나 감금 행위가 신고된 사실이 전혀 없었다”며 경찰 편을 들었다.
경찰 뇌물받고 묵인·소방서는 점검 소홀소방관들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철제문을 발견하고도 장애요인이 없다고 허위로 문서를 작성한 점은 인정되나, 대명동 화재 사건 이후 점검·교육·순찰·훈련을 강화해온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점검 과정에서 의무를 소홀히 한 점이 있더라도 소방관들의 직무유기와 여종업원들의 죽음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심급이 올라갈수록 1심 재판부의 판단은 하나하나 ‘탄핵’되기 시작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23부(재판장 심상철, 배석판사 전광식·조규현)는 2005년 7월, 경찰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항소심 판결을 내놓았다.
2심·3심 올라가며 인과관계 인정재판부는 △여종업원들이 면담 과정에서 “2차는 자기 맘”이라고 진술해 성매매 행위가 있음을 내비친 점 △두 차례 특별단속에서 개복동 유흥가의 다른 주점에서 성매매 강요와 감금 행위가 적발된 점 △“감금 상태에서 성매매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면담 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는 군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찰관의 진술 등을 들어 “경찰이 감금된 채로 성매매를 강요받는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거나 실제 그런 정황을 인식하기도 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1심에서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다”던 특수자물쇠에 대해서는 “대명동 사건 이후에도 감금 사실이 적발된 업소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특수자물쇠를 설치하고 쇠창살을 폐쇄했다고 해서 적발이 어렵게 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일축했다.
대법원에서는 소방관의 배상 책임까지 인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능환)는 지난 4월, “합동 점검 과정에서 소방관은 1층과 2층 사이에 잠금장치가 있고 문을 잠글 경우 2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며 “시정 조처를 명하지 않은 소방공무원의 직무상 의무 위반은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에 해당해 위법하며, 직무상 의무 위반과 화재로 사망한 결과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감금 성매매와 화재로 인한 죽음의 반복은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수치스런 사건이었다. 국가와 지자체에 민사상 면죄부를 주는 1심 판결은 부끄러움을 더했다. 그러나 항소심·상고심이 진행되면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정됐다.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판단은 변했다. 같은 사안도 재판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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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2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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