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집회·시위의 자유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판결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집회를 하겠다며 낸 집회신고서를, 접수 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경찰이 모두 반려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목영준)의 지난 5월 결정이다.
지난 1월 서울 남대문경찰서 1층 로비에서 밤새워 줄을 선 끝에 업무가 시작된 직후인 아침 9시, 가장 먼저 집회신고서를 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 한겨레 김진수 기자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소속 한국합섬 HK 노조는 지난해 3월26일, 한 달 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건물과 삼성생명 사이 인도에서 집회를 열겠다며 관할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서를 내고 접수증을 받았다. 그런데 삼성생명 인사지원실도 같은 날 집회신고서를 냈다. 한국합섬의 최대 채권자인 삼성석유화학에 투자를 요구하려는 HK지회의 집회를 막으려고 삼성 쪽이 신고한 이른바 ‘유령집회’였다. 남대문경찰서는 두 집회가 “신고서 접수 순위를 정하기 어렵고, 시간·장소가 경합해(겹쳐) 상호 방해 및 충돌 우려가 있다”며 다음날 집회신고서를 모두 반려했다. HK지회는 “남대문경찰서는 삼성 파수꾼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같은 이유로 여덟 차례나 집회신고서가 반려됐다.
참다 못한 HK 노조는 그해 6월25일, “집회신고서 반려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낸 데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헌법소원에 앞서 서울행정법원에 낸 집회신고서 반려 처분 무효소송에서 법원이 ‘경찰의 집회신고서 반려는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취지로 각하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즉 경찰의 조처는 법에 근거한 ‘법 집행’으로 볼 수조차 없고 따라서 행정소송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사건을 맡은 김기덕 변호사는 “헌법소원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는 건 100건에 1건 나올까 말까 한 예외적인 일이지만, 이런 법원의 판단에 비춰 위헌 결정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상식’도 법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재는 7 대 2 의견으로 “집회의 자유는 반드시 법률로만 제한될 수 있고, 이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법률에 정해지지 않은 방법으로 이를 제한할 경우엔 그것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 판단할 필요 없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 집행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인 피청구인(남대문경찰서)은 실무상 아무리 어렵더라도 법에 규정된 방식에 따라야 할 책무가 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접수 순위를 확정하려는 노력을 한 뒤 후순위로 접수된 집회에 대해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복기 헌재 공보관은 이 결정을 놓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접수 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제한한다면 헌법 취지가 유명무실해진다. 위헌 결정은 경찰의 이런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결정을 ‘올해의 판결’로 추천한 김남근 변호사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선거 시기에만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는 임기제·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큰 의미를 가짐에도, 경찰 행정 현실은 집회 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영하고 있다”며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 판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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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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