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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올해의 판결] ‘사면의 달인’ 배후를 알고 싶다


서울행정법원 ‘특별사면심사위원회를 공개하라’… “국가 대사가 비공개 상태로 결정돼선 안 돼”
등록 2008-12-26 07:51 수정 2020-05-02 19:25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한때 내로라하는 재벌 기업의 총수였다. ‘사면 3관왕’이라는 묘한 기록을 보유했다는 사실도 닮은꼴이다.
김우중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는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에도 이름을 올리며 최초의 사면 3관왕 기록을 세웠다. 최원석 전 회장은 1995년 원전 뇌물사건에 연루됐다 사면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이어 1997년 개천절 특사와 2008년 광복절 특사에도 포함됐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두 사람을 ‘사면의 달인’이라고 불렀다.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공개를 거부한 법무부의 결정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12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재벌 총수 ‘봐주기’ 사면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공개를 거부한 법무부의 결정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12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재벌 총수 ‘봐주기’ 사면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유전사면, 특사 3관왕 회장님들

특별사면은 법적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특사를 단행할 때마다 청와대는 ‘경제 살리기’ 혹은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김우중·최원석 두 전직 재벌 총수 사례처럼, 대부분의 특사는 비난을 받았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특사가 집중된다”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칙도 기준도 없는 대통령 특사에 분노했던 사람이라면 2008년 11월13일 서울행정법원 14부(재판장 성지용, 배석판사 조정웅·강문희) 판결을 주목해야 한다. 견제의 무풍지대에 있던 사면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가 “사면심사위원회 위원의 명단과 약력을 공개해야 한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광복절 특사에 앞서 법무부에 사면심사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의사결정을 좀더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위원회 구성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였다. 경제개혁연대 소송대리인을 맡은 김영희 변호사의 설명이다.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2008년 3월 사면심사위원회를 만들어놓았지만 여기서 논의되는 내용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심사위원이 사면 대상자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서 사면의 적정성을 판단할 만한 인사인지 공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법무부는 경제개혁연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재판 과정에서 “사면심사위원 9명의 이름과 약력을 공개할 경우, 조직적 압력과 폭언·협박 등 신변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위원 이름을 공개했을 때, 빗발치는 전화 등으로 업무수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내비쳤다.

1심에서 패한 법무부는 법원의 결정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법무부는 현재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홍만표 법무부 대변인은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원의 최종 결정을 좀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법원이 사법권 제한당하는 당사자 아닌가

소송을 제기한 경제개혁연대는 1심의 결과가 상급심에서도 뒤바뀌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사면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는 법무부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상급심에서도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사법권을 제한받고 있는 법원이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으려는 사면심사위원회 운영의 부당성을 스스로 확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회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사면권이 남용되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중요한 국가 대사가 비공개 상태로 결정되는 관행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 심사위원 20자평
금태섭 최대한 비난 받는 사면, 최소한 심사는 받아야
박경신 세금으로 이뤄지는 모든 심의는 국민 감시를~
박근용 특별사면이란 밀실에 쏟아진 한줄기 햇빛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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