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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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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정치학] 코로나19 대응, 스웨덴만 다른 이유는

북유럽 국가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와 달리 ‘개방적 대응전략’ 취하고 사망률도 높아
등록 2020-05-09 05:50 수정 2020-05-10 01:07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4월30일 스웨덴 지역 스카우트협회가 브롬마에서 전통 행사 ‘발푸르기스의 밤’을 진행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4월30일 스웨덴 지역 스카우트협회가 브롬마에서 전통 행사 ‘발푸르기스의 밤’을 진행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봄이 유독 늦게 찾아오는 북유럽에서 5월1일은 메이데이인 동시에 성대한 봄축제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핀란드어로 ‘바뿌’(Vappu)라고 하는 이 축제일에 사람들은 하얀 학생 모자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야외에서 봄의 향연을 즐기며, 대학생들은 아직 차가운 호수로 뛰어든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한 2020년 5월1일 핀란드에선 노동자 집회도, 바뿌 축제 열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강력한 방역 조처를 했기 때문이다. 헬싱키 등 주요 도시들은 온라인 축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노동절 집회와 연설도 온라인 행사로 대체됐다. 핀란드 경찰에 따르면 2020년 메이데이는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축제일이었다.

시민들과 신뢰 쌓은 산나 마린 총리

핀란드 정부는 2020년 1월29일 첫 환자가 생기고 약 두 달이 지난 3월16일, 코로나19에 따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강력한 방역 대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초·중·고와 대학이 폐쇄됐고, 학교들은 온라인 등 원격교육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국경도 폐쇄됐다. 3월15일에는 환자가 많이 발생한 헬싱키 주변 우시마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 이동 제한 등 강도 높은 조처를 시행했다. 초기 자율적 예방 조처를 권고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을 펼친 결과, 핀란드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일정 수준에서 통제됐다. 핀란드는 5월6일 기준 확진자 5412명, 사망자 246명(인구 100만 명당 44명)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34살 젊은 여성 총리 산나 마린(사회민주당)이 이끄는 핀란드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 과학적 근거와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의견에 기초한 합리적 대책 수립, 명료하고 건설적이며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연설과 소통 전략 등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쌓았다. 4월 여론조사에서 정부 신뢰는 84%에 이르렀고, 최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사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등 ‘산나 마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도 3월부터 강력한 방역 대책을 실시하면서 코로나19 대응의 효과적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 42살 여성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사민당)이 이끄는 덴마크 정부는 3월13일부터 중등학교와 대학, 그리고 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폐쇄했다. 3월16일부터는 초등학교와 어린이집도 문을 닫도록 했다. 한발 앞선 3월14일에는 국경을 폐쇄했다.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조처를 하기 시작했다.

덴마크는 4월15일부터 학교 문을 다시 열었고, 이후 코로나19 감염 재생산지수가 조금 늘었지만 전체 확진자 수의 감소 추세를 역전시키지는 않았다. 5월6일 기준 덴마크는 확진자 9821명과 사망자 503명(인구 100만 명당 87명), 노르웨이는 확진자 7955명과 사망자 215명(인구 100만 명당 40명)을 기록했다.

200년간 전쟁을 겪지 않은 스웨덴

스웨덴은 홀로 개방적 대응 전략을 고수하면서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스웨덴은 고등학교와 대학 등에 원격교육을 권고했을 뿐,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은 문을 닫지 않았다. 카페와 식당을 폐쇄하지 않았고, 국경 제한은 부분적으로 강화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예외적 비상조처를 할 만큼 객관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스웨덴 보건 당국의 판단에 기초했다. 5월6일 기준 스웨덴은 확진자 2만3216명, 사망자 2854명(인구 100만 명당 283명)을 기록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 확연히 높은 수치이지만, 스웨덴 국가 방역 책임자인 안데르스 텡넬 박사는 4월 이후 확진자 증가세가 둔화해 안정 상태에 접어들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스웨덴 방식이 옳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의 이러한 ‘마이웨이’ 전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스웨덴의 높은 시민 자율성과 사회적 신뢰가 주된 요인으로 거론된다. 스웨덴은 정부 신뢰, 정부의 시민 신뢰, 그리고 시민 사이 신뢰가 모두 높은 수준이다. 시민들은 정부와 보건 당국의 결정을 신뢰하고,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 준수 등에서 시민들을 신뢰한다. 또한 스톡홀름 등에서 단독 가구 비율이 높고, 북유럽 문화의 특성상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이 용이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아울러 우수한 공공의료 시스템이 작동해 개방적 전략을 고수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공통된 특징이라는 점에서 2% 부족한 설명이다. 두 가지 대안적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역사와 지정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위기 대응 양식의 차이다. 스웨덴은 지난 200년간 전쟁을 겪지 않은 유일한 북유럽 국가다. 1차, 2차 세계대전에서도 중립국으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유지했다. 반면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점령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핀란드는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벌이는 등 큰 위기를 겪었고, 이후 고도의 전략적 위기관리 시스템과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전시 수준의 비상조처를 하는 것이 핀란드 등에선 합당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스웨덴에선 과도한 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민주의 전통과 집합주의적 사고

둘째, 스웨덴의 강한 사민주의 전통과 ‘민중의 집’(People’s Home) 복지국가 이념에 내재된 ‘집합주의적 사고’(개인의 권리와 이익보다 공동체 차원의 이익이나 목표를 중시하는 사고)다. 헬싱키대 교수 마르띠 꼬스껜니에미에 따르면, “핀란드와 스웨덴의 정치 문화는 역사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스웨덴은 집합주의적 목표가 개인의 권리보다 더 중시되는 구 사민주의적 문화를 갖고 있다. 생명권은 중요한 개인적 권리인데 스웨덴에서 사망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공중보건 측면에서 온건한 규제 정책이 더 나은 집합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인식되면서 죽어가는 (개별) 사람들의 권리가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핀란드 일간 <헬싱긴 사노마트> 2020년 4월 30일치)

그러고 보면 스웨덴 복지국가 역사에 우생학(인류를 유전적으로 개량하려는 연구) 시기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 정치 이념으로서 사민주의는 사회공학을 통한 현실적 유토피아 건설 프로젝트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전문가에 대한 신뢰, 이를 토대로 한 더 나은 사회와 인간의 삶을 만드는 집합적 제도에 대한 강한 신념이 스웨덴 사회와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스웨덴 공중보건 250년사> 186쪽).

코로나바이러스를 둘러싼 과학 지식의 한계와 2, 3차 대유행 가능성 등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아직 각국의 접근 전략과 결과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릴 시기는 아니다. 유사한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춘 북유럽 국가들은 다양한 코로나 대응 전략들을 비교하는 데 최적의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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