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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정치학] 코로나 멈춰세운 핀란드 여성 리더십

유능함으로 승부한 젊은 리더들, 시민 71% “잘하고 있다”
등록 2020-07-11 05:59 수정 2020-07-12 01:06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운데)와 행정부 장관들. EPA 연합뉴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운데)와 행정부 장관들. EPA 연합뉴스

2020년 7월4일 토요일 오전 11시30분, 1시간 지연 끝에 필자가 탄 항공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한국과 핀란드를 오가는 핀에어 직항 노선이 7월부터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다. 공항은 한산했고, 기내에도 승객이 띄엄띄엄 앉아 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8시간 남짓한 비행 뒤 헬싱키 공항에 도착하자, 외국에서 도착한 승객은 2주간 자가격리하면서 불필요한 대인 접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해외에서 들어온 자국민과 여행객에 대한 핀란드의 격리 지침은 권고 조처로 한국보다 훨씬 엄격성이 덜했다.

코로나 안정세 접어든 핀란드

현재 상황이 안정된 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스웨덴 제외)과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발트 3국에 대해서는 국경 제한도 없고 격리 권고도 해제된 상태다. 다른 국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2주간 자가격리를 권고하는데, 직장과 가정 그리고 식료품점 등 필수 장소로의 이동은 허용된다. 다만 대중교통 이용은 삼가고 불필요한 대인 접촉은 최소화하며 개인위생은 철저히 할 것 등을 권한다.

핀란드의 코로나19 관련 현황을 살펴보면, 7월7일 기준 총 7262명의 누적 확진자가 보고돼 그중 329명이 사망했다. 현재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는 19명이며, 일일 신규 확진자는 5명에 그친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안정적 통제 추세에 힘입어, 핀란드 정부는 3월16일부터 시행되던 비상권력법(Valmiuslaki)을 6월16일 해제했다.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예외적 권력 상태를 요구하는 비상사태는 더 이상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반적 수준의 감염병 관리 체제로 복귀한 것이다. 법무장관 안나마야 헨릭손은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률이 필요 이상으로 길게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교적 훌륭하게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온 정부 성과를 반영하듯, 최근 핀란드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정부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다. 도착한 다음 날(7월5일) 아침에 받아본 핀란드 일간지 <헬싱긴 사노마트>에 따르면, 6월15~26일 1005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1%의 시민이 “현 정부가 임무를 잘 수행한다”고 응답(매우 잘한다 17%, 잘한다 54%)한 반면,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9%에 그쳤다. 나머지 19%는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1년 가을 이후 근 10년 사이에 관찰된 최고의 정부 평가라고 신문은 보도했다.

더욱이 5개 정당 연정으로 이루어진 산나 마린 정부의 여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야당인 보수 국민연합당 지지자도 3분의 2 넘는 68%가 현 정부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 점이 인상적이다. 야당 중 극우포퓰리즘 정당인 핀란드인당 지지자들만이 유일하게 비판적 평가를 내렸는데(아주 잘한다 2%, 잘한다 26%), 팬데믹 상황에서 핀란드인당과 기성 정당들의 간극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야당 지지자도 “정부가 대응 잘했다”

특기할 점은 2019년 4월 총선 이후 지지율 고공 행진을 계속하던 핀란드인당이 2019년 12월 산나 마린 정부의 등장 이후 지지율 정체를 겪는다는 것이다. 팬데믹 위기 속 많은 나라에서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무능과 위험성을 들춰내는 동시에 중도실용주의 정당, 특히 총리 리더십을 보유한 정당에 대한 대중 지지도의 상승을 촉진하는 경향이 관찰되는데, 핀란드 사례도 그러한 면이 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핀란드가 34살 여성 총리의 탁월한 리더십과 합의민주주의적 거버넌스를 통해 심각한 감염병 위기 상황을 헤쳐나온 것에 대한 긍정 평가로 보인다.

범정부 차원에서 성과를 냈지만 그 결과가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에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모습도 관찰된다. 산나 마린 정부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을 필두로 중앙당, 녹색당, 좌파동맹, 스웨덴인민당 등 5개 정당이 참여하는 ‘무지개 연정’이다. 정부 출범 당시 이들 정당의 대표가 사실상 모두 여성이고, 그중 네 명이 30대 초반 여성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번 설문조사는 총리와 주요 장관직을 겸한 이들 정당 대표의 업무 수행 평가도 포함한다. 총리인 산나 마린이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교육부 장관 리 안데르손(좌파동맹)과 법무장관 안나마야 헨릭손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반면 지난 총선 이후 당의 정체성과 새로운 노선 정립에 어려움을 겪는 중앙당의 까뜨리 꿀무니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재무장관을 맡았던 그는 6월 초 부적절한 공금 사용 스캔들에 휘말려 장관직을 사임한 상태다. 지난 총선에서 약진했던 녹색당의 마리아 오히살로 대표(내무장관)에 대한 평가도 상대적으로 낮다. 녹색당은 현 정부에서 내무장관과 외무장관 등 까다로운 직위를 수임하는데, 강력한 기후위기 정책을 공약한 녹색당이 팬데믹 상황에서 본연의 정책 지향을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경 통제 등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위험을 짊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로 인해 일부 녹색당 지지자가 실망을 표했으며, 이를 인식한 녹색당 지도부는 하반기에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농민당에서 출발한 중앙당이 후기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정당 존립 이유에 관한 실존적 시험에 든 상황이라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역설하며 대안정당으로 활약하던 녹색당은 정부 거버넌스의 중심부에 진입한 뒤 신념정치와 책임정치 간의 딜레마를 해결해야 할 위치다.

재난에 대비하는 여성 리더들

나아가, 세대(청년)와 젠더(여성)의 상징성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정치적 리더십과 정책적 유능함을 강조해온 사민당의 산나 마린 총리, 그리고 급진좌파 정당을 대표하면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교육 실행과 교육 돌봄, 복지 등의 주요 과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리 안데르손 교육장관의 도전도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로부터 미래의 재난과 위기에 대비하는 DNA를 간직한 ‘북유럽의 프레퍼족’(Prepper Nation of the Nordics·자연재해, 재난에 대비하는 사람)으로 묘사된, 핀란드를 이끄는 젊은 여성 리더들의 활약을 계속 지켜보기로 하자.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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