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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원 후보 출마한 산나 마린 총리

‘지방복지국가’ 핀란드 지방선거 사전투표 시작, 포스트 코로나 체제 누가 주도할까
등록 2021-05-29 09:44 수정 2021-06-01 01:57
땀뻬레시에서 사회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산나 마린 총리(왼쪽)와 시장 후보로 출마한 라우리 릴리(현직 시장) 후보의 모습을 담은 선거 포스터(왼쪽).

땀뻬레시에서 사회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산나 마린 총리(왼쪽)와 시장 후보로 출마한 라우리 릴리(현직 시장) 후보의 모습을 담은 선거 포스터(왼쪽).

2021년 5월26일 핀란드 지방자치선거의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애초 4월18일로 예정됐던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6월13일로 미뤄진 터였다. 핀란드 전역의 309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의회 의원을 모두 8859명 뽑을 예정이며, 수도 헬싱키에서는 시의원 85명을 선출한다. 오래전부터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전통이 확립된 북유럽 국가들에서 지방자치선거는 시민 삶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20세기를 거치며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발전시킨 북유럽 국가들에서 교육, 건강 돌봄, 고용, 주거, 교통, 환경 등 주요 사회정책과 공공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할 1차 권한과 책임이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주어진다. 이 때문에 북유럽 복지국가를 ‘지방복지국가’(Local Welfare States)로 부를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책임이 크고 중요하다. 예컨대 핀란드의 지자체들은 20% 내외 소득세 징수 권한을 가진다.

단체장 직접선거 없이 정당별 득표로 배분

필자는 2013년과 2017년 핀란드의 지방선거를 정치학 연구자이자 한 명의 주민 관점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2017년 선거 때는 투표권을 받아 직접 정당과 후보를 골라 투표하는 기회도 누렸다. 북유럽 복지국가인 핀란드에서는 어떻게 지방선거를 치르는지 함께 살펴보자.

우선 핀란드의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선거와 유사하게 전면적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로 치러진다. 예컨대 인구 66만여 명의 헬싱키시는 지방선거에서 총 85명의 의원이 한꺼번에 선출된다. 헬싱키 전체가 하나의 선거구이며, 각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헬싱키 시의회 의석이 배분된다. 핀란드는 개방형 명부식 비례대표제(유권자가 정당뿐만 아니라 후보도 선택)를 운영하는데 이 경우에도 후보보다는 정당이 더 중요하다. 투표 결과 우선 정당 득표율을 집계해 정당별 의석수를 정하고 후보별 득표수는 정당 내부 의석 배분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면적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원리로 선거가 치러지면서 지역정치 수준에서도 폭넓은 다당제 체계가 발전한다. 또한 지방 정부 대부분에서 여러 정당이 연정을 꾸려 운영하는 합의정치가 이루어진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직접선거는 하지 않고, 지방의회에서 정당별 의석수를 반영해 지방정부 수장을 선출한다. 최근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선거의 책임성과 지방정부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헬싱키 등 일부 도시가 시장 선거 방식을 도입했지만, 이는 정당별로 미리 시장 후보를 지명해 공표하는 방식으로, 시장 후보들에 대한 직접선거는 하지 않는다.

땀뻬레시에서 사회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산나 마린 총리가 기호 209번을 부여받고, 다른 후보들과 함께 등재된 선거 포스터.

땀뻬레시에서 사회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산나 마린 총리가 기호 209번을 부여받고, 다른 후보들과 함께 등재된 선거 포스터.

선거 기간 주요 정당별 프로그램 방송

독특한 개방형 명부 선거제도와 시장 후보 사전 공표 등의 효과로 최근 핀란드에서도 인물 중심 선거 캠페인이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당과 정책 중심 선거가 주를 이룬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언론사 선거 토론 프로그램이다. 주요 신문과 방송은 선거 기간에 빈번하게 총리를 비롯해 여러 정당 대표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연다. 특히 인상적인 게 공영방송 YLE가 선거 기간에 주요 정당의 날을 하루씩 지정하고(사회민주당의 날, 중앙당의 날, 녹색당의 날 등) 해당 정당 대표와 당원들을 초청해 집중적인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한 것이다. 또한 기후위기와 환경 정책 등을 테마로 한 정당 대표 토론회도 열리며, 정당 청년조직 대표들도 별도의 TV 토론 기회를 얻는다. 이를 통해 유권자는 지역정치 의제에 대한 개별 정당의 기본 철학과 구체적 정책 노선을 상세히 이해하고, 나아가 정당 간 차이에 대해서도 구체적 상을 갖게 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핀란드 유권자는 건강 돌봄 정책과 지역경제·조세 문제를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노인돌봄 체계, 교육 정책이 중요 의제로 부각된다. 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에 따른 사회정책적 요구와 압력이 가중됨을 보여준다. 35살 젊은 여성 총리 산나 마린(사민당)이 이끄는 핀란드의 다섯 정당 연합정부는 코로나19 방역과 경제사회적 대응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초기에 높았던 정부 지지율도 꾸준히 하강하고 국민연합당, 핀란드인당 등 보수 야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추세여서 이번 선거 전망이 밝지는 않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 유럽연합(EU) 통합 등의 의제에서 다른 정당들과 선명하게 차별되는 전략을 펴온 극우 포퓰리즘 핀란드인당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 1위를 차지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중앙정치에도 큰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 지지율 하락 속에 생존 방안을 고심하는 중앙당(중도우파)이 활로를 찾을 것인가, 그리고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약진해온 녹색당이 이번 선거에서 헬싱키시 1당 차지와 시장 배출에 성공할 것인가 등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여론조사 1위 달려

산나 마린 총리는 직접 거주지인 땀뻬레의 시의원 후보로도 재출마한 상태다. 핀란드에서는 국회의원의 80%가 지방의원을 겸직하는데, 산나 마린 총리는 26살부터 땀뻬레 시의원으로 계속 활동해왔다. 각종 선거에서 엄청난 득표력을 과시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산나 마린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주목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이번 선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핀란드 복지국가와 민주정치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글·사진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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