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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정치학] 홈리스 제로 도전하는 핀란드

‘집 없는 사람 없는 나라’ 꿈꾸는 핀란드 사회주택의 소셜믹스와 입주자 민주주의
등록 2020-12-25 10:46 수정 2020-12-27 02:02
핀란드 헬싱키 서쪽 도시 에스포에 있는 사회주택. Y재단 출판물 ‘A home of your own’

핀란드 헬싱키 서쪽 도시 에스포에 있는 사회주택. Y재단 출판물 ‘A home of your own’

최근 핀란드의 청년정치와 대표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청년조직 사례 연구가 포함됐다. 녹색당 청년조직 누리집에 담긴 사회정책 프로그램을 살펴보다 ‘모두에게 집이 있는 핀란드’라는 정책을 발견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26년까지 ‘집 없는 사람’(홈리스)이 없도록 한다”는 대담한 주장이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제시됐다.

진짜 ‘주거 최우선 정책’이란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홈리스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녹색당은 왜 이런 의제를 앞세울까?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물론 녹색당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 등 생태주의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최근 선거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동시에 교육 불평등 해소, 기본소득 제도화 등 진보적 사회정책을 주장하면서 지지 기반을 넓히고 있다. 녹색당은 본래 자유주의 색채가 강했는데, 최근 주요 이슈에서 사회적 관점을 강화하면서 사민당이나 좌파동맹 등 진보정당들과의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녹색당의 진보정치적 전환을 주도한 이가 바로 현 당대표이자 핀란드 내무장관인 마리아 오히살로(35)다. 35살 젊은 여성 총리 산나 마린(사민당 대표)이 이끄는 5당 연정에 참여한 젊은 여성 당대표 가운데 한 명으로, 빈곤 문제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활동가다.

2017~2018년 녹색당 부대표를 맡은 동시에 홈리스를 위한 ‘Y재단’(비영리 사회주택재단)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그를 인터뷰한 일이 있다. 헬싱키 외곽 가난한 교외지역에서 자란 그는 자연히 빈곤, 소외,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왜 사민당이나 좌파동맹이 아닌 녹색당을 택했냐고 묻자, 생태적 패러다임 전환에 관심이 많고 녹색당의 정치문화가 자신의 성향과 맞았다고 했다. 또 녹색당에는 자신과 같은 사회정책 전문가가 필요하며, 녹색당의 정책 프로그램을 사회적 차원으로 결합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지난 의회 선거 때까지 그가 일한 Y재단은 비영리 협회로 홈리스를 위한 사회주택을 제공하는 일을 했다. 1985년 헬싱키 등 5개 대도시, 핀란드 루터교회, 적십자, 정신건강협회, 지방자치단체협회, 건설산업연맹과 건설노조연맹 등이 공동 설립한 재단은 전국 55개 도시에 약 1만7천 채의 사회주택을 공급한다.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 최우선(Housing First) 원칙’을 채택했다. 이는 쉼터, 재활 훈련, 주거 공유 등 긴 계단을 거친 뒤에야 독립 주거와 공동체 통합에 이르던 기존 접근을 뒤집어 독립적이고 안정된 주거공간을 먼저 제공하고 여기에 효과적인 사회서비스를 더불어 제공하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핀란드는 쉼터 형태의 수용 시설을 꾸준히 줄이고 독립생활이 가능한 사회주택을 늘려왔다.

핀란드 환경부의 주택청(ARA)과 지자체의 노력과 더불어 Y재단의 활동으로, 핀란드는 최근 30년간 홈리스 수가 줄어든 유일한 유럽 국가가 됐다. 1985년 2만 명에 이르던 핀란드의 홈리스는 2020년 4600명으로 줄었다. Y재단은 2030년까지 재단이 제공하는 사회주택을 2만2천 채로 늘려, 핀란드에서 집 없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택시장의 15%가 사회주택

그런데 홈리스를 위한 사회주택이라고 해서 홈리스만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니다. Y재단이 공급하는 아파트 1만7300채 중 6700채는 정신장애인 등을 위한 특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주택이고, 나머지 1만600채는 다양한 계층이 함께 거주하는 일반 사회주택이다.

핀란드에서 사회주택은 지자체와 그 소유의 공기업, 그리고 ARA의 승인을 받은 비영리재단과 학생·노인 단체 등 특별한 목적을 지닌 조직들이 운영하며, 전체 주택시장의 약 15%를 점유한다. 사회주택은 사적 임대주택보다 저렴하면서도 주거 환경이나 설비 디자인에서 뒤지지 않는 우수한 주택이다. 예컨대, 주요 대학 학생회가 소유한 학생주거재단들은 다양하고 질 좋은 학생주택을 공급하는데 이 역시 사회주택의 일종이다.

필자는 박사 연구를 위해 유학하던 시절 땀뻬레 학생주거재단(TOAS)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사적 임대시장보다 낮은 임대료에 월 30유로 정도의 저렴한 관리비(수도료·전기료·인터넷비 포함)를 냈다. 건축, 인테리어, 생활환경, 시설, 도시 서비스, 공원 접근성 등에서 안정되고 우수한 여건을 제공해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졸업 뒤에도 1년 이상 더 거주할 수 있었고, 개인이 아니라 비영리협회와 계약했기 때문에 주거에서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없었다. 또한 사회주택 거주자 상당수가 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을 산정해 가구별로 주거수당을 지원받는다(자가 소유자도 주거수당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핀란드 사회주택의 핵심 운영 원리로 두 가지 특징을 들 수 있다. 첫째, ‘소셜믹스’ 또는 ‘사회적 섞임’ 원칙이다. 이는 사회적 다양성과 통합을 위한 핀란드 주거정책의 중심 원리로, 소득수준이나 개인 특성 등과 상관없이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감으로써 주거 양극화와 공간적 격리 현상을 방지한다. 한 아파트 건물이나 층에서도 1인, 2인, 4인, 6인 이상 가구 등이 공존하도록 건축을 디자인하고 마을이나 지역 수준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주택과 인구집단이 섞여 공존하도록 배려한다.

2017년 필자가 방문한 헬싱키의 한 사회주택은 Y재단과 라이브음악재단이 함께 건설·운영하는데, 일반 주민과 함께 록밴드 등 음악활동을 하는 직업음악인을 위한 사회임대 아파트 74채(일반 주민용 49채, 음악인용 25채)를 제공했다. 건물 지하에는 방음 시설이 된 음악연습실 등이 있었고, 매달 주민 콘서트 등을 열면서 음악인들과 주민들이 활발히 교류했다.

둘째, 입주자 민주주의 원칙이다. 핀란드는 1991년 임대주택 공동결정법을 제정해 사회주택 운영 과정에서 입주자 민주주의 원칙이 구현되도록 했다. 법은 사회주택의 성인 거주자들이 소유주와 함께 공동으로 주택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음을 명시했다. 이 법에 따라 최소 연 1회 이상 거주자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가구가 함께 결정

여기서 구성된 거주자위원회에서 주택의 예산 운용, 임대료 책정, 개·보수 계획과 협상, 장기 금융계획, 주택 유지·관리에 관한 합의, 건물 내 규칙 등을 다수결로 결정한다. 거주자회의는 주택회사나 부동산회사, 주택을 소유한 비영리재단, 지자체 이사회에도 대표를 선출해 파견할 수 있다.

소셜믹스와 입주자 민주주의는 사회주택 공급이 활발한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도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들 국가에서 사회주택이 복지국가와 주거민주주의의 주춧돌로 기능하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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