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개선과 교내 일상의 민주화 대책 마련 위해 바빠진 각 단체의 행보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③]
자율과 인권이 아닌 타율적인 훈육 중심의 한국 학교가 어디서 기원했는지와 관련해 일제강점기 때의 황국신민화 교육에서 연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식민통치를 위해 통제·관리하는 규율 시스템이 적용됐고, 해방 이후에도 잔재를 떨치지 못하고 그 맥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오성철 서울교대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민족주의 강화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식민지 시대의 형식이 강화됐다”며 “현재 학교 제도의 문제는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과 그 맥을 같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인권 보장 협의체 구성 협의
반면 이런 훈육 체계는 근대 학교의 보편적 특성으로서 한국의 경우 식민통치 기간을 거치며 단지 강화됐을 뿐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의 전국 청소년 조직이 내건 구호를 보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해달라” “체벌 중단” 등 현재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요구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결국 서구는 68혁명을 통해 권위주의적 교육을 청산했고, 한국은 이제야 뒤늦게 요구를 발산하고 있다는 게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상임활동가의 시각이다.
연원에 대한 논쟁을 떠나, 초·중·고에서의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한 학교 안팎의 노력이 최근 속도를 내고 있다. 법제도 개선과 학교 안 일상의 민주화라는 두 축이 중심이다.
우선 전교조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학교 안의 인권 확보를 위한 사회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천희완 전교조 참교육실장은 “학교의 설립자와 경영자, 학교장이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도록 초중등교육법 18조 3항이 개정됨에 따라 이를 구체화하는 내용의 사회 협약을 단체들 간에 협의 중”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보건복지가족부, 각 시도 교육청, 인권위, 전교조, 교총 등이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협약의 시안을 보면, 신설된 법 조항이 구체화되고 현실적인 의미를 갖도록 학교 규칙을 점검하고 학교 운영을 개선하는 활동을 벌이는 한편 학생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실천할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또 학생 자신도 인권을 보장하는 주요 주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월30일 관련 토론회 때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에 대한 기본 인식을 확인하고 현재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단체들끼리 협의 중이라는 게 천 실장의 설명이다.
이런 움직임은 17대 국회 때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 최순영 의원의 ‘학교인권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된 데 따른 후속 대책의 성격도 있다. 학교인권법안은 구체적으로 체벌과 정규수업 시작 이전에 등교하는 행위,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한나라당이 다수당인 18대 국회에 이런 법안을 재상정하기는 일단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인권위 인권 매뉴얼, 전교조 교사 교육
이와 동시에 학내 일상의 민주화를 위한 각 기관·단체들의 행보도 힘을 얻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학교에서 쉽게 적용 가능한 학교 인권 매뉴얼을 올해 안에 만들어 내년에 각 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매뉴얼은 자치와 참여,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학교 안에서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기로 했다.
흥사단 교육운동본부의 권혜진 사무처장은 “그동안 단체들이 정책과 논리의 흐름만 좇아왔지 학생들의 고통받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올해는 일상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육운동본부 쪽은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과 기자교육을 동시에 실시해 인권침해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학생 기자단이 직접 취재해 사회에 알리도록 할 계획이다. 전교조도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인권교육을 이르면 6월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학교 인권은 결국 학교의 일상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사이트 ‘아수나로’의 활동가 공현씨는 “기본적으로 두발 규제나 복장 단속을 할 수 없게 하는 등의 내용을 법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두발이 자유화된 학교에서도 개별 담임교사가 ‘우리 반은 아니다’라면서 강제하고 처벌하는 사례도 있는 등 미시적인 부분에서 교사의 권력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 연속기획의 제목인 ‘인권 OTL’은 좌절해 쓰러진 사람을 상징하는 이모티콘 ‘OTL’을 활용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았습니다. 제보와 문의는 syuk@hani.co.kr혹은 02-710-0552 로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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