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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인권 OTL] “선생님, 그거 차별이잖아요”

등록 2008-05-16 00:00 수정 2020-05-03 04:25

군산 옥구초등학교 전교생 100여 명이 몸과 마음으로 인권 배우는 현장

▣ 이경아 군산 옥구초 교사

[일어나라, 인권 OTL①]

2년 전 우리 학교에 인권이란 말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교사나 아이들 모두 당혹스러웠다. 교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아이들은 무엇을 얼마만큼 배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교사들은 먼저 인권이라는 항해를 지식과 체험의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했다. 우선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를 활용해 교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나갔다. 인권 전반의 내용과 경제사회적 권리, 사회문화적 권리, 아동권리 등을 1년 동안 공부했다. 세계적인 아동 노동 착취 사례를 알아보고 친구들과 토론 활동을 통해 대안을 찾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례를 접해보기도 했다. 너무 다른 이런 현실을 접하면서 아이들은 슬퍼하기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인권 도서 읽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기에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 실천이다. 우리는 농촌 지역에 있는, 전교생 100여 명짜리 작은 학교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전교생 모두가 함께하는 체험수업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기아체험 열린 캠프’라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향한 식당에선 감자 한 가지만을 내놓았다. 이미 ‘세계의 기아’에 대해 오전에 진지한 대화를 나눈 터라, 레크리에이션으로 시작한 체험이 진지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이날만큼은 감자가 아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세계 어딘가에서 굶주림을 견디고 있는 아이들의 고통을 같이 느끼며 먹는 감자이기 때문이다. 이날 우리는 기아구호 성금도 기부했다. 또 장애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를 초청해 장애에 대해 공부한 뒤 복지관을 방문해 장애인을 접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갔다.

인권을 가르치고 인권 문화가 형성돼야 하는 학교에서 인권침해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느끼지 못하거나 침해 사례를 보고 분개하다가도 해결할 방법을 몰라 잊곤 한다. 그래서 ‘인권 존중 학급 세우기’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커다란 종이 안에 친구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선후배 사이 등 학교 환경의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인권침해 사례를 적어넣고 해결책을 찾는 활동이다. 당연히 학생 사이에는 따돌림, 욕설, 무시 등의 항목이 나왔으며 교사와 학생 간에는 체벌 문제와 선생님의 ‘묵언의 폭력’인 말투와 무시 등이 화두였다.

이젠 수업 중이나 평상시 생활할 때 아이들이 “어~ 그거 차별이잖아요?” “일기장이나 휴대전화를 남몰래 보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해요” “내 권리도 중요하지만, 친구의 권리도 중요해요”라고 자연스럽게 자기의 말로 인권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인권 안에서 전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인권 항해는 올해 1년 더 지속된다.



[인권 OTL - 조국의 선언]

항변하라, 나도 사람이라고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라고 선언한다. 제2조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및 그 밖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선언한다. 이 두개의 조문은 세계인권선언의 근본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혼혈인, 난민, 양심적 병역거부자, 좌파 활동가, 형사피의자·피고인, 수인,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북한 이탈주민, 성적 소수자, 정신병력자, HIV/AIDS 감염인, 한센병 환자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의 예를 들어보자. 이들에게 단일민족의 혈통과 문화를 더럽히는 놈, 정통이 아닌 이단교리를 따르는 놈, 가짜 양심을 빌미로 병역을 기피하는 놈, 빨갱이 사상에 물들어 북한을 이롭게 하는 놈, 정규직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놈, 범죄를 일삼고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놈, 성도착에 빠져 질병을 퍼뜨리는 놈 등 왜곡된 딱지가 붙고 차가운 시선이 던져진다. 나아가 감금·처벌·추방되기도 한다.
물론 사회적 강자나 다수자가 이러한 노골적인 비난을 공공연히 일삼지는 않는다. 배운 교육이 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존중과 보호를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자신들에게 불편이 초래될 때 태도는 표변한다. 이 순간 인권은 강자와 다수자의 이익과 편의의 틀 내에서만 의미를 갖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하며,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전제(專制)로 변질한다. 바로 이 순간 약자와 소수자는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나를 사람으로 대우해라”라고 항변할 수 있음을 선언은 밝히고 있다. 간명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울리는 말 앞에서는 어떠한 강자도 다수자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조국 한겨레21인권위원·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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