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일 한겨레21인권위원·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①]
LG텔레콤, 하나로텔레콤 등 거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업체에 대한 처벌 강화와 보안 대책, 그리고 아이핀(i-PIN)이라는 주민번호 대체수단 도입을 뼈대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정치권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마치 처음 있는 일인 양 호들갑이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시나리오는 이미 몇 번 우려먹었던 것들이다. 2006년 초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개인정보 도용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똑같았다. 당시 한 토론회에서 필자는 옛 행정자치부 관료에게 물었다. “이미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를 막을 대책은 있나요?”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대책이었는지는 이후 발생한 수많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증명한다.
아이핀 역시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를 막지는 못할뿐더러, 이미 그 당시 제시된 대책의 재탕일 뿐이다. 정치권은 목소리를 낼 자격조차 없다. 2005년부터 3개의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국회에 계류 중임에도 이에 대한 논의와 처리를 방기해왔기 때문이다. 정말 당혹스럽게도 필자 역시 리니지 명의 도용 사건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이번 하나로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하긴 옥션 개인정보 유출의 피해자가 1081만 명, 하나로텔레콤의 경우에는 600만여 명(건수로는 8530만여 건)이니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두세 번 이상 유출당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사실 대책은 간단하다.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사람은 그것을 바꿀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화번호나 주소, 계좌번호와 같은 다른 개인정보의 경우 그것을 변경함으로써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유독 주민등록번호만 변경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한번 유출된 사람은 평생 동안 도용에 의한 피해를 우려하며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나아가 아이핀과 같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민간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면 사회가 굴러갈 수 있냐고? 걱정 마시라. 이미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잘 살고 있다. 프랑스 등은 개인식별번호를 강제로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독일은 국가적 개인식별번호가 없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사용되는 사회보장번호도 그 이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심지어 포르투갈은 헌법에서 “시민들은 모든 목적의 국가적인 확인번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국민에게 부여되고, 평생 바꿀 수 없는 번호. 그 자체로 생년월일, 성별과 같은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번호. 교육·의료·금융 등 거의 모든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번호. 그러나 광범위하게 수집되어 너무나 쉽게 유출될 수 있는 번호. 2005년 열린 빅브러더상 시상식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영예의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을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책임에서 교묘하게 벗어나 있는 행정안전부에 나는 요구한다. “내 주민등록번호를 바꾸게 해달라!”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 허용’을 따릅니다.
[기획연재- 인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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