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 지역 사회복지 시설 종사자 30여 명이 함께한 ‘장애인 인권교육’ 현장
▣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인권 OTL-30개의 시선②]
“지금부터 여러분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위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자, 위원님들. 법안에 담길 조항을 3가지씩 만들어주세요.”
충북 충주 지역 사회복지 시설 종사자 30여 명과 함께한 장애인 인권교육 시간. 사흘째를 맞은 4월29일은 올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장애인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살찌우는 날이었다.
“시설에서도 장애인이 성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방문객이나 후원자들이 찾아오면 시설에서 장애인을 구경시켜주는 일이 잦지요. 대상화하지 말고 후원인과 장애인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지체장애인뿐 아니라 시각·청각 장애인도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도로의 유도블록을 파헤친 채 두거나 음성·문자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교통수단은 차별입니다.”
짧은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시설 종사자들은 장애인들이 겪고 있을 고단함을 떠올리곤 톡톡 법 조항으로 뱉어냈다.
자리에 함께한 정신장애인 몇 명도 실제 자신이 겪은 차별 경험을 쏟아내 가상 법 제정 과정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놀랍게도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조항들은 실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부분 포함돼 있는 것들이다. 차이라면 어려운 법률 조문을 대신해 더욱 생동감 있는 법 조문 문장들이 빚어졌다는 것.
교육 진행을 맡은 박옥순씨는 참여자들이 만든 조항이 소개될 때마다 실제 보고된 관련 사례를 덧붙여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그는 장애인들과 함께 발품·입품을 팔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법 제정을 성사시킨 인권활동가다. 장애인의 몸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일, 입소 조건으로 친권포기 각서를 요구하는 일, 취학이나 사회활동 참여를 가로막는 일, 장애인이 받을 임금을 가로채는 일 등 시설에서 주로 발생해온 차별 행위도 꼼꼼 짚어졌다.
그러나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시설이나 특수학교의 존재 자체를 차별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해석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같은 시설 종사자의 입에서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시설 자체를 차별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의견을 가진 교육 참여자들에게 더 큰 울림을 던져졌다.
시설 종사자들은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높은 존재이면서도 장애인의 인권 실현에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들의 인권 감수성과 의식을 일깨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려면 교육 이후 꾸준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시설 장애인들과 함께 동사무소 등 지역 공공기관을 돌아다니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건 어떨까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제대로 실행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중요한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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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한겨레21인권위원·서울대 법대 교수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다. 혁명과 전쟁과 폭정을 겪은 인류는 국경을 넘어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인권규범을 만들어냈다. 세계인권선언과 여러 국제인권규약이 그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인권규범은 그 본성상 자신의 기준에 반하거나 미치지 못하는 국가체제를 비판·부정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국제적 인권규범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복음’은 아니다. 그 목록에 있는 인권을 소상히 정리해 국내에 소개한다고 해서 인권 현실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이 규범이 단지 휘황하고 멋진 장식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실체가 되도록 하려면 ‘운동’이 필요하고 ‘정치’가 필요하다.
한 사회에 사는 인간이 고통받고 차별받을 때 ‘운동’은 필연적이다. 약자가 침묵하거나 포기할 때 그의 목소리는 체제에 반영되지 못한다. 고통과 차별의 해소는 이를 사회 전체에 알리는 데서 시작한다. 아무리 소수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문제제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편 인권은 ‘정치’의 문제다. 나는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어떠한 절차로 나눌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정의한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결국 약자에 대한 존중과 약자와의 연대가 사회원리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어떠한 국가와 정부가 필요한가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궁극적으로 인권은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과 질의 문제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큰 집과 차를 사겠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만 기초해 사회가 운영될 때 우리 삶은 천박해진다. 국민소득을 3만달러로 올리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 달성이 우리 삶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바꾸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목표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국제적 인권규범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획연재- 인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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