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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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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 한국에 시집 잘 왔다고요?

등록 2008-05-16 00:00 수정 2020-05-03 04:25

▣ 이신애(아리옹) 한겨레21인권위원·몽골 출신 이주여성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③]
“한국에 시집 잘 왔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기분이 언짢았다. 한국인은 무심코 하는 말이지만 이주여성이 듣기엔 ‘가난한 나라에 대한 무시와 따돌림’이 담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말이 한국인의 일상적인 인사이고 오히려 배려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시진 않았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몽골인은 한국인과 외모가 비슷해 말을 하기 전에는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문을 열면 발음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한국인의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가끔은 사적인 질문도 받는데, 그 와중에 “한국에 시집 잘 왔어”라는 말도 듣게 되는 것이다. 가정폭력, 직장폭력 같은 이주민에 대한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한국인이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도 이주민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문화적 충돌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7살, 5살짜리 남매를 키우는데 이주여성으로 아이 키우기도 만만치 않았다. 몽골에선 아기가 혹시나 혼자서 기어다니다 상처를 입을까 몸을 천과 끈으로 묶어둔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모르니 몽골에서 보아온 대로 아이를 묶어두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말렸다. 한국에선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말다툼도 벌어졌다. 몽골에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으니 육아법도 잘 모르는데, 한국식 육아법까지 익히려니 정말로 힘들었다. 당시엔 이주여성을 지원해주는 단체도 적었고 조언을 구할 만한 이주여성 ‘언니’도 드물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육아법도 문화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한국인은 잘 모른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양육하는 이주여성을 이상한 눈길로 본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밀가루는 소화가 잘 안 된다”. 역시나 상처가 되었던 말이다. 몽골의 주식은 밀가루와 고기다. 쌀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먹는다. 그래서 몽골에선 밀가루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에서 밀가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니 의아했다. 속으로 ‘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할까’ 하는 불만이 쌓였다. 더구나 당시엔 우리 가족, 나의 남편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한국인 대부분의 상식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기후와 지역에 맞는 음식문화가 있어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은 한국 음식만 먹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적응이 됐지만 당시엔 참 어려운 일이었다.
제도 밖의 고통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아는 몽골인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 그가 도움을 요청해 성폭력 상담기관에 대신 전화를 걸었다. 상담자와 말이 잘 통해 열심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결국엔 도움을 주지 못한단 얘기를 들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미등록(불법 체류) 몽골인(외국인)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그 여성은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물론 미등록 외국인 문제라 법적 해결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무언가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외국인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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